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굴곡을 함께 해주신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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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28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8-10-31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성화사 설법/신행담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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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21 09:28 조회 3,375회본문
오순자 보살
오순자 보살
저는 9남매의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거기에 제 아이가 넷이고, 조카들까지 제가 키우다 시피 했습니다. 참 힘들었 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습 니다. 고된 생활의 연속으로 저는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있는 상태였습니다. 제가 그때 참 큰 업을 쌓았는데, 첫 아 이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도, 내가 계속 살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확신을 갖지 못 했습니다. 저는 종조님께서 돌아가신 해, 첫재 때 동생에게 제도되어 입교를 하였습 니다. 정각사로 들어 서 가장 먼저 정각 원 스승님을 뵈었는데 그때의 순간이 여전히 잊히지 않습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배가 고플 때에 남이 밥 먹는 거 본다고 배가 부릅니까? 스스로 먹어야 배가 부른 법입니다. 하는 만큼 얻어가는 거지요.”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저는 ‘아, 내가 주체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열심히 해야겠구나’하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아이 넷을 데리고 절에 다녔습니다. 젖먹이를 포대기에 싸서 등에 업고, 다 른 아이를 품에 안고, 또 손에는 고사리 같은 아이의 손을 꼭 쥐고 다녔습니다. 사원 뿐만 아니라 방생이나 연등 축제 같은 크고 작은 행사에도 늘 아이들과 함께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 한 것이 있습니다. 그 나이의 아이들은 응당 조용한 것을 참지 못 하고 울거나 뛰어다니는 것이 당연한데, 어찌된 일 인지 그런 법이 없었습니다. 집에서 엉 엉 울다가도 아이를 업고 절에 가려고 나서면 울음을 뚝 그치고, 절 마당에서 뛰놀던 아이도 서원당 안으로 들어가 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하게 구는 것 이었습니다. 제가 정각사를 처음 갔을 때 계시던 스승님을 따라 참으로 많은 곳을 다녔 습니다. 밤이고 낮이고 가리지 않고 스 승님께 연락이 오면 어디든 가리지 않 았습니다. 스승님을 따라 편찮은 사람 을 위해 정성스레 불공을 드리고 집으 로 돌아가는 길이면 그렇게 뿌듯할 수 가 없었습니다. 피로함을 느끼지도 않 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라도 몸이 나 아졌다는 소리가 들리면 그 뿌듯함은 배가 되었습니다. 부처님을 만나고 시간이 흐름에 따 라 자연스레 생활이 풀리기 시작했습 니다. 각자님의 사업이 조금씩 나아지 기 시작했고, 부처님과 함께하며 마음 과 생활의 평화를 찾았습니다. 어느 해 에 새해 불공을 하는데 느낌에 희사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런 직감이 강하게 왔는데, 그 해에 지출 이 좀 많았기에 애써 그 느낌을 무시하 였습니다. 각자님께서 하루는 체한 거 같다며, 내내 속이 안 좋다고 하셨습니다. 병원 에 가고 소화제를 먹어도 도무지 나아 지지 않는 것입니다. 마땅히 방법이 없 어 저는 불공을 하며 희사를 드렸습니 다. 여건이 되지 않아 큰돈을 빌려 희사 를 하고 불공을 하는데 깜빡 졸아서 꿈 을 꾸었습니다.
집 앞 대문에 초상등이 달려있는 것입니다. 너무도 놀라면서 꿈에서 깨어나 급히 불공을 끝내고 집 으로 향했습니다.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희사를 할 돈을 마련하라고 부탁 을 했고, 집으로 향하니 남편의 상태가 영 좋지 못하였습니다. 화장실에서 피 를 토하고 계신 것입니다. 너무도 놀라 병원으로 향했고, 가는 길에 세 번을 쉬 어 갔습니다. 검사를 하고 나니 병원에 선 십이 궤양이 터졌다고 하였습니다. 각자님이 병원에 입원 한 동안 할 수 있 는 최대한의 희사와 불공을 드렸습니 다. 역시나 사람은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구나 싶어, 부처님께 간 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제 간절함을 알 아주신 결과 수술도 없이 일주일도 안 계시고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회복하 는 속도도 아주 빠른 편이라 모든 의사 선생님들도 놀라셨습니다. 제가 절에 다니면서 가장 뿌듯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제 시어 머니를 제도시킨 것입니다. 제 시어머 니께서 외모가 아주 고우신 편인데, 모 시옷을 해드려서 그 옷을 입고 환하게 미소 지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제 시어머니와 같이 절에 다녔던 기억 이 여전히 제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 습니다. 저는 내성적인 편입니다. 입교 후 총 무를 맡으면서 제 성격이 많이 변화한 것을 스스로도 느낍니다. 다른 사람들 과 즐겁게 어울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신정회 모임이나 사원에서 단체로 움 직이는 일이 있을 때, 제가 나서서 분위 기를 좋게 만드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어색하거나 힘들지 않습니다. 밥 먹고 나면 절에 오는 게 일상입니 다.
부처님을 만나고, 행사가 있으면 행 사를 가는 것이 즐겁습니다. 놓을 일도 없지만 놓으려 해도 놓을 수 없는 인연 의 끈을 꽉 쥐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크게 바라는 것도, 걱정 하는 것도 없습니다. 현재의 삶을 유지 하기 위해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에 만 족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 들이 부처님과의 인연의 끈을 잡아 행 복하고 편안한 삶을 안위하길 서원합 니다. 부족한 저를 지금까지 이끌어주 신 많은 스승님들, 보살님들, 부처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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