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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을 이끈 지도자 판첸라마 롭상최기곌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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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68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03-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밀교인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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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정성준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교수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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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03-11 10:55 조회 1,1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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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을 이끈 지도자 판첸라마 롭상최기곌첸

생명과 인간의 근원을 탐구하고 사바세계에 고통이 사라질 때까지 인간세계에 영원히 태어나겠다는 보현행원의 서원은 티벳인들에게 낯익은 현실이다. 티벳을 여행하고 대사원의 법회에 동참하다 보면 무수한 보현보살의 화신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40년전 다람살라 남걀사원에 달라이라마 14세 성하의 법회가 있던 날이 있었다. 도량을 채운 인파 가운데 대중들이 비껴가는 공간이 있었다. 한국의 이방인은 무슨 구경거리가 있나 싶어 인파를 헤집고 접근한 결과 그곳에는 실망스럽게도 낮잠을 자는 성견이 한 마리 있었다. 처음엔 실망했지만 아무도 개의 오수를 방해하지 않았던 그 장면은 나의 보이지 않는 스승이 되었다. 

달라이라마 다음으로 티벳불교 겔룩빠를 이끄는 스승으로 판첸라마의 전승이 있다. 최초 판첸라마는 달라이라마 5세의 친교사였던 롭상최기곌첸(Lobsang Chökyi Gyaltsen, 1570–1662)이었다. 롭상최기곌첸은 창지역 란(Lhan) 계곡의 ’둑갸‘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명망있는 ‘바(sBa)’ 부족 출신인 쌍계예셰의 사촌인 꿍가외셀이었고 어머니는 초곌이었다. 처음에 태어났을 때 이름은 초곌뻴덴상뽀였으나 고승 랑믹빠최기곌첸에 의해 유명한 라마였던 벤사빠롭상된둡(1505-1566)의 환생으로 인정받은 후 최기곌첸으로 이름을 지정받았다. 젊을 때 쌍계예셰로부터 공부하였고 전생에 주지로 있던  벤사빠사원과 훗날 따시룽뽀사원의 주지로 임명된 후 양 사원에서 주석하였다. 13세에는 공부를 위해 고향을 떠나 수학하였으며 18세 처음 따시룽뽀사원의 토쌈링 승원대학에서 밀교수행인 마하무드라를 배웠다. 1591년 티벳의 수도인 라사를 방문하여 조캉사원과 간덴사원을 오가며 깔라챠끄라딴뜨라와 마하무드라를 비롯한 주요 밀교수행을 배웠다. 

고향인 벤사로 돌아온 후 사원과 불탑을 건립하고 보리도차제론을 비롯한 강의에 힘썼고 1601년 명성이 티벳에 널리 알려져 벤사사원을 비롯해 간첸최펠의 주지를 맏는 등 소임이 확대되었다. 제4대 달라이라마인 욘땐갸초(1589-1616)를 만난 후 함께 여행하였으며 이윽고 친교사가 되었으며, 1612년 부터 부탄과 네팔을 오가며 겔룩빠의 불교를 크게 선양했다. 제4대 달라이라마의 입적 후 주요한 겔룩빠 사원의 주지에 임명되었다. 창지역의 왕으로부터 임무를 받아 롭상갸초라는 어린아이를 제5대 달라이라마로 지목하였다. 1621년 몽골의 침략을 받아 티벳이 위험한 상황이 되었지만 지혜롭게 티벳을 이끌어 오히려 제5대 달라이라마때 티벳은 겔룩빠의 전승을 중심으로 크게 세력을 확장하였다. 

롭상최기곌첸은 몽골의 알탄칸으로부터 성인을 뜻하는 ‘보그드 bogd'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존경 받았으며, 청조 중국황제로부터도 대대로 깊은 귀의를 받았다. 달라이라마 5세는 스승 롭상최기곌첸으로 하여금 초대 달라이라마가 건립한 따시룽뽀사원의 주지를 맡을 것을 청하였고 이후 판첸라마들은 마지막 제11대 판첸라마인 롭상최기니마에 이르기까지 따시룽뽀사원의 주지가 되었다. 

최초 판첸라마는 티벳 시가체 창지역을 다스리는 정신적 지도자이기도 하였고, 종교적으로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여겨졌다. 판첸라마는 명망있는 학자로서 제4대 달라이라마와 제5대 달라이라마뿐만 아니라, 부탄과 몽골의 유수한 라마들을 가르쳐 무수한 학자들을 길러냈다. 제자들을 가르치는 시간 외에는 저술에도 힘써 백여권에 이르는 현교와 밀교의 주석들은 남겼다. 그의 저술들은 오늘날 겔룩빠 사원의 교재로 삼고있으며, 특히 "겔룩 전승의 보배인 마하무드라 본송"과 이에 대한 자신의 주석은 겔룩빠뿐만 아니라 까규빠에도 중시되었다. 

달라이라마 5세는 스승 롭상최기곌첸의 입적에 즈음하여 인간세상을 위해 다시 환생하여줄 것을 요청하였다. 스승은 1662년 91세(또는 92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달라이라마 5세는 스승의 입적 후 환생을 찾아 제5대 판첸라마로 롭상예셰(1663-1737)를 옹립하였다. 덧붙여 초대 판첸라마로는 쫑카빠의 제자였던 케둡제 겔렉뻴상(1385-1438)을 재세우고 이후 제3대 판첸라마를 지정하였고, 스승 롭상최기곌첸은 제4대 판첸라마가 되었다. 

제5대 판첸라마인 롭상예셰는 위대한 학승이었지만 몽골과 만주, 그 뒤를 잇는 청조의 틈바구니에서 외교적으로 티벳을 지키느라 어지간히 노력하였다. 그 정치외교적 혼란은 동아시아의 판도변화에 의한 것으로 17-18세기 조선조가 겪었던 혼란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근대 제10대 판첸라마인 틴레룽둡최기곌첸(1938-1898)과 11대 판첸라마인 롭상최기니마는 인간적 삶으로서 티벳과 중국과의 관계 사이에서 인간적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 티벳의 지도자를 통제하려는 중국의 야심은 제10대 판첸라마를 평생 구금하였고 말년에 귀국 후 의문의 독살을 당하였다. 1989년 달라이라마 정부에 의해 제11대 판첸라마로 지목된 롭상최기니마는 중국에서 6살 되던 1995년 5월 17일, 중국공안에 의해 부모와 함께 납치되어 아직까지 행방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대신 중국정부는 동갑내기 곌첸놀부를 제11대 판첸라마로 옹립하여 30살을 넘겼지만, 그도 개인적으로 여행의 자유나 공식적인 대화가 금지된 채 본인이 원하지 않았을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늘(2022.2.24)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인류는 또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졌다. 국가간 힘의 질서는 냉엄한 현실이다. 소련해방 후 한때 강대국으로서 핵무기와 미사일을 포기하며 인류평화에 동참했던 우크라이나는 냉전의 여파라는 냉정한 현실을 외면한 댓가를 치루고 있다. 전체주의는 진리를 탐구하려는 자발적 생명가치의 실현과 공존할 수 없다. 종교적 환희의 향연과 석가모니붓다에 의해 시작된 불법수호의 다짐이 정치외교적 인간사의 갈등으로 빛이 바래지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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