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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이름으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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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08호 발행인 록경(황보상민) 발간일 2025-07-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종단 서브카테고리 지혜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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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태원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칼럼니스트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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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5-07-10 13:15 조회 1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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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이름으로 ‘전쟁’

생명관과 종교적 태도의 차이

불교는 개종보다 조화와 공존


2022년에 일어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벌써 햇수로 4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2025년 6월에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시설을 폭격해 과학자와 군 지휘관을 암살하면서 본격적인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예측되었던 것이고, 만약 이 전쟁이 전면전으로 이어진다면 제3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이 해묵은 전쟁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역사상 전쟁의 주요 원인은 대부분 경제적 문제인데, 이스라엘과 주변 나라들의 전쟁만큼은 종교적 갈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랍 민족은 같은 셈족 계통이고, 이스라엘에 의해 쫓겨나고 가자 지구에서 억압받고 있는 팔레스타인인(人)은 본래 이스라엘과 하나였다가 갈라진 민족입니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이산(離散)’으로 번역되는데 한 민족이 여러 가지 원인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인의 디아스포라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주한 지역에서 많은 박해를 받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시기 히틀러에 의해 가장 심각한 피해를 보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지금의 이스라엘 영토에 나라를 세웠는데, 문제는 유대인이 떠난 후 그곳에 2000년 동안 살아온 팔레스타인인을 강제로 쫓아냈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은 본래 그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과 공존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유대인만의 나라를 세웠습니다. 물론 여전히 많은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에 살고 있지만, 그들은 차별 속에서 생존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탄압받던 유대인이 정작 나라를 세운 후에는 그곳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인을 억압하고 차별하고 있는 모습은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우리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구분해서 바라보지만, 종교학자들은 이 세 종교를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로 묶어서 봅니다. 세 종교의 뿌리가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 종교는 서로 사이가 매우 나쁩니다. 기독교는 가톨릭과 정교회로 분리된 후 가톨릭에서 다시 개신교가 분리됩니다. 비록 예수를 신으로 믿지만, 점차 다른 종교로 변화하는 중입니다. 이슬람교도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지만, 이 두 종파는 점차 별개의 종교로 나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는 겉으로는 평화를 말하지만, 수많은 전쟁이 그들의 신앙에 의해 자행되었습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자 수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 과정은 식민지의 토착 신앙과 문화를 말살하고, 자신들의 종교를 강제한 결과입니다. 이슬람교의 전파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전파 과정에서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종교적 열정을 가지고 전파된 것입니다. 비록 세계 4대 종교 중 교세가 가장 작지만 - 심지어는 인도의 민족종교인 힌두교보다도 작다 - 가장 평화로운 종교라는 것이 모든 종교학자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그런데 남방불교와 동아시아 지역 북방불교의 차이를 앞서 예를 든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사례와 비교하면 매우 큽니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분리된 후 벌어진 종교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하지만 남방불교와 동아시아 지역 북방 불교는 경전이나 승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갈등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배우려는 노력이 커지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와 불교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생명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해 자비(慈悲)를 말하는 불교에 비해 자기의 신을 강제하고 그것을 거부하면 폭력을 행사했던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는 그 출발점이 다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불교로 개종시키는 것은 불교도에게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일본인과 친하게 지내기 위해 내가 일본인으로 귀화할 필요가 없듯이, 각자 자신의 종교를 가지고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평화롭고 열린 모습은 오직 불교에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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