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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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0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9-11-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법경 필자소속 법천사 필자호칭 주교 필자정보 법경 정사(법정원 수석연구원/ 법천사 주교/ 동국대 강사)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5-21 02:31 조회 4,919회본문
밀교문화와 생활 33
정심
중생의 마음 중에 정심이란 것이 있다. 정심은 글자 그대로 우물물의 마음이다. 어찌해서 우물물의 마음인가. 그 깊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물물의 마음이다. 이는 중생의 마음 속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물물에 비유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다.
옛속담에 ‘열길물속은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중생의 마음을 알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를 우물 속의 물에 비유한 것이다.
「대일경소』에서 정심을 이렇게 설하고 있다. ‘무엇을 정심이라 하는가? 구부려서 우물물을 잠깐 보는데, 얕고 깊은 정도를 알기 어려운 것처럼 마음의 성품도 역시 이와 같다.’
계속해서 정심을 이렇게 설하고 있다.
‘착하거나 착하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들 모두가 헤아리지 못한다. 함께 머물고 같은 일을 할지라도 역시 그의 마음속은 알지 못한다. 이것이 우물물의 마음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겉으로 여러 사람들을 속인다고 하더라도 그 속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 속은 감출 수가 없는 법이다. 연기의 이치를 알게 된다면 속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그래서「대일경소』에서도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연기의 법문과 착한사람의 모습은 모두 드러나기에 알기 쉬우니, 이것이 그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연기의 이치를 깨닫는다면 정심을 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연기와 인과로써 선과 악은 분명히 드러나게 되어 있다. 지은 대로 받는 것이오, 지은 것은 반드시 드러나는 법이다. 구름이 해를 가린다 해도 영원히 덮을 수가 없다.
r 명심보감』성심편에 이런말이 있다. ‘물밑의 물고기와 하늘의 기러기는 높이 날아도 활로 쏠 수 있고 낮게 바닥으로 내려가도 낚을 수 있지만, 오직 사람의 마음은 지척 간에 있어도 그 가까운 거리의 사람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또 이런 말이 있다. ‘호랑이를 그리되 가죽은 그릴 수 있으나 뼈는 그리기 어렵고, 사람을 안다하더라도 얼굴은 알지만 마음은 알지 못한다.’
‘바다는 마르면 마침내 그 바닥을 볼 수 있지만,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은 알 수 없다.’ 모두 사람의 마음을 알기 어렵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 우물물과 다를 바 없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악의로 가득 찬 마음을 나타내는 말도 있다. 구밀복검이라는 말이다. ‘입에는 꿀을 바르고 뱃속에는 칼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겉으로는 꿀맛 같이 절친한 척하지만 내심으로는 음해할 생각을 하거나 돌아서서 헐뜯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이는 정심을 넘어 악심에 가깝다. 구업의 전형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은 참다운 마음이 아니다. 겉과 속이 같지 않은 마음은 자신과 다른 이에게 바람직하지도, 유익하지도 않다. 모두를 병들게 한다. 그러므로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 자신과 다른 이에게 솔직해야 한다. 수행이란 정심을 정심으로 바꾸 는것이다.
수호심
수호심이란 무엇인가? 수호하는 마음이란 오직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마음이다.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이 아주 많다. 수호심이 가득한 사람에겐 희망과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소통, 화합과는 거리가 멀다.「대일경소』에서 수호심을 이렇게 설하고 있다.
‘수호하는 마음이란 오직 이 마음만이 진실하며, 그 외의 마음은 진실하지 않다고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특히 수호심은 자기주장이 옳다고 하거나 자기 수행만이 최고라고 여기는 마음을 가리키고 있다. 계속해서 이렇게 설하고 있다. ‘세상 사람이 자기 몸이나 재물 등을 보호하기 위하여 담을 두텁게 세워 두르고 갖가지로 방비하여 지켜서 다른 사람이 손대지 못하게하는 것과 같이 이 마음도 역시 그러하다. 언제나 몸과 마음을 굳건히 지키니 마치 거북이가 여섯부분을 감추어 바깥 경계에 손상되지 않게 하는 것과 같다. 오직 이 수행만이 진실하다고 하며, 그 밖의 모든 수행하는 일은 다 진실하지 않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성문을 학습하는 자는 대부분 이런 마음을 낸다. 그 밖의 견해는 모두 다 진실하지 않다고 하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
자기 논리에 빠져 제 주장만 하는 사람은 수호심이 많은 사람이다. 수행을 제대로 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가운데 수호심을 조금이라도 가져서는 안된다. 수행이 깊을수록 수호심을 버려야 한다. 수행은 자랑거리가아니다.
간심은 아끼는 마음이다. 즉 인색한 마음이다.「대일경소』에서 간심을 이렇게 설하고 있다.
‘무엇을 인색한 마음이라 하는가. 자신만을 위할 뿐, 남을 위해 베풀지 않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이 사람의 온갖 행위는 모두 다 자신을 위한 것이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중요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베풀지 않는 것이다. 곧 탐심이다. 인색하다는 것은 탐욕심이 가득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인색함은 재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법과 진리에 인색한 것도 간심이다. 계속해서『소』에서 이렇게 설하고 있다.
‘재물이나 기예 내지는 선법을 좋아해서 몰래 아끼며 남에게 베풀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이 있는 자는 인색한 마음을 가진 자라고 알라.’
지식이나 정보 등을 공유하지 않고 혼자만 독식하는 자도 인색한 마음을 지닌 자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마음에 아끼고 탐함을 버리지 못하면 악취에 몸을 받아 나는 인연을 짓는 것’이라 하였다.
또「칠불본원공덕경』에서는 ‘만약 중생이 오직 탐욕스럽고 인색하여서 보시와 보시의 과보를 알지 못하며, 어리석어서 지혜가 적고 신심이 없으며, 재산을 쌓아두고 지키기만 하고, 사람들이 곡식을 빌리러 오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기뻐하지 않고, 설혹 부득이 하여 보시를 하더라도 자기의 살을 베는 것처럼 아까워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이 사람은 명을 마치고 아귀나 축생에 태어나게 된다.’고 하였다.
인색한 마음은 보시와 자비심이 없는 마음이며, 탐심과 욕심이 가득한 마음이다. 이는 남에게 베풀거나 남을 헤아리는 마음이 겨자씨만큼도 없는 사람이다. 탐심과 인색함을 다스리는 법은 오로지 보시밖에 없다.「대일경소』에서 이렇게 설하고 있다.
‘인색한 마음은 베풀거나 무상 등을 사유함으로써 다스릴 수 있다. 재물과 기능이란 영원하지 않기에 베풀 때에도 나로부터 떠나가는 것이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무주상보시를 말하고 있다. 보시 그 자체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일체는 무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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