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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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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19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8-02-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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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7 09:46 조회 2,3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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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한국불교이야기 (1회)

불교의 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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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정사


1. 고구려의 불교 전래 


한반도에 최초로 불교가 전해진 것을 기록한 자료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있다. 이 기록들에 의하면 고구려의 제 17대왕인 소수림왕 2년(372년), 전진왕 부견이 사신과 승려 순도를 통해 불상 과 불경을 보냄으로써 시작되었다고 한 다. 그리고 그 2년 뒤, 승려 아도가 왔으 며, 그 다음해 2월에는 성문사를 세워 순 도를 머물게 하고, 이불란사를 지어서는 아도를 머물게 했다. 한국불교사에서는 이렇듯 372년에 고 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것을 한국불교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통례인데, 다른 자 료들에 의하면 372년 이전에 이미 민간 경로를 통하여 고구려에 불교가 들어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소수림왕의 불교 공인은 이미 전파되어 있었던 민간 신앙 의 불교를 재확인한 것에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당시의 전진왕이 고구려에 불교를 전 파한 이유는 중국의 북방을 점유하고 남 방의 동진과 대치한 상황에서 후방에 위 치한 고구려와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한 정치적인 이유가 깔려있었다. 이러한 저 의를 소수림왕이 받아들이고 기존 민간 불교세력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 서 비로소 고구려의 불교 공인이 가능했 을 것이다. 




2. 백제의 불교 전래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12년 후인 384년에 중국 동진의 강남불교가 백제 에 전래되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 침류왕 원년(384) 9월에 호 승 마라난타가 동진에서 왔다. ‘호승’이 라는 호칭으로 보아 마라난타는 아마도 인도의 승려이거나 중앙아시아 출신의 이국인이었을 것이다. 백제왕은 이 승 려를 궁중으로 맞아들여 예경함으로써 백제불교가 시작되었다. 마라난타가 백 제에 왔을 때 동진의 왕은 효무제(373- 396)의 시대로서 동진의 모든 제왕 중 가 장 불교를 신봉한 제왕으로서 유명하다. 

백제의 이와 같은 불교의 수용은 고구 려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배경이 있었 을 것이다. 마라난타에게 대한 극진한 대우에서 알 수 있듯이 백제 왕실은 마 라난타의 신통력과 주술에 의지하여 왕 실의 안녕을 빌고자 하였고 아울러 전란 기의 동요하는 민중들을 통제할 새로운 지배이념으로써 불교를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마라난타가 떠나왔던 중국 의 동진 역시 북쪽의 전진과 대립을 계 속하고 있었으므로, 동진의 사절과 함께 백제로 건너온 마라난타의 전교 역시 외 교적·정치적인 이유가 배경이 되었을 것 이다. 




3. 신라의 불교 전래 


신라의 불교공인은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150년가량 늦다. 삼국유사에 의하 면 신라에서는 제23대 법흥왕 때인 527 년(혹은 528년)에 이르러서야 불교가 공 인되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신라에는 불교 가 전래되어 있었음을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신라에서는 불 교의 수용이 원만하지 않아서 불교를 전 파하러 온 승려들도 그 뜻을 이루지 못 하고 죽음을 맞기도 하였다. 법흥왕에 이르러 군신들이 봉불을 반 대하는 가운데 이차돈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순교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비로소 신라에서 도 불교를 공인하게 되는데 그것은 신라 에서 왕권신장을 위한 새로운 이념적 기 둥을 불교로 삼고자하는 왕권의 이해관 계와 신앙의 자유와 불교공인을 요구하 는 불교도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불교 가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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