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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수사원 (飮水思源) 을 돌아보는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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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33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9-03-3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칼럼 지혜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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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봉래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김봉래-불교방송 보도국기자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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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1 16:04 조회 5,06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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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수사원 (飮水思源) 을 돌아보는 4월

“원생의 마음가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음수사원”

“작은 글귀 하나라도 작은 것이 작은 것 아니야”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누가 노래했지만 그 래도 봄이 되니 곳곳에 꽃이 피고 있다. 꽃이 추 운 겨울을 견디어 마침내 아름다음과 향을 발 산하며 행복을 선사하듯 우리네 삶도 그런 꽃 을 닮았으면 쫗겠다. 사바세계는 참고 살아야 하는 곳이라지만 이런 저런 인연을 통해 서로 틀 격려하다 보면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워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우리는 대부분 어디선가 희망의 불씨 를 안고 온갖 추위를 잘도 이겨내며 살아간다. 살아야 하는 나름의 이유를 만들어 내지 않으 면 몹시 견디기 어려워지고 그야말로 고통의 도가니가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들에게 는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구하는 이고득락의 DNA가 갖춰져 있다고 하겠다.

유사 이래 많은 종교나 철학은 근본적으로 이 고득락을 위한 목적과 연결돼 있다고 할 수 있 다. 문제는 이고득락 하는 방법에 있다. 고통으 로부터 도피하거나 임시적인 해결만으로는 모 자람이 있다. 불교가 가르치는 해탈 열반이라 야 완벽할 것이라 하겠지만 보통 우리들이 성 취하기에는 멀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요즘 필자는 합창단 활동에서도 활력을 느낀 다. 찬불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호흡이 안정 되고 심신이 편해지고 신심도 깊어지고 불보살 님의 가피도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이 느껴진다. 찬불하는 모* 보기도 좋고 스스로 동참하는 데서도 기쁨과 행복을 맛볼 수 있다. 무엇보다 봐주고 들어주는 이들이 있어서 그 느낌은 배 가된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완벽한 경지를 이루기 전 까지는 전혀 행복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할 필 요는 없다. 그 전이라도 조그만 행복을 만들어 가질 수 있다. 그 행복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서 외면에서 구하는 행복과는 거리가 있 다. 또 목표가 완전히 달성되는 결과에 매이지 않고 목표틀 위해 노려하는 과정 속에서 찾을 수 있기에 결과지향적 행복과는 질적으로 다 르다.

불교가 지향하는 삶은 큰 데서만이 아니라 작 은 데에서, 결과만이 아닌 과정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데 비결이 있다. 예컨대 음수사원 (飮水思源) 같은 글귀 하나라도 되새기는 마음 가짐에서도 행복은 시작될 수 있다. 물을 마실 수 있게 된 데 감사와 더불어 모든 이들이 깨끗 한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넓은 감 사와 염원의 마음에 행복을 가져다준다. 그 하 나만해도 ‘잔인한 달’과는 십만 팔천리가 될 듯 싶다.

이러한 내면의 행복은 외부에서 누가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으로 찾아낸 것 이어서 어떤 외부적 조건과 관계없이 누릴 수 있고 또한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이렇게 곳 곳에서 행복할 수 있는 이유를 많이 가지다보 면 항상 행복의 장에 머무를 수 있을 것이다.

염불•염법•염승 등 진리를 잊지 않는 그 마음 이 우리를 드넓은 지혜의 바다에서 웃으며 헤 엄칠 수 있게 해주리라 믿는다. 짧은 지식으로 알아낸 겉모양이 아닌 넓고 깊은 인연의 모습 을 차차 알게 되면 그야말로 나와 남이 없는 불 이(不三)의 마음, 무연대비(無緣大悲)의 부처 님 마음을 닮아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작은 것 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각자가 자신의 행복을 구가하는 듯 보여도 차츰 거기서 머무르지 않게 된다. 왜냐 하면 나와 인연한 많은 이들도 행복하지 않고 는 자기만의 행복은 큰 의미가 없음을 자각하 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고통을 해결하려는 노 력이 때로 힘들 수 있어도 이를 행복의 원천으 로 삼을수 있다.

기존에 살아오던 습관대로 사는 업생 (業生)의 관성을 약화시키고 끝내려는 노력이 바로 원생 (願生)일 것이다. 원생은 자발적인 수행을 통해 힘을 얻는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똑같은 사바 세계이겠지만 수행하는 이는 전혀 다른 자유로 움의 세계가 내면에 펼쳐지고 외면에도 구현될 것을 믿고 확인하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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