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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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99호 발행인 발간일 2008-02-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설법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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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6 14:17 조회 3,940회본문
네 가지 그지없는 마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보살이 청정한 행을 갖추려면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고, 기뻐하고, 버리는 네 가지 그지없는 마음 을 수행 해야 한다. 여래는,한량없는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한다. 어 떤 중생이 재산을 탐하면, 그를 위해 왕이라도 되어서 그의 요구대로 갖가지 물건을 주어 기쁘게 한 뒤 바른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 그를 편안하게 한다. 어떤 중생이 오욕락 을 탐하면 오욕락으로 그의 소원을 풀어준 뒤 바른 깨달 음의 길로 이끌어 그를 편안하게 한다. 또 어떤 중생이 부귀 영화를 누리고 싶어하면, 그의 하인이 되어 시중을 들면서 마음에 들게 한 뒤 바른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게 한다. 어떤 중생이 성질이 사나워 자기 고집만을 세우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면, 몇 천 년이라도 그를 타이르고 달래어 마음 을 누그러 뜨린 뒤 바른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 들인다.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을 끊게 되고, 가엾이 여 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성내는 일을 끊게 되며, 기쁜 마음 을 닦는 이는 괴로움을 끊게 되고, 버리는 마음을 닦는 이 는 성냄과 차별 두는 마음을 끊게 된다.
이 네 가지 그지없는 마음은 온갖 착한 일의 근본이 된 다. 보살이 가난한 중생을 만나지 못하면 사랑하는 마음을 낼 인연이 없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지 못하면 중생들을 편 안하고 즐겁게 하는 것이다. 보시를 하면서 반드시 바른 깨 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또 보살은 부모와 원수를 대할 때에라도 평등한 마음으로 대하여 조금도 차별을 두지 않는다. 이것이 곧 사랑 의 성취다. 그러나 큰 사랑 은 아니다. 큰 사랑은 실로 이 루기 어렵다. 끝없는 세월에 번뇌만 쌓고 선한 법을 닦지 않았으므로 하루 동안에 마음을 조복할 수 없다.
이를테면 마른 완두콩은 송곳으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번뇌의 굳기도 그와 같다. 하루 동안 마음을 거두어 산란치 않으려 해도 조복하기가 어렵다. 또 집에 있는 개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산에 있는 사슴은 사람을 보면 무서워 달아난다. 성내는 마음을 버리기 어렵기는 집 지키 는 개와 같고, 그사랑하는 마음을 잃기는 산에 있는 사슴 같 으므로 조복하기 어렵다. 또 성내는 마음은 돌에 새긴 글씨 처럼 지우기 어렵고, 사랑하는 마음은 물위에 쓴 글씨처럼 빨리 사라진다. 성내는 마음은 달아오른 불덩이 같고, 사랑 하는 마음은 번갯불과 같다. 그러므로 조복하기 어렵다.
그러나 보살은 모든 중생을 위해 이롭고 즐겁지 않은 일 은 없애버린다. 이것이 대자 보살은 모든 중생을 위해 이로움과 즐거움을 준다. 이것이 대비 다. 보살 은 모든 중생들을 대할 때에 마음으로부터 기뻐한다. 이것 이 대희 다. 보살은 모든 법을 볼 때에 평등한 마음으 로 차별을 두지 않고 자기 기쁨을 남에게 준다. 이것이 대 사 다. 이 네 가지 그지없는 마음은 모든 선행의 근본 이 된다.”
〈열반경 범행품〉
고행과 바른 수행
부처님께서 녹야원에 계실 때였다. 발가숭이 이교도 카샤 파가 부처님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당신은 온갖 고행을 싫어하고 고행자를 비방한다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카샤파여, 그것은 내 뜻이 아니오. 또 내 말을 바르게 전한 것도 아니오 나는 천안으로써 고행자가 죽은 후 지옥에 떨어지 는 것도 보고 천생에 태어나는 것도 봅니다. 이와 같이 고행자 중에는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고 천상에 태어나는 이도 있는데, 어떻게 통틀어 고행을 싫어하고 고행자를 비방할 수 있겠소.
카샤파는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알몸이라든가 공양을 받지 않는 일, 또는 쇠똥을 먹고 나무껍질이나 짐승의 가죽으로 몸을 가리며, 항상 서 있거나 하룻밤에 세 번씩 목욕을 하는 것 같은 고 행은 사문과 바라문에게도 알맞은 일이라고 합니다.” ’ “카샤파, 아무리 그와 같은 고행을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계행과 선정과 지혜가 없으면 그것은 참된 사문이나 바라 문과는 멉니다. 화내지 않고 남을 해칠 생각이 없으며 자비 심을 기르고 번뇌가 없어 현재에 깨달아 있으면, 그 사람이 야말로 진정한 사문이요 바라문이라고 할 것이오.”
“부처님, 사문이나 바라문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 어려움이 곧 고행을 닦는다는 뜻은 아니오. 고행쯤이 야 물항아리를 나르는 하녀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화 내지 않고 남을 해칠 생각이 없으며 자비심을 기르고 번뇌 가 없이 현재에 깨닫는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교도 카샤파는 다시 물었다.
‘부처님, 그러면 그 계행과 선정과 지혜의 성취란 어떤 것입니까?”
“계행의 성취란 이런 것이오.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하여 스스로 깨닫고 남을 가르칠 때에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듣 고 신심을 내어 줄가합니다. 그래서 계율에 따라 행동을 삼 가고 바른 행동으로 즐거움을 삼으며, 조그마한 허물도 두 려워하고 감관을 다스려 바른 지혜를 갖춥니다. 산 목숨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갖지 않으며, 여자를 범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거나 거친 말을 쓰지 않으며 바른 생활을 해나가는 것이오. 또 선정의 성취란, 눈으로 사물을 볼 때 라도 감관을 잘 지켜 그 모양에 팔리지 않고 가나 오나 앉 으나 누울 때에도 항상 마음의 눈을 밝히어 바른 마음과 바 른 생각에 머뭅니다. 새가 날개밖에는 아무것도 갖지 않듯 이 몸을 가리는 옷과 배를 채우는 밥으로 만족하고, 나무 밑이나 동굴 속, 숲이나 묘지 등 한적한 곳을 찾아 고요히 앉소. 그래서 탐욕과 성냄과 게으름과 의심을 버리고, 건강 하고 자유롭고 안온한 사람이 되어 선정에 들어가는 것이 오. 그리고 지혜의 성취란, 선정에 의해 고요하고 맑고 밝 아 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마음으로써 이 세상의 덧없음 과 ‘나’라고 내세울 것 없음을 알며, 다섯 가지 신통을 얻 고 네 가지 진리를 알아 번뇌를 없애고 깨달음을 얻어 해탈 했다는 분명한 자각을 가지는 것이오.
나의 이 말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는지 모 릅니다. ‘사문 고타마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사자후를 하지 만 그것은 신념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질문을 받으면 대답 하지 못한다. 대답한다 할지라도 만족시키거나 믿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와 같이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여 러 사람들 앞에서 신념을 가지고 사자후를 합니다. 많은 사 람의 질문에 대답하고 만족시키며 믿게 합니다. 카샤파여, 일찍이 라자가하의 영축산에서 당신과 같은 고행자 니그로 다는 욕망을 없애는 최고 형식에 대해서 내게 물어 대답을 듣고 무척 기뻐한 일이 있소.”
이 가르침을 듣고 이교도가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 는 부지런히 정진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남전 장부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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