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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마지막유훈‘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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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0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9-11-01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기획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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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화령 필자소속 - 필자호칭 정사 필자정보 화령 정사(불교총지종 중앙교육원장)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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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5-21 02:28 조회 6,67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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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마지막유훈‘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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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섬으로 하고 법을 섬으로 하라.’는 말씀은 ‘자등명, 법등명’이라고 한문으로 번역된 유명한 말씀이다. 자기를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으라는 말씀이다. 또 ‘자귀의, 법귀의'라고도 한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진리에 의지하라는 말씀이다.


사리푸트라가 출가해서 보름쯤 되었을 때 그의 외삼촌인 디가나가(Dignaga,장조)라는 바라문이 이 소식을 듣고 석가모니라는 분이 정말 그렇게 대단한 분인가를 확인하려고 죽림정사에 왔다. 이 사람은 사리불 어머니의 동생이었는데 젊었을 때 누구와 논쟁하다가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인도의 남부로 가서 수행을 하면서 철학을 배웠다고 했다. 이 사람은 손톱을 길게 길렀기 때문에 긴 손톱이란 뜻의 디가나가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전한다.

이 사람도 일종의 회의론을 주장하는 사람이었는데 아마 부처님의 말씀을 부정하면서 어떤 단정적인 말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던 모양이다. 그랬더니 부처님께서는 일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자네의 단정은 인정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고 되물으셨다. 이 말씀에 디가나가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디가나가의 경우에도 말하자면 산자야의 경우와 같이 회의론 자체가 자기모순을 내포하기 때문에 그런 주장은 성립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계속해서 디가나가에게 세계나 자아에 대해서 상견이나 단견을 지녀서는 안 된다는 설법을 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이 세계나 자아는 영원불멸의 실체라고 주장하는 것은 상견이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하셨다. 또 세계나 자아는 실체가 없다고 보 는 것도 단견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일체를 부정하고 진리를 의심하는 회의설도 모두 실체에 대한 그릇된 집착에서 생겨난 생각들이므로 중도의 입장에서 이러한 실체를 바르게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연기에 대해 말씀하시자 디가나가는 자기의 지금까지의 견해가 잘못된 것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청정한 법안을 얻고 부처님께 귀의했다. 사리푸트라의 외삼촌도 나중에 출가하여 상당히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의 외삼촌에게 설법하고 계시는 동안 부처님 뒤에서 부처님께 부채질을 해드리던 사리푸트라는 이 말씀들을 듣고 아라한이 되었다. 단번에 진리를 이해할 만큼 사리푸트라는 선천적으로 지혜가 있었던 것이다.

사리푸트라는 부처님을 대신해서 자주설법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사리푸트라의 경지가 높았으며 부처님을 대신하여 설법을 할 만큼 사리푸트라는 부처님의 신뢰가 깊었을 뿐 아니라 법을 이해하는 정도도 뛰어났던 것이다.

사리푸트라는 부처님보다 조금 앞서서 입멸했다. 사리푸트라는 부처님께 자신이 먼저 입멸하겠다고 허락을 얻고 고향인 나라다 마을에 가서 친족들에게 최후의 설법을 한 다음 입멸했다. 그 뒤를이어 목갈라나도 고향 사람들에게 최후의 설법을 한 다음 입멸했다. 이 두 사람의 위대한 제자가 입멸한 다음 얼마 되지 않아서 부처님께서도 입멸하셨다. 두 사람이 부처님보다 먼저 입멸한 것은 부처님의 입멸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그랬다는 설도 있다.

부처님께서 사위성의 교외에 있는 기원정사에 계실 때 마가다국의 나라라는 마을에서 사리푸트라가 입멸했다는 소식을 들으셨다. 사리푸트라의 시중을 들던 춘다라는 소년이 사리푸트라의 유품인 발우와 가사를 가지고 부처님께 달려와서 알렸던 것이다. 춘다가 왔을 때 아난다가 춘다로부터 사리푸트라가 입멸했다는 소식을 먼저 들었다. 그래서 부처님께 춘다를 데리고 가서 뵙게 한 다음 춘다를 대신해서 아난다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춘다입니다. 마가다에서 급히 달려왔는데 사리푸트라 존자가 입멸했다고 합니다. 존자의 발우와 가사도 여기에 가져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아난다는 사리푸트라가 부처님의 으뜸가는 제자이며 만약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사리푸트라가 교단을 이끌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리푸트라가 입멸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놀라서 탄식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아난다야, 내가 벌써 가르치지 않았더냐? 모든 사랑하는 사람과는 이별해야 할 때가 온다. 이 세상에 무상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아난다여, 큰 나무에서는 가지 하나가 먼저 마르는 일이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보다 먼저 사리푸트라가 죽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난다여, 나는 그대들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를 섬으로 하고 자기를 의지하되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 법을 섬으로 의지하고 법을 의지하되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 마지막 구절의 ‘자기를 섬으로 하고 법을 섬으로 하라.’는 말씀은 ‘자등명, 법등명’이라고 한문으로 번역된 유명한 말씀이다. 자기를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으라는 말씀이다. 또 ‘자귀의, 법귀의’라고도 한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진리에 의지하라는 말씀이다.

사리불과 목건련의 죽음은 석가족의 멸망과 함께 부처님의 만년에 일어났던 가장 슬픈 사건이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담담하게 이를 받아들이셨다. 과거의 업력에 의한 과보는 피하기 어려우며 모든 것은 무상하며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치를 거스르려고 할 때에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다.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가 입멸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부처님께서는 밧지국의 웃카체라라는 마을에 머무르고 계셨다. 갠지스강 근처에 있는 이 마을에서 어느 날 저녁 부처님께서는 많은 비구들을 모아놓고 포살의식을 행하고 계셨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대중들을 둘러보시고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가 보이지 않자 이렇게 말씀 하셨다. “비구들이여,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가 죽은 이후로 이 집회는 텅 빈 것 같구나. 저 두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집회는 쓸쓸하기 그지 없구나.”

부처님께서 그렇게 아끼시던 두 제자가 보이지 않게 되자 아무리 무상을 절감하시는 부처님께서도 쓸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으셨던 모양이다.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는 부처님의 제자라고는 하나 거의 연배도 비슷했던 것 같고 스승과 제자 사이를 뛰어 넘어 일종의 우정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서로 말이 통하는 사이였던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의 제자를 먼저 보내 놓고 나서 부처님께서도 몹시 허전했던 것 같다.

해탈의 경지에 드신 부처님께서도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의 부재를 이렇게 섭섭해 하셨으니 그 분들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를 뛰어넘어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우정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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