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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과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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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15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9-06-07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문화2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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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자인행 필자법명 - 필자소속 부산 정각사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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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1 10:06 조회 1,75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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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과 수행

며칠전 빗방울이 추적추적 떨어지 는 늦은 저녁 어둑어둑한 거리로 나 ~ 는 우산을 챙겨들고 기어이 나섰다. 일전에 지나가다 보아둔 사거리 육 교 건너에 있는 등산용품점 원도우 앞에 서서 진열장 안을 한참을 들여 다봤다. 그리고는 긴 한숨과 함께 문 을 열고 들어가 한쪽 벽을 가득 채워 진열된 등산화들 중 흰 바탕에 빨간 무늬가 있는 신발 하나를 가리키며 가격이 얼마냐고 물었다.

이번 주가 지나면 정각사 보살님들 과 봉정암에 간다, 처음 계획보다는 인원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출발 한단다. 다녀온 보살님들 모두가 힘 든 코스라고 각오 단단히 하라며 은 근히 겁을 주며 나를 놀린다. 예전 소싯적 지리산 법계사 근처에 있는 조그만 암자에서 천왕봉까지 다람쥐 처럼 뛰어다닌 기억을 되살리면서- 까짓것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가면 못 올라갈까 스스로를 위안하

지만 그래도 조금은.불안하다.

그래서 발에 맞는 등산화라도 하나 구입해서 신으면 혹시 올라가는 길이 조금은 수월해지려니 하는 소심함과 불안한 생각에 등산화랑 등산양말, 그리고 몇 가지 등산용품을 사가지고 집에 와서 내보였더니 이제 겨우 초 등학교 다니는 아들놈이 아주 걱정스 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하는 말 - ‘장비만 보면 히말라야라도 가는 줄 알겠다.’ 며 웃음을 흘린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나도 어색한 웃음을 띠우며 애써 아들 눈빛을 외 면하면서 신발 끈을 매는데 갑자기 오래전 지리산 법계사 근처 조그만 암자에 기거할 때 중산리 아래 마을 에서 법계사에 매주 불공기도 하러 오던 그 보살님이 생각났다, 몇 번 절 마당에서 마주쳤지만 말없이 눈 인사만 하여 무슨 불공기도를-하는 지는 모르지만 참 대단한 정성이라 는 생각을 했었다. 중산리에서 법#

사로 오려면 칼바위에서 망바위로 이어지는 된비알을 지나야 하는데 이 구간은 겨우 스무 살을 갓 넘긴 내가 걸어도 숨이 턱까지 차올라 몇 번을 쉬어야 넘을 수 있는 힘든 구간 인데 당시 육십이 훨씬 넘었을 것 같 던 그 보살님은 불공 시 부처님께 올 릴 쌀과 떡과 과일 같은 공양물을 머 리에 이고 양손에 들고 치마저고리 차림에 고무신을 신고 그곳을 오르 내렸던 참으로 대단한 신심을 가진 보살님 있었다.

그 보살님이 머리에 떠오르면서 기 껏 등산화에 의지해 혹시나 하는 편 함을 찾는 내 자신을 보고 나의 부끄 러움에 뚜렷한 이유가 있음을 깨 닫 았다. 편함을 갖고 싶다면 힘들게 봉 정암까지 오를 필요 없이 차라리 집 에서 가만히 누워 있으면 될 것을, 가고는 싶고 힘들기는 싫은 나의 이 기심과 욕심이 만들어낸 어리석은 교활함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어쩌면

이번에 있을 산행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수행이나 정진 혹은 평소 나의 생활에서 힘든 것을 싫어하고 편함 만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번 산행준비를 계기로 다시 생각해 볼 기회로 삼아야겠다.

편함만을 추구하다보면 결국에는 나태와 게으름에 빠지게 되는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한 사실임을 누구나 다 알면서도 편함이 주는 달콤함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 어리 석은 중생인지라…… 부처님도 게으 름은 모든 수행의 방해가 되며 특히 재가자:의 게으름은 옷과 음식을 구 하기 어렵고 자산과 사업이 늘지 않 으며 출가하여 게으르면 능히 생사 의 고해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시 며 게으름을 경계하라고 경전을 통 해서 이미 말씀하셨다.

이번 산행이 그동안 내 몸과 마음 에 붙어있던 나태와 게으름을 모두 걷어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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