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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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39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9-10-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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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1 23:35 조회 5,281회본문
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8
법경 정사 (밀교연구소장/ 법천사 주교/ 철학박사)
농부심 (農夫心)
중생의 마음 가운데 농부심이란 것이 있다. 농부라 하면 부지런히 일하는 사 람에 속한다. 게으르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그러나 이와 달리 경전에서 언급 된 농부심은 그런 것이 아니다. 좋은 의 미로 쓰이지 않고 부정적인 의미를 지 닌다.
『대일경소』에 농부심을 이렇게 설하 고 있다.「무엇을 농부심이라 하는가? 먼저 널리 듣고 나중에 법을 구하는 것 에 따른 말이다.」쓸데없이 이것저것 따 지기를 좋아하고 행동 보다 말이 앞서 는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를 이렇게 설하고 있다.「농사를 배우는 자 가 나이 많은 농부에게 ‘어떤 땅이 좋은 지 알 수 있습니까? 어떻게 밭 갈고 심 으며 김매고, 어떻게 때를 기다리며, 어 떻게 수확하여 저장합니까?’라고 묻고, 이와 같이 하나하나 알고 나서 공력을 들이는 것과 같다. 이 마음도 역시 그러 하다. 먼저 지혜로운 자에게 여쭈어 널 리 도품(道品)을 듣고서 그런 다음에 이를 행한다.」
언뜻 보아서 좋은 의미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물어보고 하는 것이 나 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옳은 것이 아닌 가. 모르면 물어봐야 하고 물어보는 것 은 당연하며 일반 상식이다. 그러나 경 전에서는 그런 뜻이 아니다. 아무리 좋 은 것이라도 직접 본인이 행하지 않고 묻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법문 을 수없이 많이 들었어도 행함이 없다 면, 그 법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과 같다. 농부심은 바로 그러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대일경소』에서 이르기를,「그것은 모두 숙세의 습 때문 에 그런 것」이라고 하면서「날카로운 지 혜로 그것을 다스려야 한다고 하였다. 수행을 통해 농부심을 없애어야 한다 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저것 물어보기 만 하는 농부심을 독화살에 비유하고 있다.『대일경소』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그 마음은) 독화살이 몸에 박힐 때 와 같다. 어찌 삼농월(三農月-농사짓 는 봄, 여름, 가을)이 끝난 뒤에 널리 물 은 다음에 이를(독화살을) 뽑을수 있 겠는가!」독화살의 비유는「중아함경』에 나오는 내용이다. 부처님의 제가 가운 데 만동자라는 비구가 있었는 데, 부처님께 “이 세계는 영원한가 무상 한가. 끝이 있는가 없는가. 영혼과 육체 는 하나인가 둘인가. 여래는 사후에 존 속하는가 안하는가”라고 여쭈었다. 이 에 부처님께서는 수행이나 깨달음에 아 무런 도움이 안된다고 하면서 독화살의 비유를 들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독화살을 맞아 견디기 어 려운 고통을 겪을 때 친족들이 빨리 의 사를 부르려 하였지만, 화살에 맞은 사 람이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화살을 쏜 사람이 크샤트 리아인지, 바라문인지, 바이샤인지 수 드라인지, 또는 그 이름과 성은 무엇인지, 그의 키가 큰지, 작은지 중간 정도 인지, 얼굴색이 하얀지 검은지, 어 떤 마을에서 왔는지 먼저 알아야겠다. 또한 내가 맞은 화살이 어떤 종류의 것 인지 알아야 화살을 뽑을 것이다. 아울 러 어떤 새의 깃으로 장식된 화살인지, 화살 끝에 묻힌 독은 어떤 종류의 독인 지 알아야 화살을 뽑을 것이다’라고 한 다면, 그 사람은 이러한 사실을 알기도 전에 죽고 말 것이다.” 농부심은 독화살 의 비유와 같이 쓸데없이 묻기만 하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수행에도 득이 되지 않는 말 은 하지 말자. 그리고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부터 살피고 고쳐 나가자.
농부심은 우리에게 그러한 수행정신 과 마음자리를 강조하고 있다.
하심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말하는 하심은 인욕의 하심 (下心)이 아니다.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다. 이와 상 관없는 말로서 하심 (河心)은 하천(河 川)에 비유한 마음이다. 하천의 마음을 [대일경소]에서 이렇게 설하고 있다.
하심 (河心)
「무엇을 하천(河川)의 마음이라 하는 가? 두 가지의 치우친 법에 의지하여 닦 는 것을 말한다. J두 가지 치우친 법이란 두 가지의 현상에 따라 일어나는 마음 이나 생각이다. 그래서 그 두 마음을 이 렇게 설명하고 있다.
「마음의 성품은 쌍으로 두 변에 의지 한다. 어떤 때에는 변하지 않는 실체가 있다는 생각[常見]을 닦고, 어떤 때는 멸하여 없어지는 것에 사로잡힌 생각 [斷見]을 닦으며, 혹은 다시 삿된 것과 바른 것을 겸하여 닦는다. 마치 하천의 물이 쌍으로 양 언덕에 의지하니 흘러 가는 물건도 역시 한 변에 걸리지 않는 것과 같다. 이것의 대치는 이른바 수행 하는 사람이 마음을 한 경계에 두면 곧 도달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어느 한 쪽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중도를 말하고 있다.
피지심 (限池心)
피지심은 둑방 연못의 마음이란 뜻이 다. 둑방 연못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연못의 마음은 연못에 물이 들어오면 싫어하거나 만족하지 않는 것을 비유한 말로서 욕탐이 많은마음이다.
『대일경소』에서 피지심을 이와 같이 설하고 있다.「무엇을 둑방 연못의 마음 이라 하는가? 끝내 싫어함도 만족함도 없는 마음이다.」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 이다. 끝없는 욕심이다. 그래서 이렇게 비유하고 있다.「비유하면 둑방 연못에 온갖 물이 흘러들어올지라도 끝내 싫 어함이 없는 것과 같이, 이 마음도 역시 그러하여 명예와 이익과 권속 등의 일 이 그 몸에 몰려올지라도 끝내 싫어하 지 않는다.」오로지 자기 밖에 모르는 사 람이다.
또한 둑방 연못과 같이 만족할 줄 모 르고 끝이 없는 욕심은 수행과 공부에 서도 찾아 볼 수 있다.「대일경소』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나아가 학습하 는 법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유미를 얻고 난 다음에 힘껏 빨리 먹으 려 하지 않고 다시 다른 맛을 갈구하여 바라는 것과 같다.」
유미죽은 출가한 싯달타 태자가 6년 간의 고행을 버리고 네란자라 강에서 더러운 몸을 씻고나서 강가로 나왔을 때 수잣타라는 아가씨가 태자에게 올렸 던 공양이다. 태자는 유미죽을 드시고 그 덕택으로 기운을 차려서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로 가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수잣타의 유미죽은 부처님께 올린 최초의 공양이자 깨달음의 길의 시발점이라 할만하여 의미가 깊다.
위 내용에서처럼 오로지 유미죽에 집 중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다 른 것에 욕심 부리는 것을 비유적으로 한 말이다. 유미죽에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마치 진언행자가 진언염송을 놔두고 자꾸 다른 데에 눈을 돌리는 마음과 같 다. 어찌 되었든간에 이 피지심은 만족 할 줄 모르는 중생의 욕심 (慾心)과 사 심(私心)을 일갈하고 있다. 그래서『대 일경소』에서도 소욕지족(少飮知足)을 역설하고 있다.「이를 다스리는 법은 적 은 욕심으로 만족할 줄 아는 것이다.」
특히 음식이나 물건에 욕심을 부리지 말자. 자기 것이 아니면 손대지 말라. 남는 것 이라고 하여 자기 멋대로 가져 가지도 말자. 그건 보시, 자비가 아니 고 욕심이고 탐심이다. 하나를 더 먹거 나 더 가져간다고 해서 건강이나 수행, 살림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탐심과 인색, 투도심만 늘어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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