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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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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16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7-11-01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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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6 12:34 조회 2,87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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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

신라불교 부흥을 위해 황룡사의 종을 주조하고 굴불사, 영흥사, 원연사, 불국사 등 많은 절을 세우고 석굴암을 축조 하는 등 신라 불교의 절정기를 이끈 신라 35대 경덕왕은 어느 날 귀정문 누상에 나아가 좌우의 신하들에게 큰 법력과 위의를 갖 춘 스님을 이리로 데려 오라고 명한다. 그 때 마침 위엄 있고 깨끗하게 차려 입은 고 승이 있어 신하들이 데리고 와서 왕을 뵙 게 하지만 왕은 말한다. “내가 찾고자 하는 스님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고 물러나게 하였다. 

그때 어떤 스님 한분이 장삼을 입고 삼태기를 등에 지고 남쪽으로부터 오고 있어 왕은 그 스님을 보고 기뻐하며 누대위로 올라 오게 하였다 그리고 등에 지고 있는 삼태 기 속을 들여다보니 차를 달이는 다기들 로 가득하여 이를 보고 왕이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소승은 충담(忠談)이라 하옵니다.” “어디서부터 오는 길인가?” “소승은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에는 남 산 삼화령에 모셔진 미륵세존께 차를 공 양하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미륵 부처님께 차를 올리고 돌아오는 길입니 다.” 

화랑인 기파랑을 찬양한 신라 향가 찬 기파랑가(讚耆婆郞歌), 그리고 백성의 편 안을 위해 노래한 향가 안민가(安民歌)의 저자(著者)충담사(忠談師)와 경덕왕의 첫 만남을 묘사한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이는 신라시대부터 이미 9월 9일 중양 절을 맞이하여 불보살님께 차례(茶禮)를 올리는 풍습이 불가(佛家)에는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 날에도 이어져 불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이나 마애불을 모신 절에서는 중양절이 되면 차례를 지내는 곳이 있다. 

이외도 불 가에서는 자손 없이 죽어간 영가들을 위 한 천도재를 중양절에 올린다. 일반 민가에서는 중양절이 되면 국화 꽃잎을 따서 찹쌀가루와 반죽해서 둥근 모양의 찹쌀떡을 만드는데 이를 국화전 (菊花煎)이라 하여 국화로 빚은 국화주와 같이 먹었다. 조선 세종 때 문신 정이오가 지은 남산팔영(南山八詠)에 구일등고(九日 登高)라 하여 중양절이면 붉은 주머니에 수유(茱萸)나무 열매를 담아서 팔뚝에 걸 고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셔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풍속이 있었다고 기록 하고 있다. 

또한 추석 무렵 햇곡식이 나지 않아 차 례를 지내지 못한 집에서는 이날에 차례 를 지내는데 이는 처음으로 생산된 햇곡 식을 조상에게 비치고자 하는 후손들의 정성이 담긴 풍습이다. 지방에 따라 중양절 차례에는 기일(忌 日)을 모르는 조상의 제사나 혹은 연고자 없이 떠돌다 죽었거나 전염병 등으로 제 사를 지내줄 자손도 없이 죽은 사람의 제 사를 지내기도 했다. 일 년 중 하늘이 가장 높고 푸르며 국화 향기 짙어지는 음력 9월 9일 중양절. 신라, 고려, 조선 때까지 추석, 백중, 대보름 같은 큰 명절처럼 지냈다. 

이웃나라인 중국에 서는 요즘도 중양절을 큰 명절로 여기지 만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중양절을 명절 로 기념하지는 않는다. 옛 전통을 많이 간 직하고 있다는 불교에서도 차례(茶禮), 천 도재, 방생, 점찰법회(占察法會) 같은 중양 절에 행해졌던 예전 전통을 유지하는 사 찰을 이제는 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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