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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수행의 은둔자 롱첸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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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67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02-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밀교인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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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정성준 교수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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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02-11 13:50 조회 1,26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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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수행의 은둔자 롱첸빠

대부분의 생애를 저술과 수행, 250여 편에 이르는 저작 남겨

문수보살의 화신. 현교의 교학과 밀교의 수행의 교량을 마련

쫑카빠를 전후해서 티벳은 국가제도의 성장과 함께 불교국가로서 티벳 사회를 이끄는 승려들의 권위가 놓아졌다. 티벳의 종교 지도자들은 현교의 교학에 밝고 밀교 의궤에 능통한 아사리들이었다. 당시는 중생의 고통을 덜기 위한 종교 의식이 중요하던 시절이었고, 그것은 밀교였다. 밀교의 아사리가 되기 위한 관정의식은 스승이 되기 위해 중생의 고통이 다할 때까지 결코 안락한 열반에 들지 않겠다는 거듭된 서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티벳의 고승들이 거주했던 조그만 토굴이나 소박한 거처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여기에는 대를 이어 수행하고 사회적 봉사를 마다한 이름 모를 무수한 아사리들의 흔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후전기 티벳불교의 토대와 전통을 세운 인물을 세 분만 추리면 쫑카빠와 사꺄빤디따, 그리고 롱첸빠(1308–1364)를 든다고 한다. 본명은 ‘롱첸 랍잠빠 디메외셀’이지만 간략히 롱첸빠라고 부르며 닝마빠의 인물이다. 티벳불교의 역사상 문수보살의 화신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의 하나로 현교의 교학과 밀교의 수행의 교량을 마련한 분이다. 티벳불교 초전기 인도의 까말라실라 논사와 중국 선종의 마하연 선사가 대론을 벌였던 삼예사원의 주지직을 겸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생애를 저술활동과 한적한 곳에 물러나 수행에 전념했던 인물이었고 주석과 저술 등 무려 250여 편에 이르는 저작을 남겼다. 롱첸빠의 전기에 대해서는 그를 존경하는 후손들의 칭송과 가필이 적지 않기 때문에 종교적 미사여구를 제외하고 사적만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롱첸빠는 1308년 남부 티벳 뙤동지방에서 태어났고 처음에는 돌제곌첸이라 이름하였다. 아버지는 뗀빠쑹으로 록부족의 밀교수행자였는데 하야그리바의 전승인 곌와최컁과 다른 갈래로서 예셰왕뽀의 법을 이었다. 두 스승은 닝마빠의 조사인 빠드마삼바와 후기 중관파 논사인 샨타락시따의 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일찍이 현밀겸수에 능통하였다. 어머니는 돔부족의 소남곈이었고 돔부족은 아띠샤의 제자인 곌외중네를 선조로 두었다. 롱첸빠는 전통있는 집안에서 공부와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고루 갖추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롱첸빠는 글을 배운 후 밀교의 본존관정을 일찍이 받고 아버지로부터 약학과 천문학 등 오명의 지식을 직접 배웠다. 12세 공부를 더하기 위해 삼예사에서 사미계를 받고 14세 때 꿍가외셀로부터 계를 배웠다. 따시린첸으로부터 하꺄람데를 수학한 후 까규빠의 나로육법을 비롯해 와브라바라히, 챠끄라상와라딴뜨라의 간타빠다 전승, 금강수의 마하챠끄라, 왕축예세로부터는 깔라챠끄라딴뜨라를 전수받았다. 또한 쬐와 시제빠의 수행을 두루 익혀 당시 현밀겸수의 전승을 처음부터 수준 높게 익혔다.
롱첸빠는 19세 때 상뿌뉴똑사원에 들어가 까담빠와 사꺄빠의 전승에 입각해 불교철학과 논리학, 특히 미륵 5부서와 달마끼르띠의 인명학, 중관, 반야학을 공부하였다. 상뿌사원에 있을 때 밀교의 아누요가에 대한 관정을 비롯해 마하요가와 아띠요가 등 닝마빠의 중요한 수행을 두루 거쳤다. 그러나 롱첸빠는 캄출신의 승려와 갈등이 생겨 상뿌사원을 떠나게 되었는데 이때 어떤 승려의 권유로 시를 짓게 되었다. 롱첸빠는 당대의 인물들과 수학을 나란히 했는데 이름이 전해지는 스승들은 무려 21명에 이르며 이들로부터 현밀의 교학을 두루 익혔다.
밀교수학의 절정에 이른 후부터 문수보살, 에까자띠, 사라스와띠, 부동명왕, 와즈라와라히, 따라보살 등을 환영속에서 친견하고 이들로부터 가르침을 전수받았다. 롱첸빠는 1332년부터는 라모지역 남동부에 있는 촉라동굴에서 깊이 몸을 감추고 밀교수행에 전념하였는데, 이때 닝마빠 밀교의 주요 수호존인 에까자띠의 가피와 수기를 받았다. 1334년 25세 되던 해 롱첸빠는 릭진꾸마라라자(1226-1343)를 만났으나 스승에게 보시할 의례적 재물이 없었기 때문에 주저하였는데 스승은 그를 알아보고 수제자로 받아들여 자신의 가르침을 남김없이 전수하였다. 스승은 자주 이사하였고 후원자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롱첸빠도 더불어 항상 가난하고 굶주렸다.
롱첸빠가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32세 되던 해 삼예사 북쪽 작은 동굴에서 여덟 제자를 받아들이면서 부터였다. 이때부터 닝마빠의 중요한 전승의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전수하였고 이들이 전한 중요한 전승과 기록들은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삼예사와 더불어 롱첸빠가 주로 거주했던 곳은 그가 스스로 오곈종이라 이름했던 곳으로 강리톡깔지역의 수도원이었다. 여기서 롱첸빠는 200여권에 이르는 그의 대부분의 저작들을 완성하는 저술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롱첸빠는 56세부터 건강이 기울기 시작하여 침뿌에 칩거한 후 여전히 제자를 지도하였고 일부 저술들을 남겼지만 그해 좌탈입망하여 열반에 들었다.
밀교로 말하면 엘리트 가문의 출신인 롱첸빠는 현밀의 교학들을 두루 익혔지만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롱텐빠는 요기로서 본존의 수기와 가피를 중요시하고, 개인의 수행을 위해 동굴과 수도원을 전전하는 밀교수행의 은둔적 요소가 더 많이 보인다. 롱첸빠는 티벳의 정치적 변동으로 인해 한때 남쪽으로 이동해 남부티벳, 지금의 부탄지역에서 탈빠링사원을 세우고 자신의 거처로 삼았다. 여기서 재가자를 중심으로 4단계의 족첸수행을 지도하였고 이때부터 무수한 수도원을 건립하여 밀교수행의 본거지가 되게 하였다. 지금도 부탄은 롱첸빠를 기리는 많은 동굴과 수도원이 있어 승속을 가리지 않고 밀교수행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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