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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 心如工畵師(심여공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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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14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7-09-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설법/칼럼 서브카테고리 지상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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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보명심 필자소속 - 필자호칭 전수 필자정보 보명심 전수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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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5 12:35 조회 2,00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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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 心如工畵師(심여공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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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짐에 따라 우리의 행동과 생활이 바뀝니다.

마음이 휘둘리지 않고 상처받지 않게 살아가려면 내 마음의 주인이 되고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습하고 훈련하고 수행해야 합니다. 




마음공부는 왜 하는가? 인간이 가진 본래의 참마음(본성)을 찾아서 참되고 복된 생활을 할 수 있도 록 마음의 원리를 궁구하는 것을 말합 니다. 사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 이며 인간의 주인이 되며 왕이고 천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마음가짐에 따라 우 리의 행위와 생활이 결정되기 때문입 니다. 마음은 위대하기 때문에 마음으로 못하는 것이 없고 가지 못하는 곳이 없 습니다.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 心如工畵師( 심여공화사)’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 먹기 달렸으며 마음 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작가와 같다 고 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 할 수 있는 것이 죠. 그러므로 나와 인연된 세상 모든 것 은 나의 마음 먹기에 따라 낙(樂)도 고 (苦)도 품을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것입 니다. 종조법설집에서 자기마음 스승으로 하는 사람은 모든 번뇌를 여의고 밝은 지혜를 얻어 참스승이 된다고 말씀하 셨습니다. 자기마음을 스승으로 하려면 먼저 나를 알아야 하는데 막상 알 것 같으면 서도 모르겠는게 나의 마음입니다. 그냥 막연하게 누구의 아내, 남편, 엄 마, 자식 등으로 어렴풋하게나마 나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마음은 뭐지?’ 내 가 슴속에 무언가 있는 것 같은데 내보일 수 없는 것이 마음인 것 같습니다. 마음이 왜 행복할까? 왜 아플까? 왜 허전할까? 왜 화가나지? 살면서 이런 생각들을 해보신적이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삶은 고통의 바다라 했습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의 실 존이고 정체성입니다. 어릴 때부터 가 파른 환경으로부터 만들어진 실체인 것이지요. 마음은 내 것인 것 같으면서도 내 것 이 아닐때가 많습니다. 나의 마음이 온통 남의 객체 속에 파 묻혀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때 가 많습니다. 남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아파하 고 고민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온통 바깥에 의존하고 의 지하기 때문에 바깥말에 휘둘리게 되 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나라고 생각 하면서도 주 인으로 살기가 힘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문화가 배재되 어 있습니다. 

옛날에 못 먹고 살 때는 먹고사는 의식주와 물질풍요에 중점 을 두었고 먹고 살만하니 건강이 최고 라 하며 웰빙(well-being)이니 자연식 먹거리의 열풍이 불었습니다. 물질풍요와 먹거리가 해결되니 다 채워진 것 같았는데 왜 마음이 허전하 지? 왜 마음이 불편하지? 왜 마음이 만 족하지 못하지? 마음이 원만하지 못해서 마음의 평 화와 본성을 찾아서 헤매게 됩니다. 인간은 생존본능으로 바깥 모습의 대상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회적 지위·모습·외모·돈·명 예 등등이 있습니다. 또 마음은 생각과 감정의 지배를 받 습니다. 바로 기쁨·슬픔·두려움·쾌 감 등이죠. 즉 오감에 의해 즐겁고 행복하고 불 안하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흔들리며 상처받고 살아갑니다. 오감은 에고(ego)를 만들어 냅니다. 에고는 자아·집착·아집·고집·편 견 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칠정망상으로 맞다-틀리다, 높다-낮다, 달다-쓰다, 좋다-나쁘다, 등등 오감에 미혹되고 유혹을 당하면 대상에 지배되고 흔들릴 수밖에 없습 니다. 그래서 마음이 휘둘리지 않고 상처 받지 않게 살아가려면 내 마음의 주인 이 되고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습하고 훈련하고 수행해 야 합니다. 정체된 마음을 조금씩 조금 씩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사물이나 대상에 너 무 얽매이지 말고 어려운 일, 번뇌스러 운 상황에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생각하게 되면 모든 것이 원만하게 물 흐르듯 잘 흘러 갈 것입니다. 마음을 가라 앉쳐서 조용히 눈을 감 고 대상인 부모, 남편, 아내, 자식, 나의 어린시절 등 살아온 날들을 사랑으로 연결된 대상에게 순수한 참마음으로 만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 니다. 

 종조님께서는 법설을 통해 “안을 닦 지 아니하고 밖을 보호하려 함은 원래 그릇된 것이라 복이 안에 솟아남을 미 처 알지 못하고서 동쪽이나 서쪽에서 옴과 같이 생각하니 어리석은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나는 어떤 시 선, 어떤 생각, 어떤 마음으로 내 안의 나를 알아차림하고 있습니까? 순수 욕망으로 에고(ego)를 느끼는 나를 인식해야 합니다. 나의 자아인 에고(ego)를 손바닥 위 에 올려놓고 잘 살펴보면 여태껏 보지 못한 나의 모든 것들을 보게 됩니다. 내가 나를 제대로 볼 수 있는지? 상 대가 나를 제대로 볼 수 있는가? 나는 나를 어떤 기준으로 볼 수 있는지? 상 대 역시 어떤 잣대로 나를 말 할 수 있 는지? 결국 나를 알 수 있는 것은 나의 성찰 과 알아차림일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결국 나를 알아가는 과 정입니다. 생각 할 수 있는 사람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서도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인연된 편안한 마음으로 용맹정진 하시어 마음해탈 하시기를 서원합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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