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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야, 서울가자>와 <신과 함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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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14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9-05-03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문화1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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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은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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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1 09:12 조회 1,88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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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영화에서 불교보기 (4회)

<달마야, 서울가자>와 <신과 함께 가라>

육상효 감독이 만든〈달마야, 서울 가자〉(2004, 한국)와 독일 영화〈신 과 함께 가라〉(2003, 졸탄 슈피란델 리 감독)에는 모두 수도자들이 나오 는데, 그들은 산사나 수도원에서 세 상과 담 쌓고 살았기에 세상 물정을 모릅니다. 두 영화는 이들 순진한 수 도자들의 바깥세상 이야기입니다.

〈신과 함께 가라〉와〈달마야 서울 가자〉는 겉모습은 참 비슷합니다. 성 직자들이 수도원과 절 밖으로 나오 면서 낯선 세상과 부딪친다는 설정 이 우선 닮았고, 간간이 웃겨준다는 것도 닮았습니다. 그런데 실상을 들 여다보면〈신과 함께 가라〉는 종교 영화의 길을 걷고,〈달마야 서울 가 자〉는 코미디 영화의 범주에 속하니 까 완전히 다른 길을 갑니다.

같은 출발선에 서있던 두 영화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신과 함께 가라 〉는 제목에서처럼 신의 길을 가는 수행자의 영적 성장을 그리는 것이 목적이고 코믹은 수단일 뿐입니다. 반면에〈달마야, 서울 가자〉는 웃기 는 게 목적이고 종교는 그저 배경에 지나지 않습니다. -

신부님들이 걸은 구도자의 길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신과 함께 가 라〉의 신부님들은 칸도리안 교단 소 속인데, 이 교단은 노래를 통한 찬양 과 기도를 수행방법으로 삼는 교단 으로 오래전에 카톨릭 교단에서 파 문당하고 두 개의 수도원으로 명맥 을 유지해온 보잘 것 없는 교단입니 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머물고 있는 수도원은 독일에 있는 아우스 부르 크 수도원입니다. 다른 한 수도원은 이탈리아에 있는데 영화는 세 명의 수사가 독일 수도원을 나와 이탈리 아 수도원을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 습니다.

 


젊었을 좀 놀아본 벤노 신부님, 그 리고 신부인지 농부인지 헷갈리는 요리담당 타실로 신부님, 그리고 아 기 때 수도원에 버려져서 세상이라 고는 모르는 꽃미남 신부인 아르보 수사는 보리죽과 우유만 먹으면서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들은 노래를 통해 신과 하나 되는 순간에 만족하 면서 세상과 담 쌓고 살다가 후원자 가 끊기면서 모두 굶어죽을 처지에 놓이자 종단의 규범집을 들고 이탈 리아의 수도원을 향해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떠나는 설정 면에서는〈달마야 서 울 가자〉도 별 무리가 없습니다.〈달 마야 서울 가자〉의 스님들이 서울로 상경하게 된 목적은 노스님의 유품 을 서울 무심사에 전해주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산골 절 스님들이 마 침내 자는 사람 코도 베어 간다는 살벌한 서울을 향해 길을 떠납니다.

이번 상경의 길 대장은 청명스님 입니다. 이 스님은 자기에게든 남에 게든 좀 엄격한 인상을 줍니다. 한마 디로 스님계의 범생이지요. 그리고 현각스님, 이 스님은〈신과 함께 가 라〉의 타실로 수사처럼 몸을 쓰는 일을 주로 하는 괄괄한 성격의 소유 자로 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명 은 대봉스님이라고 묵언 수행하는 스님인데, 묵언수행을 하고 있으니까 나름대로 열심히 수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달마야, 서울 가자〉는 처 음 시작할 때는 이렇게 캐릭터가 분 명하게 차별화되고 산사에서 나오는 과정에서는 그래도 수행자의 모습을 조금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세상으로 나오면서 이 두 영화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습니

전해줘야 할 사찰인 무심사가 빚 때 문에 건달들에게 넘어갈 위기에 처 한 걸 알아채고는 절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스님들이 절을 되찾 기 위해 술도 마시고 노래방 가서 노래도 걸쭉하게 부르고 그리고 결 국은 복권으로 탄 3백억을 통해 절 을 되찾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스님은 조금도 스님 답지 못했습니다. 옷만 승복을 입었 을 뿐이지 일반인보다 못한 모습이 었습니다. 건달들과 전혀 차별이 되 지 않는 모습이었으며, 이 영화에서 수행자의 삶을 느끼는 건 불가능했 

습니다.

반면에〈신과 함께 가라〉의 신부님 들에게서는 그들 앞에 놓인 세상의 삶이 수행에 대한 도전으로 비쳐지 고 그걸 극복해내는 모습에서 수행 자의 삶을 느끼게 했으며 신과 함께 가기 위해서 극복해야 할 것이 무엇 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가장 먼저 시험대에 오른 신부님 은 농부스타일의 타실로 수사입니다. 이탈리아 가는 길에 고향에 들린 그 는 다 늙은 엄마가 혼자서 많은농 사를 짓는 모습을 보자 혈육의 정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일행들에' 게 먼저 떠나라고, 자신은 엄마 일을 좀 더 거들어주고 뒤따라가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타실로가 엄마 때문에 수행자를 포기하는구나 하고 낙담했는데 나중에 타실로는 엄마에 대한 연민이나 정보다 신에 대한 갈망이 더 크다는 걸 확인하고 동료들을 쫓아옵니다. 신과 함께 가 는 길에서 가장 먼저 끊어야 할 것 이 애정임을, 즉 혈육의 정임을 보여 줬습니다.

다음 장애물은 명예욕입니다.. 이

일 수도 있습니다. 벤노 수사는 이탈 리아 가는 길에 신학교 동기를 만나 고, 동기가 자신이 교장으로 있는 신 학교에 데려가 희귀 악보를 보여주 면서 신학교에서 함께 살자고 하자 그 미끼를 덥석 물어버립니다.

그런데 이 학교에는 진짜 신이 없 습니다. 미사도 드리지 않고 교장은 벤츠를 타고 다니고 오직 물질에 대 한 숭배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나 중에 타실로와 아르보가 명예욕에 빠진 밴노를 구하기 위해 찬양을 하 자 그 노랫소리 속에서 벤노는 자기 가 진정 원하는 것은 이런 겉치레나 

명예욕이 아니라 신과 함께 가는 것 이라는 자각을 하고 신학교를 나옵 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르보입니다. 아르보의 욕망은 앞의 두 사람에 비 해서 좀 더 강했습니다. 아르보 수사 는 애기 때부터 수도원에서만 자랐 기에 여자라는 존재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세상 밖으로 나와 키아라라 는 여기자를 만나고 사랑에 빠집니 다. 애욕의 상징인 여자와 신이 함께 가는 건 불가능하지요. 부처님께서도 수행의 길에서 애욕을 가장 경계하 셨는데, 신의 길을 걷는 아르보에게 가장 큰 장애물이 나타났음을 알 수 가 있습니다.

결국 아르보는 신의 길을 포기하 고 인간의 길을 갑니다. 즉 신을 버 리고 키아라를 선택합니다. 아직 어 린 아르보에게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선택이고 오히려 이런 결론이 이 영화를 훨씬 완성도 있는 영화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르보 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압니다. 인간 의 길을 간 아르보가 어느 날 다시 신을 그리워할 거라는 걸. 젊은 어느 시기에 그런 결정을 내렸지만 신만 큼 안온한 안식처와 행복을 주는 곳 은 없기에 언젠가 다시 신에게 돌아 올 것이라는 걸.

그렇다면 웃음의 질과 양 면에서 는 두 영화는 어떤 차이를 보일까 요? 웃음에 집착했던〈달마야, 서울 가자〉가 당연히 더 웃겼을 것 같지 만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 의 길을 갔던〈신과 함께 가라〉의 웃 음이 더 진솔하고 마음이 훈훈해지 는 웃음이었습니다.

정말 우리나라에도〈신과 함께 가 라〉스타일의 불교영화『한 편 나왔시# 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스 불교영화는〈달마카'동쪽으로 간 까% -' 닭은〉이나〈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 고 봄〉처럼 지나치게 진지한 톤이어 서 재미가 없거나〈달마야〉시리즈처 럼 그냥 웃기기 위해 불교에서 소재 를 가져온 영화로'나눌 수 있는데, 두 부류 다 극단으로 갔습니다. 종교 성을 강조하면 재미가 없고, 재미를 ‘ 쫓다보면 종교성은 온데 간 데 없어 지는,.그런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신과 함께 가라〉의 재미와 종교성, .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실력이 한 없이 부럽습니다.

-김은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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