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緣起)의 이해와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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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25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8-07-30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법경 필자소속 법천사 필자호칭 주교 필자정보 법경 정사 (밀교연구소장/법천사 주교/ 철학박사)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21 04:26 조회 4,469회본문
연기(緣起)의 이해와 수행
법경 정사
(밀교연구소장/법천사 주교/ 철학박사)
일체는 연기(緣起)로서 존재한다
우주 삼라만상의 존재를 불교에서는 연기(緣起)로 설명 하고 있다. 일체 존재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因)과 연 (緣)이 화합(和合)하여 일어난다[生起]는 것이다. 이 인연화 합(因緣和合)의 생기(生起)를 줄여 연기(緣起)라고 한다. 연 (緣)하여 일어난다[起]는 의미다. 어떻게 연기하는가? 불교에서는 이를 여러 가지 교설로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가 업감연기(業感緣起)다. 세상에 일어나는 현상 들은 모두 중생의 업인(業因)에 의해서 생긴다는 세계관이 자 인간관이다.
즉 중생과 세계는 중생들 제각기의 업력에 따라서 그 과보로써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각기 뜻을 결정하고, 그 결정을 행동으로 나타내게 되는데, 신구의(身 口意)라는 삼업의 활동과 그 업력에 의해서 모든 결과가 일 어난다는 것이다. 즉 업의 결과로써 이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과 세계는 천차만별인 것이다. 지은 업 (業)의 차이 때문이다.
업감연기-업의 의해 과보가 생긴다
아뢰야 연기-업식(業識)에 의해 과보가 생긴다
그렇다면, 업의 결과가 일어날 때까지 그 업력은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한 설명이 바로 유식사상(唯 識思想)에서 말하는 아뢰야식 연기다. 유식은 ‘오로지 식 (識)만이 존재한다’는 사상으로 업력에 의해 과보가 있게 되는데, 그 업력이 아뢰야식에 존재해 있다가 과보를 일으 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야뢰야식을 업(業)의 종자식(種子 識)이라 한다. 우리가 육도 윤회하는 바탕이 바로 이 아뢰야 식의 존재에 기인하고 있다. 육신(肉身)은 사라져도 식(識) 이 남기 때문이다.
이를 영식(靈識)이라 한다. 우리가 영식 불공을 하는 이유이자 근거다. 아뢰야식으로 남게 되는 것은 무명(無明)때문이다. 무명 이란 지혜가 없음을 말한다. 지혜가 없기 때문에 이를 망식 (妄識)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아시는 것은 지(智)라고 하고 중생이 아는 것을 식(識)이라 한다. 그래서 유식에서는 중 생이 망식(妄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이를 청정한 식 (識)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를 전식득지 (轉識得智)라 한다. 수행을 통해서 바꿀 수 있음을 말해주 고 있다.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배우고 닦고 실 천해야 하는 이유다.
진여연기-본래부터 갖추어진 불성이 일체를 이룬다
법계연기-삼라만상이 서로 무진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원래부터 중생은 청정하다는 사상이 있 다. 여래장사상이다.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다는 사상이다. 그 불성을 진여(眞如)라고도 한다. 중생의 본체(本體)가 진여(眞如)이며 이 진여가 연(緣)에 따라서 우 주 삼라만상의 모든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를 진여 연기(眞如緣起)라 한다. 본래부터 불성이 갖추어져 있다면 그것은 어디에 존재하 고 있는가? 그에 대한 답을 화엄(華嚴)의 법계연기(法界緣 起)로 설명할 수 있다.
법계의 삼라만상이 천차만별하나 피 차가 서로 인과관계를 지니고 있어서 어느 것 하나 단독으 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상이다. 그래서 만유(萬有)를 모두 동일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모두 상의상관(相依相關性)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인드라망과 같이 중중제망 (重重帝網), 중중무진(重重無盡)으로 연기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주의 만물은 각기 하나와 일체가 서로 연유하여 있는 관계이므로 이를 법계무진연기(法界無盡緣起)라 한 다. 우주 삼라만상의 법계가 무진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이다.
밀교의 육대연기-육대가 삼라만상의 체(體)를 이룬 다
이러한 연기는 밀교에 와서 육대연기(六大緣起)로 설명 된다. 지·수·화·풍·공·식의 여섯 가지 요소가 법계 를 이루며 그 여섯이 연(緣)하여서 일체를 이룬다는 것이 다. 이 육대를 체(體)로 하여 삼라만상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를 교리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밀교의 ‘만다라’이다. 만 다라 속의 수많은 불보살이 서로 상의상관적 인과관계에 있으며, 하나 속에 일체가 있고 일체는 곧 하나로 연결되 어 있다. 비유하자면 비로자나불이 아축불·보생불·아미타 불·불공성취불로 나누어지고, 이것이 하나를 이루면 대 비로자나불이 되는 것이다. 화엄의 일즉다(一卽多) 다즉 일(多卽一)이 밀교적 모습으로 계승된 것이다. 만다라는 모든 중생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지만 모 두가 연기해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나와 너는 적대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존과 불이(不二)의 관계 속에 있는 것이다. 둘이 하나요 하나 속에 둘을 이루고 있는 것 이다.
만다라관(曼茶羅觀)을 통해 자비심을 기른다
염송하는 가운데 본존 좌우의 만다라를 응시해보라. 만 다라 전체를 보거나 한 분 한 분의 불보살을 자세히 들여 다 보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불보살을 마주하게 될 것이 다. 만다라를 응시하는 것이 곧 만다라관(曼茶羅觀)이다. 그 속에 불보살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고 저 사람 이 있으며, 우리 모두가 들어 있다. 따라서 너와 나를 분별하지 말고 배척하거나 증오할 필 요가 없다. 남을 배척하거나 증오하는 것은 곧 자신을 배 척하고 증오하는 것과 같다. 만다라를 통해 서로를 아끼 고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보자. 이것이 진정 부처님께서 우 리에게 설하신 연기의 가르침이다. 모든 사람을 보듬을 수 있는 진언행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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