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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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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65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12-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칼럼 지혜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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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태원 칼럼리스트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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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12-06 11:01 조회 1,70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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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몸은 보리수이고 마음은 명경대와 같아’ 6조 혜능대사 게송 노자의 사상과 닮아

시비와 선악과 미추의 이분법적 세계는 사람들에게 질서정연한 길을 안내한다. 인류에게 보다 나은 것을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문명의 변화가 이어졌고 현재에 이르렀다. 현재 인류의 문명을 발전의 산물로 본다면 그것은 문명의 길이고 진보의 길이다. 근대 문명을 이룩한 것은 17세기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의 산물로 이성(理性)의 작용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인류의 미래는 이성의 작용에 의한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끊임없는 발전이라는 낙관적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이성을 중시하는 근대의 흐름은 데카르트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그의 도구적 이성관은 오직 주어진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계산적인 합리성, 수단적인 합리성만을 중시하였다. 


어떤 목적에 대한 탐구나 반성적인 성찰의 의미를 상실한 이성은 광기로 변하게 된다. 근대 이후의 서구 문명은 이성 중심의 이분법에 의해 배제되고 타자화된 것들을 절멸의 대상으로 삼아버렸다. 이성적 사고에 의해 이루어진 근대 과학기술문명으로 전 세계의 약소민족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들고 1,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독일 나치의 홀로코스트라는 대량학살에 이용되었다. 근대사회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은 이성의 작용에 의한 합리적인 조치였지만 그 이성은 특정한 집단이나 민족 등의 이성이었다. 말하자면 자신들을 시(是)와 선(善)과 미(美)의 쪽에 두고 자신들과 다른 집단, 이민족, 타 인종들은 비(非)와 악(惡)과 추(醜)에 두었다. 문제는 단순한 구분으로 끝나지 않고 배제와 절멸의 대상으로 규정한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이 나에게는 그러한 이분법적 논리에 대한 비판으로 보인다. 도덕경 2장의 천하개지미지위미사오이(天下皆知美之爲美斯惡已)는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아름답다로 알고 있는 것을 아름답다라고 규정한다면 그것은 추한 것이다.”로 설명된다. 이 내용은 미(美)를 규정함으로서 미의 기준이 절대화되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배제되어 버린다. 문제는 미에 속한 것들은 다시 미추로 나뉘고 추로 구분되는 것들은 배제되는 행위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미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고, 미(美)가 미(美)이려면 추(醜)가 있어야 된다. 미와 추는 갈라놓을 수 없는 한 몸과 같은 것이다. 그러기에 시와 선과 미만 남아있으면 다시 그 안에서 비와 악과 추가 만들어지게 된다. 


모든 문명은 이분법적 논리위에 세워진 구조물이다. 문명의 전개과정은 중국문명이 세계를 화(華)와 이(夷)로 가르고, 그리스 문명이 세계를 헬라스와 바르바로이로, 근대유럽이 세계를 문명과 야만으로 나누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배제되고 타자화된 세계는 끊임없이 수탈되고 추방되고 절멸되어 왔다. 세계를 이분법적 틀로 보는 태도는 동서양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내용이다. 그런 세계관과 가치관이 극성을 부렸던 때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였다. 도덕경은 그러한 이분법적 세계관의 병리현상에 대한 일종의 해독제로 제시된 것은 아닐까? 그러나 역사는 노자의 사상을 주류로 선택하지 않았다. 


6조 혜능대사의 게송에 다름과 같은 내용이 있다. 먼저 신수의 게송은 ‘신시보리수(身是菩提樹) 심여명경대(心如明鏡臺) 시시근불식(時時勤拂拭) 물사약진애(勿使惹塵埃)’로 “몸은 보리수이고 마음은 명경대와 같아 늘 털고 닦아서 먼지가 끼지 않게 한다.”라는 의미이다. 혜능의 게송은 보리본무수(菩提本無樹) 명경역비대(明鏡亦非臺)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하처약진애(何處惹塵埃)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고 명경 또한 대가 아니니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낄 것인가 라는 내용이다. 신수의 게송은 이분법적 세계관과 통하는 부분이 있고 혜능의 게송은 노자의 사상과 닮아있다. 그러나 유무상생有無相生 난이상성難易相成이라는 노자의 말씀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는 혜능의 말씀이 더 와 닿는다.

칼럼리스트 김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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