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심으로 정진하면 부처님의 은은한 가피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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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97호 발행인 발간일 2007-12-01 신문면수 12면 카테고리 기획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윤우채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윤우채 기자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6 11:45 조회 3,594회본문
진언행자의 가족을 찾아서 관성사 신 일생 (이타심) 교도
"옴마니 반메 훔!!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밥도 잘 먹고 키도 쑥쑥 크고 있어요”
“옴 마니 반메 훔!! 그래 귀여운 우리 애기, 참 착하구나. 엄마 아빠 말씀 잘 듣고 예쁘게 자라야 한다”
신 일생(법명 : 이타심. 64)보살이 서독에,있 는 어린 손녀와 나누는 대화다.
“옴 마니 반메 훔, 안녕하세요”
이타심 보살은 이른 새벽마라 하는 일이 있 다. 아침 밥을.짓고는 그 위에 ‘옴’자를 그리 는 것. 그리고 '온 '가족이 진언이 새겨진 음식 을 먹어 건깅해지고 힘을 내서 하는 일과 불공수행을 잘 해 나가기를 발원한다. 전화를 하든 밥을 먹든 사소한 일까지도 모두 진언과 관련 돼 있으니 그야말로 일상생활이 모두 진언수행 인 셈이다.
이타심 보살은 4남매를 두었는데 어려서부터 지성학교를 다니게 하고 육자진언을 가르쳤다.
자녀들이 공부를 할 때와 장성해서는 크게 강 요는 안하고 다만 월초불공일을 미리 알려 주고 진언수행을 권했다. 나중엔 -자청해서 서원당엘 나오더란다. 지금은 온 가족이 신심깊은 진언행 자가 됐다. 막내 아들은 결혼식 당일날에도 새 벽불공을 하고 식장엘 갔다.
다니며 자연스럽게 진언행자가 될 수 있었다. 처녀시절엔 포항 수인사를 다녔고 결혼 후 상 경해서는 관성사 교도로 오래도록 수행을 해 오고 있다. 진언행자 가족 대개가 그렇듯 보살 이타심 보살은 초등학교 때부려 자성학교를 역시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4시면 불공정진을 하셨습니다. 그런 정진력으로 어려웠던 여건에 도 저희 6남매를 키워 내셨고 당신도 평생 무 탈하게 사셨습니다. 어머니를 보며 지극한 신 심을 내면 업도 바뀔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 니다”
이타심 보살의 여섯 형제들도 모두 교도이거 나 사원 임원을 할 만큼 신심이 깊다.
이타심 보살의 남편 김 홍조(법명 : 도신. 71)각자도 든든한 도반이자 후원자이다. 김 각자는 유력 일간지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인이었 다. 그러다 보니 문화 종교계도 훤히 알고 있 었을 터. 한 번은 문화부 부하 직원에게 불교 관련 서적을 모두 가져 오라고 해서 당시 불교 계와 각 종단들을 면밀히 파악해 보았다 한다.
도대체 총지종이 어떤 종단이길래 보살이 그 렇게 좋아하는지 알고 싶었던 것. 덕분에 불교 공부도 많이 하게 되고 간단한 설명 정도는 할 수 있게 됐다. 그 후 김 각자는 주위에서 법 사 소리를 듣는다고.
월초불공이면 기운 펄펄
“우리 보살은 서원당에 가거나 월초불공 때만 되면 기운이 펄펄 납니다. 아무튼 절 얘기만 나 오면 무조건 좋아한답니다. 종손 며느리로 집안 의 대소사는 물론 수행 정진에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보살의 마음이 부처님 마음 으로 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수년 전 공교롭게 세 자녀들이 대학 입시를 치르게 됐는데 모두 낙방을 했다. 이타심보살 은 ‘그렇게 열심히 불공을 했건만 부처님도 무심하시지’ 하면서 한 동안 낙심해 있었다. 하 루는 다니던 절의 전수님이 “내 자식뿐 아니라 주위의 인연자들을 위한 불공을 해보라”는 조 언을 해 주었다. 이타심 보살은 매일 정송 말 고도 3시간씩 100일 정진을 해 나갔다.
시험당일 서원당에 가서 불공을 드리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라디오에서 “서울의 지정새는 까치입니다! 라는 소리가 을러 나오더란다. 직 감적으로 좋은 결과를 알 수 있었다. 결과는 세 자녀 모두 합격. 보살은 신이 났다. 자녀들 의 합격도 기쁜 일이었지만 불공을 해 가면서 얻어진 정진력 때문에 더 흥이 났던 것.
“불공공덕은 참으로 신기하고 미묘합니다. 지심으로 정진을 하다보면 불보살님의 은은한 가피가 느껴지고 때로는 바로 바로 법문을 해 주시는 듯 해요. 진언수행으로 업식이 맑아지 면 자연히 지혜안이 열리는 거겠죠.”
이런 일도 있었다 한다. 하나밖에 없는 외동 아들이 대학때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는데 독 일에서 급작스런 위궤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 이 들려 왔다. 이타심 보살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서원당으로 달려 가 불공기도를 올렸다.
관세음 보살이 대의왕으로 현신했을'까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 거리에서 쓰러진 채 로 있는 아들에게로 어디선가 한국인 의대생이 나타나더니 응급처치를. .하고 급히 병원으로 후 송, 무사히 수술을받을수 있었다.
이타심보살은 이렇게 앉으나 서나 불공이다. 하루 기본 정송은 물론이고 과거에는 7정진도 밥먹듯 했다. 불공수행이 고생스럽거나 해태심 이 들지 않았냐는 이타심이란 법명에 어울리게 보살은 남을 위 한 봉사와 기도를 강조하면서 총총한 눈으로 말한다. ,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고, 내 허물불공 을 많이 합니다. 몸이나 마음으로 남을 도우려 하고, 절에 가서도 주로 남이.안하는 허드렛 일 을 찾아서 합니다. 남편과 자녀들에게도 그저 봉사하는 마음으로 대하구요. 봉사와 감사하는 마음으로-살다보니 남과 내 자신 그리고 모든 일이 다 잘 돼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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