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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으로 피어난 불공의 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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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15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7-10-01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지인사 신행체험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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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6 09:13 조회 2,78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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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으로 피어난 불공의 원력
김기자와의 대담 - 홍순유 보살

인천에는 총지종의 두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광역시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천시 북구에서 부평구로 이름을 바꾼 이곳에 시법사, 지인사두 사원 모두가 오랜 세월 교화의 도량으로 큰 틀을 이루고 있다.

최근 지인사에는 웃음이 넘치고 있다는 이형자 통신원의 제보를 받은 기자는 그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올해처럼 유난히 더웠던 여름을 지나면서 무슨 좋 은 일인가? 한여름 더위를 불공으로 이겨 내서 그런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 다. 통신원의 제보에 지인사 승효제 전수 님께 사전 약속을 하고 자성일 불공 때 인 천으로 차를 달렸다.

부평은 초행이라 자동차의 네비게이션 이 가르켜 주는 대로 서울 순환 고속도로 를 거쳐 송내 나들목으로 진출했다. 직진 과 우회전을 거쳐 골목으로 접어드니 바 로 지인사의 모습을 찾을수 있었다.

네비게이션의 잘못된 안내로 골탕을 먹 

은 적도 있지만 이번만큼은 그 성능에 만 족했다.

여러 총지종 사원을 방문 취재해 보았 지만지인사의 첫인상은 무척이나 깔끔하 다는 느낌이다. 사원 마당을 들어서니, 여 러 가지 꽃들이 만발하다. 연꽃을 피운 여 러 개의 수조도 보이고, 사원의 분위기보 다는 잘 가꾸어 진 공원에 온 느낌 이다.

자성 일 불공을 모두 마친 후 교도분들 에게 인사를 드리고, 단체 사진을 먼저 찍 어드렸다. 기왕 왔으니 최소한의 서비스 는 기본 아닌가? 다함께 공양을 한 후, 서 원당에서 홍순유 보살과 박옥선 부회장, 최광희, 김태순 감사, 강정회 각자님, 신정 회 간부들이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나는 보살님께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보살님. 지인사에 얼마나 기쁜 일이 있길 래… 서울까지 소문이 났습니까?” 보살님 은수줍은웃음을띄우며 “우리 사원이 최 근 리모델링을 통해 훨씬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정원의 꽃들이 너무 예뻐 교도들 의 얼굴이 꽃처럼 환해져 그런가 봅니다.” 라 말한다. 그러면서 꽃들을 정성들여 가 꾸어주신 지성 정사님과 승효제 전수님의 여름동안의 노고에 감사했다.

그런데 옆에 계시던 박옥선 부회장이 “진짜 경사는 보살님 댁에 있습니다.”며 “보살님 아드님이 이번에 소령으로 진급 했습니다. 이보다 더 큰 경사가 어디 있습 니까?” 나는 귀가 번뜩였다. “아 그런 경 사가 있었군요.”

홍순유 보살님의 아들은 이 나라 국방 을 책임지는 대한민국의 육군 장교였다. 홍순유 보살의 아들 강인식 소령은 1남 2 녀 중 막내로 대학을 졸업하고 ROTC로 임관해 직업군인의 길을 가고 있었다. 어 린 젖 먹이 때부터 보살님의 등에 업혀 지 인사를 다녔다 한다. 지금도 휴가 때면 지 인사에 들러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 지력에 감사의 불공을 드린다.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식을 군대 에 보내고 편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어 디 있을까? 보살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 병으로 의무 복무만 하는 것도 아닌 장교 로서 병사들을 통솔해야하는 직책은 먼저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중요한 자리다.

홍순유 보살님은 강 소령이 입대하는 날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들을 위한 불공을 올렸다. 보살님의 불공은 우주법 계를 움직여 강 소령에게 비로자나 부처 님의 가지력을 느끼게 해 주기도 했다. 어 

느 날, 강 소령 이 보직을 옮긴 이후 전 근무 처에서 사고가 일어나는 일도 겪었다.

이뿐이 아니다. 전방 GP에서 근무 중, 차량 사고를 극적으로 피한 일 등등 이런 일들을 겪으며 하루도 끊이지 않았던 홍 보살님의 불공의 힘이라 여겼다. 군대는 매일 사고와 위험을 안고 있는 곳이라 매 일 매일이 긴장속에 있다.

홍 보살님이 총지종에 입교한 사연 또 한 남다르다. 경기도 화성의 부유한 집에 서 자란 홍 보살님은 당시로서는 첨단 기 술인 양장기술자였다. 부평 토박이인 강 정희 각자님을 만나 이곳으로 왔다. 당시 부평에는 양장 원단을 만드는 공장들이 있어 작은 양장점을 운영하며 살림을 꾸 려갔다.

1973년 어느 날, 당시 정혜원 스승님이 법의를 만들고자 오셨다. 홍 보살은 단번 에 스승님께 반했다 한다. 저리 멋진 옷을 입고 다니시는 분들은 뭔가 남다른 것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정혜원 스승님의 교 화로 바로 총지종에 입교해 오늘날까지 39년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행정진에 임했다.

홍 보살님의 수행 기관이 바로 지인사 의 역사인 것이다. 강정희 각자님도 열정 적이다. 사원의 힘든 일을 도맡아 하시고。 홍 보살님이 신정회를 이끌어나가는데 큰 역할을 한다. 두 분의 아름다운 모습에 한 참을 넋을 잃고 얘기를들었다.

지인사가 인천 교화의 중심 도량인 이 유가 있었다. 밤 낮 없는 수행정진으로 법 신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지력이 두루 미 치는 성취의 도량 지인사. 그 곳에는 자애 로운두분스승님과사원을내 집 같이 생 각하는교도들이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원을 나서는데, 배 웅해 주시는 홍 보살님과 각자님의 모습 이 한 쌍의 연꽃으로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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