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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본래 청정, 밀교와상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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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31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10-10-15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교리/건강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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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3 07:46 조회 2,05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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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총지화 스승님 달라이라마 친견기 (1회)

“마음은 본래 청정, 밀교와상통”
대승 보리심 발하는 보리심석 무명 없애는 방편이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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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초전법륜 의 해설 서인 용수보살의 저서〈보리심석〉은 본래 인간의 마음은 청정하며 밀교와 상통하는 것으로서 인간 마음의 허물 을 없애는 것을 관건으로 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미세한 의식 상태를 현현시키는 것이 밀교의 수행방식입니 다. ’

우리가 어떤 법을 설하고 듣는데 있 어서 근기서벼#)는 매우 중요합니다. 설법자와 법을 듣는 이 모두 절실한 신심을 가지고 부처님의 불법을 유지 하고 받들겠다는 마음으로 법을 설하 고 제자 역시 신심으로 수행해야 합니 다. 그 중심에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 다. 멸성제  즉, 번뇌의 허물에 서 벗어난 열반을 이루기 위해 불교 수행을 합니다. 비폭력으로 선취에 들 수 있지만 반드시 지혜가 있어야만 열 반에 이를 수 있습니다.

' 무명을 없애기 위한 방편이 바로 수 행입니다. 수행하며 일어나는 지혜에 는 사해 에 의해 일어나는 지혜 가 있어야 하며, 그 이전에는 문해 가 일어나야 합니다. 수습해서 일어 ,나는으지혜를 수해 라고 하는데, 우리가, 공'성 을 사유함에 있어서 확신을 스스로 이끌기 위함입니다. 많 이 듣고 공부하는 문 을 시작으로 사수 의 과정은 반드시 인과의 관계로 성립합니다. 지금 이 자리는 우 리가 성불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 이며 이 자리에서 법을 듣기 위해 모 인 동기를 바로 세우십시오.

모든 고통의 근본은 번뇌이고 그로 인해 아집 이 생깁니다. 나만 소 중하다는 이기심이 지구상의 모든 문 제를 불러일으킵니다. 꿈에서도 나라 는 생각이 있습니다. 나라고 하는 실체 가 없음에도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에 게 유익하지 않고 해롭다면 우리는 아견의 반대되는 생각인 무아 와 아집의 반대된 생각인 보리심  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을 심도 있게 다룬 것이 용수 보살의〈보리심석〉입 니다. 이 가르침에 따라 무아의 지혜를 증장시키고 이타심을 키워 나간다면 일시적인 행복이 아닌 지속적인 행복 이 찾아올 것입니다. 두려움 없는 행복 은 몸과 마음을 평안하게 합니다.

〈보리심석〉은 무아의 지견을 이야기합니다. 부처님의 경장에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의 오온(규: 생멸 변화하 는 모든 것을 구성하는 다섯 요소 즉, &에 의지해 존재한다고 말 씀하십니다. 이것이 인무아 입 니다. 경량부에서 이야기하는 인무아 는 몸과 마음을 좌지우지 하는 주체로 서 독립적인 실체로서의 ‘아 ’가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설일체 유부와 경량부에서는 인무아를 향유하 는 존재자의 실체가 존재하지 않음으 로 점차적으로 수행하면 ‘아’의 집착 을 소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유식학파 와 중관에 있어 인무아와 함께 거론되 는 것이 법무아 입니다. 아의 집착을 없앨 때는 인무아이지만 반대로 향유하는 주체 대상이 아직 남아 있음으로 법아의 집착은 끊어집니다. 물론 인무아를 수행했을 때 법에 대한 집착도 줄어듭니다.

인식하는 대상과 주체는 상호 의존 적으로 안립되는 것입니다. 의지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자성 은 없습니 ’다.'쵸렇기에 마음은 이름에 지나지 않 오디,-이름과 달리 조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결국은 언어'또한 무자성  인 것입니다.

마음은 환 의 본성입니다. 예를 들어 안식 은 안근 과 대상 경계가 만날 때 일어납니다. 일반 적인 생각에 우리의 마음과 몸이 실체 인양' 느껴지지만 실상은 이것이라고 규명하려 할 때 결코 실체는 얻을 수 없습니다. 마음을 비롯한 모든 제법은 상호의존에 의해 존재하니 본래 자성 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일체의 희론이 적멸한 무분별의 지혜가 생기기 이전 에는 대상이 마치 진실인양 여겨집니 다.

어떤 이에게 분별이 일어난다면 공깨)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는 승의보 리심 과 관련이 있습니다. 의지해서 공을 이름붙인 것뿐이지 공 또한 실재하지 않습니다. 보리라는 말 은 ‘희론의 적멸’을 의미합니다.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모든 허물이 벗겨져 본래가 드러난 것을 의 미합니다. 집착하는 의식 또한 적멸했 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리 란 성품이 없고 생함이 없으며 존재한 적이 없어 허공과 같습 니다. 공성을 깨달은 승의의 보리심은 분별로는 알 수 없습니다. 깨달음의 정 수에 머무시는 부처님은 언제나 공이 허공과 닮았음을 아십니다. 붓다라는 말 속에도 ‘청정하다’, ‘그치다’고 하 는 의미가 있습니다. 집착의 근거가 모 두 적멸한 상태입니다.

희론의 적멸이 바로 공성 입니 다. 이런 공성을 깨달은 지혜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음과 대치합니다. 반야경 에서 ‘제법이 무자성’이라는 궁극의 실상을 말씀합니다. 선 , 불선 이란 분별의 흐름을 깨 것이 공’입 니다. 마음에 의식의 대상이 없는 머무 름은 허공의 성품입니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집착하는 것은 모두 배제되어야 합니다. 공의 사자후 에 모든 실유론자 들은 두려 움에 떨었습니다. 실체가 있는 타력을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외부 조 건에 의해 결과물이 발생한다고 믿어 왔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초전법륜 이후 부처의 궁극적인 목적은 일체종 지를 이루고, 이를 위해 승의보리심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자성은 제법 의 법성입니다. 사탕의 달콤함과 불의 본성인 뜨거움과 같이 모둔 법의 본성 을공으로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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