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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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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92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4-03-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신행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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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종선 필자법명 - 필자소속 벽룡사 필자호칭 보살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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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4-03-12 13:20 조회 1,00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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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교도수행체험담 (9회)

새해불공

저에게는 해가 바뀐다는 것은 곧 새해불공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해이니까 새로운 마음으로 올해의 목표를 다잡으며 하나의 동기로 삼는 것입니다. 새해불공을 할 때면 전년도의 허물은 말끔히 씻어내고 새로이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 해의 계획과 목적을 뚜렷하게 세우는 것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새해불공을 시작하면 늘 스승님께서 법을 주십니다. 저는 올해는 어떤 법을 주실지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스승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보살님 올해는 집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하셨습니다. 저는 그땐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당장 집을 살 계획도 없거니와 그에 마땅한 경제적인 능력도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어떤 집을 살 것인지 아무런 계획도 없는 그야말로 완연한 백지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승님의 말씀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어쩐지 스승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스승님께서 잡아주신 목표를 제가 이룬다면 더없이 뿌듯할 것만 같았고 어딘가 모르게 이뤄질 것만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기 때문입니다. ‘내 집 마련’이라는 조금은 막연한 꿈은 곧 ‘아파트 청약’이라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향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또 그때 저는 아무런 경제적인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을 때라서 오로지 저의 일은 불공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새해불공이 끝나고 얼마 지나서 꿈을 꾸었습니다. 열반하신 정사님을 절 앞에서 만난 것입니다. 저는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드리려고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절 앞에 관복을 입은 법관들과 함께 여럿이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제가 다가가기를 조금 망설이자 정사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갔더니 법요식 책에다가 수건을 하나씩 묶어놓은 그것을 저에게 한 짐을 주시면서 “보살님 이거 들고 가서 다른 보살님들과 나눠서 가지세요.”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받아들었습니다. 제가 꿈인데도 아주 정확하게 기억을 하는데 다른 친구들이 저에게 몰려서 그 책을 달라고 하는 와중에 제가 특정한 보살님을 떠올린 것입니다. 건강이 좋지 않으신 보살님이 계셨는데 그 보살님 것을 내가 따로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것과 보살님 것 두 개를 챙기고 나머지는 다른 보살님들에게 나눠준 후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 꿈을 꾸고 난 후에 저는 너무도 감사하게 그해에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어 제집 마련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에게 법을 내려주신 스승님께 꿈속에 나타나 주신 정사님께 너무도 감사합니다.


제 남편은 원래 직업군인으로 생활을 하다가 제대를 한 후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시어머니 건물에서 일을 하였는데 마땅히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 속상해하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당시 아이를 낳은 후 전업주부로 생활을 할 때였는데 시어머니께서 어느 날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범의 사업이 시원치 않아 너무도 걱정이다. 일꾼들과 저렇게 놀고 있는 것을 보니 너무도 속상하다. 그래서 나는 네가 가장 걱정이 된다.” 남편이 자식 된 도리로 불효를 하는 것 같아서 제가 너무도 죄송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남편에게 무어라 말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해불공을 하며 남몰래 다짐하였습니다. 7시간을 앉아서 정진하며 다른 서원은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시어머니를 행복하게 해달라는 것도 감히 바랄 수 없었습니다. 단지 시어머니께서 걱정만 안 하게 해달라고 발원했습니다. ‘부처님. 제가 간절히 바랍니다. 시어머니께서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없도록 도와주세요.’ 불공을 드리다 제 설움에 복받쳐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새해불공 내내 저는 7시간 동안 오직 그것만을 바라고 서원하였습니다.


3월이 되자 시동생이 제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형 어디 취직 안 해? 전공 살려야지, 생판 처음 하는 일을 하면 힘들잖아.” 남편은 그 말에 무언가 느낀 것이 있었는지 전공을 살려 엔지니어 계통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업을 접고 취업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시어머니께서 조금 안심하는 듯하였습니다. 제 간절함을 부처님께서 알아주신 것 같아 너무도 기뻤습니다. 시어머님이 더이상 자식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없게 해 주셔서 너무도 감사합니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 언니 집에 놀러가서 대청마루에 앉아 과일을 깎아 먹고 있는데 집 밖을 지나가던 어떤 나이 지긋한 할머니께서 저를 보시더니 대뜸 “아가씨 남자가 있네. 지금 그 남자랑 결혼하면 손이 귀하게 될 거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퍽이나 여린 성격을 가진 탓에 그 말에 눈물이 핑 도는 것입니다. 그 당시 저는 남자친구(현재의 남편)와의 결혼을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께서 계속 말씀하시길 “쉽게 헤어지지도 못 하겠네.”라는 겁니다. 저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싶지도 않았지만 자손이 귀하다는 말을 그냥 넘기기에도 어딘가 찝찝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울음을 그치지 않자 제 언니가 “괜찮아, 불공하면 돼.”라며 저를 달래주었습니다.


그렇게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결혼생활을 하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아 조금은 고민을 하던 참에 할머니의 말씀이 불현듯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니의 위로도 같이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아이를 갖기 위해 스물 다섯 살에 첫 새해불공을 했습니다. 7시간 정진도 그때 처음 하였습니다. ‘부처님. 제 인연에 맞는 자식을 원합니다.’ 처음엔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다리가 아프고 허리도 아팠지만 제가 참고 견딘다면 분명 그에 응하는 결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꿈에 그리던 첫째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아들은 어딜 가면 항상 불교가 모태신앙이라며 너스레를 떨곤 합니다. 건강하게 자라준 제 아이와 인연에 꼭 맞는 아이 둘을 보내주신 부처님에게 너무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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