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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 분란 그리고 연이은 사고, 오직 계행으로 함께 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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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92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4-03-01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기획특집 서브카테고리 총지종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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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4-03-12 13:16 조회 1,0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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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 분란 그리고 연이은 사고, 오직 계행으로 함께 일어서

비상종단운영위원회 출범 


종단은 수많은 법문과 경전, 수행의궤, 제도 등으로 확고부동한 지침을 마련해 놓은 바탕 아래 흔들림 없이 나아갔다. 교세는 꾸준히 확산되었고 스승과 교도들의 신심과 수행력은 깊어갔다. 그러나 대성사의 입멸 이후 한 치의 동요도 없이 발전을 거듭하던 종단에도 한 차례 위기가 불어 닥쳤다. 


1988년 9월 지인사 교도 20여 명이 통리원에서 농성을 벌이고 종의회 회의를 방해하는 일이 발생했다. 표면적으로는 사원 신축에 대한 이견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계행을 위반한 지인사 주교 징계 결정에 대한 항명이었다. 범계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승직자와 여기에 부화뇌동한 일부 교도들이 벌인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종단은 같은 해 12월 1일 승단총회를 개최하여 ① 종단과 승단의 위상을 실추시킨 일부 승직자에게 참회를 요구할 것 ② 불미스러운 사태를 책임지고 현 종의회를 해산할 것 ③ 지인사 신축문제는 승단과 교도의 화합을 선결한 이후에 추진할 것을 결의했다. 이어 2회에 걸친 사감위원회에서 지인사 주교 및 교무의 진술과 심리를 진행하여 주교의 치탈도첩과 승적 제적, 교무의 공권정지 1년 및 100일 근신불공의 징계를 의결했다. 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대다수의 지인사 교도들은 동요하지 않고 불공을 이어갔다. 사태 해결을 위해 청암 정사를 지인사 주교로 파견하여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은 교도들을 다독이며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얼마 못 가 종단에 항의를 표했던 교도들 대부분이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고 종단의 입장을 전적으로 따르기로 하면서 갈등은 마무리 되어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89년 1월 공무출장 중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불의의 사고로 지덕 정사가 사망하고 통리원장과 실보사 주교 부부가 중상을 입었다. 이에 환당 종령은 지인사 문제와 불의의 교통사고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1989년 4월 18일 강공회에서 종령과 통리원 집행부의 일괄 사표의사를 표명했다. 사태 해결을 위해 비상종단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근래에 발생한 제반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여 종단을 일신하기로 결의했다. 비상종단운영위원회는 수성 정사를 의장으로, 청암 정사, 하정 정사, 의강 정사, 원봉 정사, 법성 정사, 총지화 전수를 위원으로, 경관 정사를 고문으로 선출했다. 


수차례 회의를 거친 비상종단운영위원회는 1989년 7월 27일 승단총회를 통해 록정 대종사를 제4대 종령으로 재추대하기로 결의하고 통리원을 비롯하여 사감원, 종의회, 원의회, 법장원, 교육원을 총망라한 대폭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이어 종법의 보완과 정비에 필요한 사항을 종합적으로 발표했다. 사원 운영과 인사, 징계 절차 등을 명확히 하여 법적, 제도적으로 오해와 갈등의 소지를 사전 차단하고 원칙과 화합으로 종단을 이끌 수 있도록 수습책을 제시했다. 


환당 종령 재추대


전면적인 쇄신을 단행하고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와중에 이번에는 동해중학교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1991년 4월 동해중학교 직원이 교육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법인의 인사발령에 불만을 품은 직원이 있지도 않은 학교 비리를 교육부에 제기하고 감사를 요청했다. 곧바로 부산시 교육위원회에서 특별감사를 진행하여 진정내용은 모두 사실무근임이 밝혀지고 일부 서류상의 미비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사실무근으로 결론 났지만 잘못된 소문은 음성적으로 퍼져나갔고 이를 등에 업은 일부 교도들은 또다시 동해중학교 사건을 빌미로 소요를 일으켰다. 일부 승직자가 새로운 종법 시행에 반발하여 회의장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신정회 서울지회는 동해중학교의 인수절차와 적법성을 비롯하여 수련원, 종유재산, 승단의 인사문제에 대한 건의와 해명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종단 집행부에 비리가 있는 것처럼 유언비어가 난무하면서 불신이 확산되는 조짐을 보였다. 록정 종령은 곧바로 모든 문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사의를 표하고 화합으로 사태를 해결할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 이에 종정자문위원회 회의를 비롯하여 창종 당시 참여했던 원로스승회의와 확대간부회의를 연이어 개최하여 해결책 마련에 부심했다. 


1991년 9월 12일 승단총회에서 신정회 간부 30여 명이 동석한 가운데 제기된 모든 문제와 이와 관련된 내용을 낱낱이 보고하고 시시비비를 가렸다. 열띤 토론 끝에, 소요를 일으킨 이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정확히 묻되 승직자와 교도 모두가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는 데 협력하기로 결의했다. 이후 통리원 집행부와 원의회, 종정자문위원의 인사 개편을 통해 공정한 종단 운영을 꾀하고 종단을 다시 안정시키기 위해 배전의 노력을 기울였다. 종정자문위원회의, 확대간부회의, 승단총회 등 지속적이고 끈질긴 회의를 통해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1992년 4월 22일 승단총회에서 환당 대종사를 제5대 종령으로 재추대하고 진용을 다시 정비했다.


화합과 공명정대한 시스템으로 위기 극복 


종단 역사상 초유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결성한 비상종단운영위원회는 1989년 7월 27일 승단총회를 통해 공백 상태인 종단 기구의 전체 인사를 단행하고 곧바로 종헌 종법의 보완과 정비에 착수했다. 1990년부터 매년 전국 사원의 운영 실태를 지도 점검하여 행정 및 회계 문서, 예산 집행의 적정성을 정비했다. 사원 운영의 투명성과 절차상의 완벽을 기할 수 있도록 종단의 운영원칙과 세부사항을 지도했다.


또한 동해중학교 사태의 여파로 위기에 처하자 1991년 4월 종령자문위원회를 종정자문위원회로 변경하고 참여폭을 대폭 확대했다. 비상종단운영위원회에서 개정 보완된 종헌과 각종 법규를 철저히 준수할 것을 결의하고, 불화와 갈등을 조장하거나 승단의 화합과 종풍을 어지럽히는 행위에 대해서는 진실을 규명하고 근절하기 위해 다각도의 방법을 강구했다. 재단, 종의회, 사감원, 원의원, 지역교구장이 참여하는 확대간부회의, 집행부와 신정회 대표가 참석하는 연석회의, 그리고 승단총회 등을 개최하여 일선 승직자와 신정회 간부와의 폭넓은 의견교환과 의사소통을 도모하고 원만한 문제해결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했다. 


1992년 4월 22일 승단총회에서 추대된 환당 종령을 중심으로 종단은 제반 법령을 보완하고 신규 법규를 마련했다. 종법과 각종 법규의 세부 사항을 지속적으로 보완 개정하는 가운데 1992년 9월 15일 종의회 결의로 종헌종법을 일부 개정하고 종립학교관리법과 인사위원회법을 제정하여 학교운영과 인사관리의 법적·제도적 원칙을 명문화했다. 종립학교의 건전한 발전과 건학이념을 구현하기 위하여 임원의 자격과 선출 절차를 정하고 통리원에 종립학교 관리위원회를 설치하여 관리감독을 강화했다. 또한 공정한 인사집행과 원활한 인사행정을 위해 종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11인의 인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스승의 신규 임명, 전보, 퇴임 및 스승과 종무원의 특별승진과 채용 등 인사 관련 내용을 심의 의결하고 위원회 소집과 집행 절차를 명문화하여 공정한 인사에 만전을 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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