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나눔’, 불교가 가진 강력한 사회 솔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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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19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8-02-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역삼한담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주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김주일 현대불교신문사 편집국장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7 10:24 조회 2,955회본문
불교적 ‘자비네트워크’ 확산 필요해 광화문 사랑의 탑 온도 뜨뜻 미지근, 기부 문화 불신 등이 가장 큰 원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주관하는 ‘사랑 의 탑’의 온도가 올해 매우 낮다는 보도가 잇달아 전해진다. 각 언론 매체의 제목이 ‘후끈’ ‘기대이 상’ ‘훈훈’ 등이 아니라 ‘꽁꽁 얼어붙은’ ‘미 지근’ 등이 많다. 가뜩이나 한파와 미세먼 지로 힘든 우리의 마음도 저절로 메말라 진다. 1월 16일 현재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이 90도를 나타내고 있다. 목표인 100도에서 10도가 모자르는데 언 제쯤 달성될 수 있을까 우려의 시선이 많 다. 목표액의 1%가 모일 때마다 1도씩 올 라가는 사랑의 온도탑은 분명 동파상태 다. 언론에서는 그 원인으로 경제적 어려 움과 기부문화에 대한 불신을 거론한다.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선 자신도 어려 운데 주위를 돌볼 여유가 없을 거라고 백 번 이해하더라도, 자선모금 단체에 대한 불신이 매우 크다는 것은 기부를 하는자 와 받는자 양쪽 입장에서 서로 깊이 고민 해 볼일이다. 대표적인 것이 128억 원의 기부금을 유 용한 ‘새희망 씨앗 사건’과 희소병을 앓는 딸의 치료기부금 10억 여원을 탕진한 ‘어 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이다. 특히 여중생 살인범 이영학은 딸의 희소병 치료를 도 와 달라며 모은 10억 원대 후원금 대부분 을 고급차를 구입하고 차량 튜닝 등에 탕 진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기부에 대한 불 신이 확산됐다. 설상가상으로 가짜 구세 군 자선냄비도 등장했다니 정말 어처구 니가 없다. 뜻 깊은 일에 쓰라고 온정을 베풀었는 데 사익을 추구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 한 것이다.
대기업들이 최순실씨가 깊숙 이 관여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기 부했다가 외려 역풍을 맞는 등 국가의 근 간을 흔든 대형 사건의 여파로 기부문화 자체가 위축됐다. 하지만 이 같은 불신으로 기부문화의 숭고한 뜻이 꺾여서는 안된다. 언론과 비 영리단체(NPO) 등이 나서서 기부를 빙자 한 사익행위를 철저히 차단하고 기부문 화의 가치와 방법을 재정립 시켜 다시 나 눔 확산 운동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그릇된 행태 때문에 기부문화가 사라진다면 이 추운 겨울 힘겹게 살아가는 독거 노인, 소년소 녀가장, 불우장애인등 우리의 이웃들은 더 큰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위해 기부 문화는 다시 대중들의 신뢰를 찾고 활성화 돼야 된다.
<냉정한 이타주의자>라는 책을 보면 감정과 열정으로 선행을 하지 말고 결과 의 효율성을 고려한 냉정한 이타주의자 가 되라고 당부한다. 이해는 가지만 보통 일반인이 그 결과의 효율성을 어찌 알겠 는가? 또한 자선 행위 자체가 개인에게 주는 자존감과 행복감을 무시하기는 어 려울 것 같다. 이기적 이타심은 자선 행위 의 원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사랑의 탑 온도 가 낮아지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사회가 점점 무연사회화되고 있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연사회는 혼자 살고 또한 혼자 죽기도 하는 사회이 다. 무연사회라는 용어는 불자들에게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부처님 핵심 가르침 이 연기론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연기론 의 핵심은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다는 것 이다.
그런데 무연사회는 너는 없고 나만 있 는 사회를 말한다. 모든 존재는 여러 인드 라망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함께 존재하 는 것이다. 그런데 무연사회는 그 연결망 이 훼손되고 끊어지는 사회다. 우리 사회 는 결혼의 기피와 저출산, 1인 가구와 독 거노인의 증가, 이혼 등 으로 가족 해체와 같은 무연사회의 조건들이 점점 늘어나 고 있다. 관계를 벗어나 홀로 사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서 혼자인 사람과 스스 로의 선택에 의해 홀로 사는 사람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 관계 자체에 불편을 느끼고 스스로 자신의 공 간을 축소시키는 홀로족이 점점 증가한 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홀로족이 된 사람도 본질적으로 사회구조에 그 원인 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독거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일종의 도 피처이다.
그래서 참으로 안타깝다. 인간 에게 있어서 삶의 의미와 가치는 ‘함께 하 는 것’에서 나온다. 인류 정신사의 중요 덕목인 자비, 사랑, 중용, 인, 의, 예, 지, 신 등은 모두 함께 살기 위한 공동의 지혜에 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이런 무연사회 속에서 불교 의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 불교는 자비나 눔이라는 큰 그릇을 갖고 있다. 이런 강력 한 무기를 바탕으로 무연사회를 뛰어 넘 는 따뜻한 공동체를 구현시키는 것이야 말로 우리 불교만이 할 수 있는 특화된 일 일 것이다. 이제 자비 실천 과제는 타인을 배려하 는 차원을 뛰어넘어 사회구조의 자비 네 트워크화라는 윤리적 차원의 확장이 어 느때보다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 한국불 교는 ‘이 뭣꼬’ 화두보다도 자비화두가 더 절실한 상황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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