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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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27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8-09-30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법상인 전수의 總持法藏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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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21 06:00 조회 3,609회본문
보살님들 모두 다 힘들지 않은 일만 하면서 지내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회사에 다니면 회사에 다니는 나름의 노고가 있고, 장사를 하 면 장사에서 오는 또 다른 고통이 있고, 주부로 지낸다면 집안일에서 오는 그만의 힘든 점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어떤 일을 하든 늘 불평불만 투성이었 습니다. 그만두고 싶다, 때려 치고 싶다, 이런 생각을 속으로만 하는 것도 모자라 가족이나 주변의 친한 사람을 붙들고, ‘그만두어야겠 다’, ‘더 이상 못해먹겠다’ 라고 성토했습니다. 아마도 이 말을 듣고 있던 저의 주변인들도 저 못지않게 무척이나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렇게 불만이 많았으므로, 저는 그 힘든 일 을 곧장 그만두었을까요? 그것도 아니었습니 다. 실제로는 그만두지도 못하면서, 그만둘 용 기도 없으면서 주구장창 불평만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행여나 그 불만을 밖으로 표출하 지 않을 때에는, 마음속으로 투덜거리며 불선 업을 많이 지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지어 놓은 두터운 업들을 모두 참회할 생각을 하면 앞이 아득해지곤 했습니다. 특히나 남편과 자식이 나의 속을 썩이고 힘들게 할 때면 그 모든 것을 고통이라고 여겨서 더 많은 업을 지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 은 결코 좋은 일도 없고 나쁜 일도 없습니다. 어떤 일일지라도 그렇습니다. 가령 질병을 얻 었다고 해도, 그 질병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 쁜 것도 아닙니다.
그저 그냥 일어난 일일 뿐입 니다. 다만, 그 일을 겪은 사람이 어떻게 해석 하느냐에 따라서, 즉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 가짐에 따라서 때로는 그런 대로 견딜만한 일 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이 찢기는 고통을 수반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모든 일은 당사자 가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서 달라지기 마 련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나요? 나의 세계와 타 인의 세계 그리고 물질의 세계가 내 뜻대로 되 지 않는다고 계속 화를 내고 있지는 않나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상 살 맛이 나지 않는다, 운이 없다, 박복하다, 이런 식으 로 신경질을 내고 하소연을 하며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데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움직이고 조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세계 하나뿐이라는 것입니다.
타인의 세계 와 물질의 세계는 그들에게 속해있는 것이지 나의 몫이 결코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 관할이 아닌 세계를 넘어다보면서 내 마음대 로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며 흉을 보고 업 을 짓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에는 모든 정성을 다해서 키웁니다. 시 간이 흘러 자식이 장성하고 났을 때, 자식이 자 신들에게 무언가를 해주지 않으면 굉장히 섭 섭해 합니다. 하지만 그 조차도 역시 따지고 보 면 타인의 세계에 불과합니다. 주고 안 주고, 해주고 안 해주고는 그 아이의 몫이지 부모인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닙니다. 부모와 자식 간도, 형제간의 사이도, 부부간의 사이도 모두 타인일 뿐입니다. 우리는 상대의 상황에 대해 그럴 수 있다고, 이해를 해야 합 니다.
우리의 몫을 파악하여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볼 줄 모르고 애먼 남의 탓을 하며 업을 짓고, 그 업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합니다. 언제 어디 서나 상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 전에, 내가 가진 것을 먼저 보고 이해하려 해야 합니다. 이 것은 공덕을 짓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생각 을 전환하면 모든 일을 복 짓는 방향으로 받아 들일 수 있습니다. 행여나 상대가 불쾌한 언행 을 한다고 하더라도, ‘저런 모습을 보여주니 감 사하구나, 나도 저런 허물이 있으면 버려야겠 구나,’ 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한 방법입 니다.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소개해드리겠습니 다. 옛날, 일본에 유명한 스님 한 분이 계셨는 데 이 분은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출가를 했 습니다. 산사에서 수행을 하고 있던 중 마을에 서 49재 불공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절에서는 스님들끼리 마을의 49재에 누구를 보내야 할 지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 에 이 어린 스님이 낙점되었습니다. 어린 스님 이 마을에 내려가서 그 집에 가보니 미망인이 감기에 걸려서 콧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 답니다. 염불을 하는데, 그 염불을 코로 하는지 입으로 하는지 모를 정도로 자꾸만 미망인의 그 콧물에게로 신경이 쏠렸습니다. 미망인이 콧물을 줄줄줄 흘리면서 밥을 하는 통에 밥솥 으로 콧물이 계속 떨어졌습니다. ‘이 염불이 끝난 다음에 내가 저 밥을 먹게 되 면 어떻게 하지?’ 어린 스님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 다. 그 와중에 미망인의 어린 자식 하나가 울 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어찌나 지독하게 우는 지 울면서 오줌을 듬뿍 싸서 방의 반이나 오줌 바다가 되었습니다.
미망인은 아이를 달랜다 는 명목으로 주걱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라 며 툭 던져주었습니다. 기다란 주걱은 오줌 바 다 위에 철퍼덕 하고 떨어졌습니다. ‘설마 저 오줌 범벅인 주걱으로 밥을 푸거나 하진 않겠지?’ 스님은 또 걱정에 휩싸였습니다. 마침 미망 인이 스님을 불렀습니다. “스님, 시장하시죠?” 그러고는 아이의 오줌 바다에 빠져있던 주 걱을 들고 가서 씻지도 않고는 밥솥의 밥을 휘 휘 저으면서 식사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눈앞 이 캄캄해진 스님은 배탈이 났다는 둥, 몸이 안 좋다는 둥 어찌 저찌 겨우 핑계를 대어 그 집을 빠져나왔습니다. 일주일이 지나 다시 염불을 위해 미망인의 집을 찾았을 때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습니 다. 감기가 말끔히 나았는지, 미망인은 콧물도 흘리지 않았고 전에 그토록 울어 제끼던 아이 도 방긋방긋 웃으며 재롱을 부렸습니다. ‘아 오늘은 맛있는 밥을 얻어먹고 갈 수 있겠 구나.’ 어린 스님은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신나게 염불을 하였습니다.
염불이 끝날 무렵 미망인 이 스님을 불렀습니다. “저~, 스님 목이 마르시죠?” 스님은 미망인이 건네는 단술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한 그릇 더 드릴까요?” 미망인이 다시 건네준 단술 한 그릇을 마저 다 마셨습니다. 그런 스님을 흐뭇하게 바라보 며 미망인이 말했습니다. “지난번에 스님이 식사를 안 하고 가셔가지 고, 그 남은 밥으로 식혜를 만들어 보았어요.” 큰 스님이 된 다음, 이 스님은 법단에 올라가 설법을 할 때마다 제자와 신자들에게 당시의 일화를 소개한다고 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피할 수 없는 인연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인 연을 피하고 싶어서, 어떻게든 노력을 거듭해 서 피한다고 한들, 그 인연은 길모퉁이에서라 도 또 다시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 할 수 없는 인연을 만났다 싶으면 그 즉시 해결 을 보고, 끝장을 보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경 험해야 할 때에는 경험을 해보고 가는 것이 현 명합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인연이라든가 사건, 사고는 항상 나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임해야합니다. 일이 다가오면 환영을 잘 하고, 일을 끝낼 때에 는 복을 짓는 방식으로 끝내며 수행을 해야 합 니다. 나의 바깥에 신경을 팔리기보다는, 언제 나 나의 내면에 집중을 해서 공부를 하고 수행 을 해야 합니다. 저녁 정송을 할 시에는 오늘 하 루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고, 혹시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보며 부처님께 참회하고 자신을 살펴보 는 게 필요합니다. 보살님 모두 자신을 돌아보 는 불공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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