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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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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16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9-07-05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문화3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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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은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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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1 11:29 조회 2,03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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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영화에서 불교보기 (5회)

죽음,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부처님께서 살아계실 때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하늘이 무너지랴 땅 이 꺼지랴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자 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는 데 아마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 자식 잃은 고통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인의 슬픔에 대해서 들은 부처 님께서는 그녀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주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 라기라도 잡는 것처럼 절망에 빠진 그녀는 부처님께서 던진 희망에 집 착했습니다. 그 희망이 무엇이냐면, 죽음이 없었던 집을 찾아내서 그 집 에서 겨자씨를 한 주먹 얻어오면 아 들을 살려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잃은 여인은 그런 집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다녔습니 다. 한 집 두집 몇 날 며칠 몇 개월 을 그렇게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을까요? 결과는 실패로 끝 났습니다. 그녀는 부처님이 내주신 과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당연히 실망하여 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죽 을 것 같던 기분이 많이 가벼워지고 자식을 잃은 슬픔에서 점점 빠져나 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그녀에게 이런 과제를 내주신 것은 죽음은 내게만 오는 문 제가 아니고 태어난 것은 모두 죽는 ,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일깨워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녀는 마침내 이 진리를 깨달은 것이었지요. 태어난 것은 모두 죽어야 하고, 또 인간이라 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요. 부자 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병든 사람이 든 건강한 사람이든 늙은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죽음이라는 한계상황 을 갖고 태어났다는 것을요.

그녀가 절망으로부터 몸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이 운명을 수용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상황을 받아들 일 수 없어 고통스러웠는데 차츰 죽 음이라는 인간의 조건을 수용하면서 그녀는 마침내 아들의 죽음 이라는 극한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죽은 아들을 둔 여인 과 같은 운명을 타고난 또 한 사람 이 있습니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의 벤자민 버튼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벤자민(브래드 피 트)은 다른 사람과 좀 다릅니다. 보 통 사람들은 갓난아기로 태어나서 늙어가면서 죽음을 맞습니다. 그런데 벤자민은 여든 살 노인네로 태어나

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젊어지다 가 나중에는 아예 갓난아기가 돼버 립니다.

왜 이런 시도를 했냐고요? 영화는 본내용에 들어가기 전에 에피소드를 하나 끼워 넣었는데 프롤로그에,해 당하는 이 시퀀스를 통해서 그 의도 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벤자민 버튼이 태어나던 날 뉴올 리언스 역에는 시계가 걸립니다. 이 시계는 특이하게 거꾸로 가는 시계 입니다. 맹인 시계공이 만든 시계입' 니다. 이 사람이 왜 이런 시계를 만

들었냐면,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 들이, 그 귀하디 귀한 아들이 1차 세 계대전에 참전했다가 한 줌의 재가 돼 돌아옵니다. 그래서 그는 부처님 당시의 자식을 잃은 어머니처럼 자 식을 살리고 싶은 염원을 갖게 됩니 다. 그 바람이 얼마만큼 강렬할 지는 짐작이 갑니다.

그래서 두문불출한 채 오직 거꾸 로 가는 시계 만들기에 몰두합니다. 시계가 거꾸로 흘러서 자식이 전쟁 에 참전하기 이전의 시간, 즉 자식이 죽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기를 바 랐던 것이지요.

시계공의 염원은 죽음에 대한 거 부였습니다. 이 시계공의 죽음에 대 한 저항감에서 태어난 아이가 벤자 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벤자민 이라 는 존재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거절 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보통 태어남과 동시에 늙는다는 말처럼 우리는, 살아간다는 자체가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는데, 만약 거 꾸로 시간이 흐른다면 어쩌면 영원 히 살지 않을까, 죽음 같은 게 우리 를 피해가지 않을까, 하는 발상에서 이 영화는 만들어진 것입니다. 즉 한 계상황인 죽음에 대한 인간의 반항 인 것이지요.

그런데 이 영화는 ‘거꾸로 가는 시 간’ 이라는 모티브와는 상반되게 영

화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즉 우리는 죽은 아들을 둔 여인의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죽 은 아들을 둔 여인이 돼서 죽지 않 은 집을 찾아다녔던 우리는 뜻밖에 도 그 여인처럼 죽음을 당연하게 받 아들이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 는 부처님께서 불쌍한 어머니에게 주신 깨달음인, 이 세상에 죽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는다. 그러니까 죽음을 수 용해서 차라리 편안해져라, 입니다.

이러한 주제를 가장 선명하게 보 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벤자민의 인생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예인선 선장이 죽는 장면입나다. 죽음수용의 적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선장은 총포에 맞아 피를 철철 흘리면서 죽 어갑니다. 죽는 순간 그는 이런 명언 을 남깁니다.

“삶이 마음에 안 들면 욕을 하고 반항할 수도 있어. 하지만 죽음 앞에 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냥 받 아들여야 해.”

인간의 운명에 대한 수용이고, 죽 음에 대한 수용의식을 꽤 적절하게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바다를 떠돌 면서 거칠게 살았던 뱃사람의 입에 서 나온 성찰입니다. 소

거꾸로 가는 시간을 살았기 때문 에 영원히 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던 벤자민 버튼 또한 영화 말미 에서 강보에 싸인 갓난아이가 돼 조 용히 눈을 감습니다.

거꾸로 가는 시간을 살았던 벤자 민도 죽음 앞에서는 다른 사람과 마 찬가지였습니다. 피해갈 수 없었지 요. 영화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게지요. 거보I,벤자민도 죽잖아, 죽음 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 어, 라고요.

참 아이러니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영생을 추구했던 영화가 오히려 죽 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다소 묵직 한 메시지를 주는 게요. 왜냐면 영원 히 살아간다는 건 판타지에서나 가 능한 것이기 때문인 게지요. 부처님 께서 여인에게 준 메시지는 순리이 고 진리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죽음’ 이라는, 헐리우드 영화로는 색다른 주제를 들고 나온〈벤자밑조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표사 콧 피츠제럴드의파편〈벤자민 버튼 의 흥미로운 사건〉에서 출발했습니 다. 50여쪽 분량의 단편에서〈포레스 트 검프〉의 작가 에릭 로스는 모티 브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모두 새롭 게 꾸몄습니다.

〈포레스트 검프〉라는 흥행영화를 만들었던 작가의 솜씨라서 영화는 볼거리도 풍성합니다.

벤자민이 12살, 데이지(케이트 블 랑쉐)가 6살 때 시작된, 둘의 한평생 을 이어가는 인연과 사랑이 영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으며, 특별한 삶을 부여받았지만 우리들과 별로 다르지 않게 성장하는 벤자민의 성장과정이 또 다른 축을 이룹니다. ‘죽음’ 이라 는 묵직한 알맹이를 멜로드라마와 성장기라는 포장지로 싼 격이지요. 그래서 영화는 2시간 30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을 갖고 있지만 별로 지루 하지 않습니다.

-김은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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