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지종의 역사

현 대한민국 밀교의 개척자이며 총지종의 창종주 원정 대성사

현대한국 밀교의 개척

현대한국밀교의 개척자이며 정통밀교종단인 총지종을 창종하신 원정대성사께서는 1907년 1월 29일 경남 밀양군 산외면 다죽리에서 탄생하셨다. 본관은 일직(一直) 손(孫)씨, 속명은 대련(大鍊), 총지종의 창종과 함께 정우(禎佑)로 개명하셨다. 어려서부터 비범해 한 번 보고 들은 것은 잊지 않으셨다고 한다. 유년시절에 이미 사서삼경을 통달하시고 개화의 물결과 함께 현대 고등교육을 마친 후 잠시 관계와 교육계에 종사하시다가 이후 불교에 뜻을 두고 한반도는 물론 중국, 일본 등지를 편력하시며 불경의 수집과 연구에 몰두하셨다.

원정대성사
6.25 직후 진각종의 개조인 회당 손규상 조사와 함께 진각종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으며 회당 조사의 입적 후인 1963년부터 진각종 총인의 자격으로 진각종을 이끌며 《응화성전》《총지법장》 등을 편찬하시면서 진각종의 교리적, 행정적 기반을 확립하셨다. 이후 정통밀교의 확립에 노력하시던 중 진각종의 현행수행체계에 오류를 발견하고 〈준제관음법〉 을 발굴, 이의 시행을 시도했으나 회당개조 친인척의 종교외적인 곡해와 밀교에 무지한 일부 승직자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셨다.

한국의 현대밀교가 새롭게 도약할 기회를 놓쳐버리시고, 이른바 ‘준제파동’의 와중에서 진각종을 떠나 은거하시면서 밀교의 비법으로 정진하시던 중 1972년 4월 7일 ‘대승장엄보왕경과 준제관음법으로 교화하라’는 관세음보살의 몽수를 받고 교상확립에 착수하셨다. 그 해 8월 21일 법신대일여래의 가지력과 원정대성사의 영명하신 통찰력으로 엄격한 의궤와 사종수법을 비롯한 밀교의 기틀이 갖추어짐에 따라 성사께서는 오랜 은거의 수렴을 거두시고 정법홍포를 발원하셨다. 마침 성사의 행방을 찾아 우왕좌왕하던 진각종의 중진스승들과 식견있는 제자들이 입교개종을 최촉함에 따라 밀교중흥의 결심을 굳히신 성사께서 1972년 12월 24일 드디어 불교총지종의 창종을 만천하에 선포하셨다.

총지종의 창종과 정통밀교의 수립

원정대성사
총지종의 창종 이후 원정 대성사께서는 진각종에서의 교리적, 행정적 착오를 반성하시고 정확한 인계, 엄격한 의궤와 사종수법을 비롯하여 교상(敎相)과 사상(事相)면에서 완벽한 체계를 갖춘 정통밀교의 확립에 노력하시면서 본산인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총지사를 비롯하여 전국 30여개소에 사원을 건립, “즉신성불”과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기치로 밀교의 대중화에 진력하셨다.

대성사께서는 해방 이후 한국에 ‘밀교’라는 용어와 개념을 최초로 도입하셨을 뿐 만 아니라 총지종과 진각종이라는 현대 한국밀교의 양대 종단의 산파 역할을 하심으로써 1980년 9월 8일 입적하실 때까지 한국 현대밀교사의 수립에 견인역할을 하셨다. 원정 대성사의 일대기와 현대 한국밀교사의 궤적이 일치한다고 평가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원정대성사의 사상은 《종조법설집》에 잘 나타나 있으며 총지종의 소의경전인 《대승장엄보왕경》《대승이취육바라밀다경》을 번역하여 발간하셨으며. 이 밖에도 대장경의 핵심을 모은 《불교총전》등을 편찬하셨다.

종조 원정대성사께서는 밀교교리에 정통하셨을 뿐만 아니라 종단 운영에 대해서도 한국불교계의 귀감이 될 수 있는 좋은 선례를 남기셨는 바 그 대표적인 것이 종단의 재단법인화이다. 종단의 재단법인화와 승직자들에 대한 노후대책은 투명하고 합리적인 종단 운영의 기틀이 되어 일부 종단에서 보는 것과 같은 종권 다툼이나 재산상의 분규를 불식시킴으로써 한국불교종단의 미래에 대한 모범을 제시하신 것은 한국불교 1600년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원정대성사의 밀엄국토건설과 정통밀교의 수립에 대한 대원(大願)은 총지종이 한국불교사상 최초로 양계만다라를 완성하여 봉안한 것에서도 나타났듯이 끊임없이 계승, 발전되고 있다. 이 땅에 처음으로 현대밀교의 물꼬를 열고 대승불교의 신천지를 개척한 동방의 빛 원정대성사의 가지신력이 ‘불교총지종’을 통하여 온 누리에 호국불교의 대비원과 함께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