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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그래 풍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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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34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9-05-01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문화 서브카테고리 불교와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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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은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자유기고가=김은주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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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1 17:54 조회 4,44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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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그래 풍상씨
부모형제의 사랑, 무주상보시일까

KBS드라마 ‘왜그래 풍상씨’에는 극 단적인 두 종류의 인물이 나옵니다. 풍 상씨 (유준상)와 노양심 (이보희)입니 다. 풍상씨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 신을 희생하는 인물이고, 노양심은 극 단적으로 이기적인 인물입니다. 풍상 씨는 열여덟 살 때부터 동생들 뒤치다 꺼리를 했는데 40대 중반인 지금까지 그 일을 하고 있으며,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은 빈껍데기만 남았습니다. 시동 생들 뒤치다꺼리에 지친 아내는 이혼 을 요구하고, 말썽 많은 동생들 때문에 간암까지 걸렸습니다. 그러니까 풍상 씨의 삶은, 자기를 완전히 연소하면서 자신을 내주는 삶입니다.

그러자 노양심의 반응은 놀라웠습니 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너는 애가 왜 그러냐, 그렇게 공치사를 하고 싶으냐”면서 가방에서 바카스를 꺼내 주면서 마시라고 합니다. 풍상씨 의 말에 아무런 동요도 느끼지 않았습 니다. 죄책감이나 회한 정도는 느껴야 정상인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노양심과 풍산씨를 비교하는 거 자체 가 무리입니다.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 하면서 사는 삶과 가족을 돌보면서 사 는 삶을 비교했을 때 후자에게 점수를 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드라마 를 보면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풍상씨 가 동생들을 위해서 희생을 많이 했는 데 그것은 무주상보시였을까, 진정 어 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는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무주상보시 (無住相布施)는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합니다. 이 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생각 없이 베풀어주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남을 위하여 베풀었다’는 생각이 있는 보시는 진정한 보시라고 볼 수 없 습니다. 내가 베풀었다는 의식은 집착 만을 남기게 됩니다.

풍상씨의 동생들에 대한 희생을 무주 상보시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풍상씨는 간암 진단을 받 았을 때 동생들이 당연히 간을 줄 걸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간을 이식해준 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남는 여분을 나눠주는 게 아니라 목숨 을 나눠주는 일이라 간이식을 한 사람 은 이전과 같은 건강상태를 유지하기 는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니 간이식은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당당하게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인데 풍상씨는 당연히 동 생들이 간을 이식해줄 걸로 생각했습 니다. 이런 생각의 밑바닥에는 동생들 이 자신에게 채무가 있다고 여긴 까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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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만난 장면에서 풍산씨가 울면 서 했던 말은 그의 생각을 잘 보여줬습 니다. “엄마가 해야 할 일을 내가 하느 라 너무 힘들었는데 고생했다는 말, 미 안하다는 말 한 마디 하지 못하느나?’고 했는데, 자신은 동생들을 위해서 정말 힘들게 살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결 코 무주상보시가 아니었습니다. 무주 상보시가 아니었기 때문에 집착이 있 고, 그래서 동생의 삶에 관여를 합니다.

간이식을 해줄 줄 알았던 동생들이 의 외로 형에 대해서 트라우마를 갖고 있 다고 말했습니다. 학대했다고 원망하 고, 다른 형제와 비교했다고 하면서 어 린시절 받았던 상처를 들춰냈습니다. 이것은 풍상씨에게는 놀랄만한 일이었 습니다. 풍상씨는 그동안 자신이 동생 들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는 생각을 갖 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동생 

들에게 상처도 주었던 것입니다.

간이식을 둘러싸고 형제간의 감정의 골을 확인하게 됐고, 풍상씨는 그동안 자신이 채권자고 동생들은 채무자라고 생각했는데, 동생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채권자고 풍상씨를 채무자라로 여겼다 는 걸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드라마 는 서로 간에 쌓인 오해를 풀고, 서로가

갖고 있던 채권 채무관계를 청산하고서 야 더 나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 다. 집착심이 없어지면서 상황이 나아 진 것입니다. 집착하는 마음을 갖고 있 으면 채권자와 채무자 관계 이상이 될 수 없기에 결코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는 걸 드라마는 보여주었습니다.

〈왜그래 풍상씨〉에서 풍상씨와 형제 들은 형제관계의 집착을 보여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부모와 자식관 계에 나타나는 양상입니다. 자식이 갓 난아기였을 때 부모는 아무것도 요구 하지 않습니다. 이때는 무주상보시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자식이 커가면서 부모에게는 요구하는 마음이 생겨납니 다. 자신의 희생에 대해 알아달라는 마 음도 생기고,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집착심도 생기고, 이런 감정은 결국 모 두 뭔가를 줬다는 생각에서 비롯됩니 다. 그런데 무주상보시가 아닌 희생은 결코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가 없습니 다. 보다 나은 부모와 자식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주어도 줬다는 생각이 없어 야 하는 것입니다. 무주상보시여야 하 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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