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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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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21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8-03-30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정진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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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20 09:50 조회 2,85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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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한국불교이야기 (3회)

고려 시대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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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사 주교 지정 정사


통일 신라 말의 어지러운 정치 속에 탄 생한 고려 태조 왕건(877-943)은 고려의 건국이 부처의 가호력으로 이루어진 것 이라 하여 불교를 보호하고 많은 사탑을 건립했다. 태조는 지방 선종의 지도자인 수미산 파 이엄을 왕사로 모심으로써 그의 협력 을 받아내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화엄종 의 양대 지도자 중 한 사람인 희랑의 협 력도 얻어냄으로써 지난날 신라 봉건지 배체제의 이념인 교종 세력까지도 포섭 했다. 또 후삼국 통합 직후에는 전승지인 후 백제 지역 논산 천호산에 개태사를 창건 하였는데 이곳에 미륵삼존의 석불이 있 는 것으로 보아 미륵신앙이 흥성하던 후 백제 지역의 민심을 수습하려는 의도도 찾아 볼 수 있다. 

고려 태조가 시행한 숭불정책은 그의 후계자들에게 그대로 이어져 고려 최후 의 왕인 공양왕에 이르기까지 불교를 믿 지 않은 왕이 없을 정도였다. 불교는 이처럼 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국교’의 지위를 차지하였는 데, 마침내 제4대 광종(950-975) 때 승과 제도가 시행됨으로 승려지도자를 선발 하는 국가제도가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이후의 고려 불교사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은 천태종을 일으킨 대각국사 의천 이다. 왕자의 신분으로 불교에 귀의한 그 는 송나라에서 유학하면서 받아들인 천 태종을 고려에 이식하였다. 

의천과 더불어 고려시대의 고승으로 보조국사 지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지 눌이 등장할 무렵의 고려불교는 국교로 서의 튼튼한 기반을 갖추고 있었으나 동 시에 타락의 양상이 노골화되었던 시점 이었다. 무신집권기에 활동한 지눌은 이 당시 에 폐단이 많았던 고려불교를 재정립하 려고 노력하였다. 지눌의 노력으로 당시 무익한 분쟁이 많았던 선종과 교종간의 대립이 종식되 었고 실천수행이 지향됨으로써 고려불 교가 발전하는데 큰 바탕이 되었다. 고려 후기의 불교는 왕실과 권력자들 이 결탁하여 많은 토지와 노비를 차지하 고, 소작, 양조, 축산, 고리대 등을 통해 물 질적 이익을 꾀하며 날로 타락해감에 따 라 불교는 성리학자와 신진사대부의 거 센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불교 배척론을 더욱 높은 수준 에서 심화시키고 집대성한 것은 성리학 자이며 급진적 사대부세력의 중심인물 인 정도전이었는데 당시 왕실 기복적인 불교행사가 나라의 재정을 탕진하고 있 던 상황에서 그의 이론은 진보적인 견해 였다. 그의 논리적인 불교 배척론은 고려 지배계급의 이념이었던 불교를 몰락시 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결과로 불교는 고려 왕조 멸망 이후 조선시대에도 배척당하는 수난을 겪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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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국사 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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