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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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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87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5-06-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칼럼 / 불교이야기 서브카테고리 데스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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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종열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총지종보편집장 김종열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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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6 16:13 조회 3,8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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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

우리 말 중에는 보릿고개라는 단어가 있다. 지난 가을 추수한 양식이 바닥나고 보리는 미쳐 여물지도 않은 5 • 6월에 식량 사정이 매후 어려운 고비를 이르는 말이다. 조선조나 일제 강점기에는 대부분의 농민은 소작농들이었다. 가을에 추수한 곡식으로 소작료, 빚과 이자, 세금과 각종 비용을 내고 나면, 남은 곡식으로 겨울을 넘기고 초여름 보리가 수확될 때까지는 그야말로 산천의 초근목피로 연명하거나 유랑민이 되어 떠도는 사람도 있었다.

보릿고개가 구조적으로 정착되어 이를 연례적으로 겪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이다.

1910년대에 시행한 토지조사사업을 통해서 일제는 농민들의 토지를 탈취하였다. 지배의 편의와 수탈을 위해 농촌의 계급구조를 지주와 소작농으로 양극화시켰다.

전체적으로 약 80%에 이르렀던 일제강점기의 소작농은 평균 5할을 훨씬 넘는 소작료 외에도 지조(地租) 및 각종 공과금, 용수료 및 수리 조합비, 토지공사 및 수선비, 마름의 보수 지주와 마름에의 접대비 및 증여 물품 등을 제하고 나면 전체생산물의 약 24~26%밖에 얻을 수 없었다. 이때 혹독한 수탈을 참아가며 소작농에 안주하거나 걸인의 무리를 이루어 유랑하거나, 아니면 만주나 시베리아로 떠나는 것이 우리 농민들의 양상이었다. 이처럼 극심한 약탈과 10년동안 흉년이 겹쳐 일찍이 없던 보릿고개의 참상을 겪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8 • 15광복을 맞게 되었다.

1945년의 광복은 우리 농민을 천 년의 질곡에서 해방해 주는계기가 되었다.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에 따라 '농토를 농민에게'라는 농민의식이 집약되어 드디어 1949년 6월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원칙에 의한 토지개혁법이 제정되어 농민이 '제 땅'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남북분단의 비운을 맞은 데다 정치 • 사회 • 경제적 혼란은 보릿고개를 극복하기에는 너무도 부정적으로만 작용하고 있었다. 또한, 민족사상 최대의 비극인 6 • 25전쟁이 일어났고, 전후의 수복 또한 부진하여 보릿고개는 실로 196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

5 • 16 군사정변이 일어나고, 1963년 제3 공화국수립 후, 공업국으로 전환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단기적으로 미국 등에서 식량을 대량 수입하여 양곡 부족을 해결하였다.

경제개발 계획을 통해 중 • 장기적으로는 통일벼 등 벼 품종 개량과 비료 • 농약의 공급확대 등으로 식량 증산에 힘써 식량의 자급자족을 도모하여 농민의 소득증대와 생활환경이 개선됨에 따라 보릿고개도 서서히 사라져 갔다. 지금은 보릿고개는 60대 이상 세대의 추억으로 얘기되고 있다. 쌀은 남아돌고 오히려 벼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손해를 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물론 서구화된 식생활로 쌀의 소비가 감소한 것도 원인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식량자급의 목표는 달성했으나 여전히 끼니 걱정을 하는 빈곤한 사람들이 우리주위에 있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소년. 소녀 가장, 독거노인, 한 부모 가정, 장애우 등 많은 사람이 배고픔의 고통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물론 정부와 많은 복지기관에서 이들을 위한 생계비와 급식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정도의 지원은 아직도 먼 길이다

불교계에서 운영하는 서울의 대표적인 노인 무료급식소인 파고다 공원 뒤편 원각사는 한동안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1994년부터 22년째 이곳을 운영해 온 보리 스님(72)이 노환과 재정난 으로 무료 급식이 3월 2일 중단됐다. 원각사 급식소는 사대문 안에서 유일하게 연중무휴로 문을 열어 노숙인과 노인들이 언제나 한 끼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다행히 원경 스님(성울 성북구 심곡암 주지)과 강위동 원각복지회 후원회장, 자원봉사자들의 뜻을 모아 4월 1일 다시 급식을 시작했다. 매일 150~200여 명에게 점심을 제공하고, 재료비, 장소 임대료 등을 포함한 운영비가 연간 1억 8,000만 원 정도든다.

원경 스님은 "이곳에 의지해 살아가는 독거노인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하루 쉬면 그분들은 하루 한 끼의 연명 줄마저 끊어지는 것입니다.”라며 소중한 중생들과의 인연을 하루하루 이어 나가겠다는 서원을 했다.

불교 총지종 포항 수인사에서도 소외당하는 이웃들을 위한 무료급식을 시작했다. 자원봉사 신행 단체인 「수인회」는회원들의 보시금과 교도들의 도움으로 매월 마지막 일요일 점심 무료 급식을 시작했다. 본보 186호3면 참조

그 시작은 수인사에서 사찰요리 강좌를 개설해 운여하는 '금화 보살' 수료생들을 중심으로 조직한 자원봉사 신행 단체「수인회」가 결성되면서부터다. 지난가을에는 김장 김치를 소외된 이웃들 50가구에 전달했다. 더 구체적인 자원봉사를 위해 많은 시간과 토론을 통해 복지관이 쉬는 일요일에 무료급식 봉사를 하기로 했다.

회원들은 각자가 마련할 수 있는 요리는 집에서 만들어 오기도 하고, 성의껏 음식을 준비했다. 이런 노력으로 5월 23일 포항에서 중앙동 자생단체협의회와 불교총지종 포항 수인사 주최, 주관으로 경로잔치를 열었다. 이병석 국회의원(포항 북구)을 비롯한 관계기관 단체장들도 동참한 이번 행사는 약 1,000여 분의 어르신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공양하고 장기자랑의 시간을 가져 마음도 즐거운 하루가 되었다.「수인회」는 이번 행사 이후에도 꾸준히 무료급식 사업과 소외계층 돕기를 이어 나간다는 계획이다.

지금은 물질은 풍부한 시대이다. 가까운 마트만 가도 구하지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풍족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풍족한 시대에도 보릿고개의 배고픔과 고통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는 이웃들이 너무도 많다. 나만 배부르고 따뜻한 방에 편히 잔다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부처님께서 왕좌를 버리고 거리로 나선 이유도 가난하고 소외된 우리 이웃들을'구제하고자 하는 사랑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지만, 종단 창종 초기에는 《절량고》라는 나무 상자가 사원마다 있었다. 내가 먹는 쌀을 끼니마다 한 숟가락을 모아 자성일에 사원《절량고》에 넣어, 모든 교도가 같이 나누고자 했다.

이 방편이야 말로 모든 중생이 같이 살아가고 있는 우주 법계의 진리를 명료하게 풀어준다. 이제 불자라면 나의 몫에서 조금씩 나누는 습관을 기르자. 그리고 나눈다는 생각마저 없이 나눈다면 그것이야 말로 최상의 보시이자 보릿고개 같은 어려움의 세월을 힘겹게 살아가는 소외된 이웃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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