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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각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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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38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9-09-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역삼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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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정수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시인 김정수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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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1 22:48 조회 5,16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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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각의 그림

해가 중천에 떠 있던 어느 휴일 한 낮, 늦은 아침을 먹고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섰다. 집 앞에 흐르는 홍제천 의 자전거도로를 따라가면 25분 만에 한강에 다다를 수 있다. ‘건강을 위 하여’라는 그럴 듯한 명분이 아닌 그 저 시냇물을 따라 같이 흐르면서 삶 의 여유와 한가함을 즐겨볼 요량이 었 다. 사실 많은 산책객들과 자전거 애 호가들, 애완견으로 복작거리는 낮보 다 텃새가 되어버린 청둥오리 가족이 수면 위 바위에서 수면을 취하는 한 밤을 더 선호한다. 한강에 이르면 성 산대교의 불빛과 강변 버드나무 위로 스러지는 하현달과 바람이 쉬어가는 빈 벤치. 그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으 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홍제천의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는 하천을 중심으로 양쪽을 나 있고, 양 방향으로 오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홍제천 위로는 내부순환도로 가, 그 교각에는 클림트의 ‘키스’, 마 네의 ‘피리 부는 소년’, 고흐의 ‘붓꽃’ 등 서양회화와 이중섭의 ‘황소’, 김기 창의 ‘아악의 리듬’, 박수근의 ‘빨래 터’, 장욱진의 ‘자전거를 타는 소년’,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 한국 근•현대 명화와 풍경 화를 감상할 수 있다. 비록 모조품이 지만 삭막한 콘크리트 교각에 설치된 미술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근사한 미 술관에라도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입추와 말복이 지나면서 바람에 시 원함이 배어 있다. 자전거 속도에 반 응한 바람이 얼굴에 잠시, 또 잠시 머 물다 홀연 사라진다. 천천히, 걷는 사 람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풍경을 완상하면서 달린다. 운동기구가 설치 된 곳마다 휴일을 나선 사람들이 열 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 대부분 나이 든 사람들이다. 역시 나이가 들면 건 강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어머니가 살아생전 치매에 걸리는 것 을 두려워하셨는데, 결국 돌아가시기 2년 전에 치매에 걸려 대소변을 받아 내야만 했다. 운동기구 하나씩 차지 해 땀을 흘리는 노인들 역시 그것을 두려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교각에 걸려 있는 그림 중에 김환기 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를 좋아한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파 란 점들이 물결처럼 일렁여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규칙적인 듯 불규칙적 인 점들과 그 사이로 이어진 진파랑 선들은 상형문자 같기도 하고, 인연 의 끈 같기도 하다. 김환기 작품의 절 정으로 불리는 이 그림의 제목은 김 광섭 시인의 ‘저녁에’라는 시의 마지 막 구절에서 따왔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 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 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 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 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밤하늘에 빛나는 무수한 별 중에 하 나, 그 별을 바라보는 사람 중에 한 명이 서로 마주본다는 것은 아주 특 별한 인연이다. 아침이 다가올수록 ‘별’이 사라지고, 화자인 ‘나’도 죽는 것과 다시 만나는 것은 불교의 인연 설과 윤회사상을 떠올리게 한다. 김 광섭 시인과 친구인 김환기 화백은 1970년 뉴욕에서 이 시에 곡을 붙인 노래를 부르면서 캔버스에 점 하나 하나를 찍었다 한다. 그러고 보니 캔 버스는 우주, 점들은 밤하늘에 떠 있 는 별들이다. 그 별 중에 나는 어떤 별에 유독 눈길이 가는가, 저 별 중에 어떤 별이 나를 더 다정하게 바라보 고 있는가. 어떤 인연으로 나는 또 저 그림을 한참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교각의 그림에도, 물속에 떠 일렁이 는 그림에도 본래 그림은 없지만, 그 로인해 그림을 보게 된다. 다시 나를, 내 안의 나를 본다. 한강으로 향하던 자전거를 돌려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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