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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도 <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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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39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9-10-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문화 서브카테고리 불교와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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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은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자유기고가 김은주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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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1 23:54 조회 4,77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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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도 <토지>
도덕의 틀을 깨고 원시적 인간을 보여준 ‘임이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탤런트 박원숙씨가 나오는 토크쇼를 보게 됐 습니다. 박원숙씨는〈토지〉의 ‘임이네’ 라는 역할을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더 군요. 원작자인 박경리 선생님도 자신 이 표현한 ‘임이네’에 대해 극찬했다면 서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임이네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여 자였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 면 물불을 안 가리고 달려들었습니다. 남편 칠성이 있음에도 옆집 남자 용이 에게 은근히 추파를 보냈습니다. 용이 에게는 강청댁이라는 부인이 있고, 또 월선이라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기에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자기 마음 이 더 중요했습니다. 결국 용이의 첫 아들 홍이를 낳음으로써 자신의 자리 는 없을 것 같던 상황에서도 가장 견 고한 자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나이 들면서는 용이에 대한 욕망과 집착은 돈에 대한 갈구로 모양을 바 꾸었습니다. 자신의 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월선의 국밥집에서 일했는데 월 선 몰래 돈을 빼돌려 이자놀이를 해 서 베개에 숨겨두었는데 용정에 대화 재가 나면서 자신이 그렇게 애지중지 하던 돈이 소멸할 상황이 닥치자 그녀 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목숨 까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미친 듯이 베개를 찾던 모습은 그녀의 돈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었습니다.

임이네가 이렇게 자신의 욕망을 충 족하면서 살아가면서 주변의 많은 사 람들이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양심의 가책 같은 건 느끼지 않고, 부끄러움도 없었습니다. 질긴 생명력을 가진 그야말로 잡초 같은 여 자였습니다. 그녀의 질긴 집착과 생명 력이 끔찍하면서도 놀라웠습니다.

박경리의 원작〈토지〉는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광복까지 최참판댁을 중 심으로 해서 하동 평사리와 중국 용정 을 중심으로 다양한 군상의 인물이 등 장하는 대서사시입니다. 그러면서도 서희와 길상, 상현의 삼각관계, 용이 와 월선의 순애보적 로맨스는 매우 절 절했습니다. 역사를 아우르면서도 뛰 어난 러브스토리가 있기에 이 소설은 드라마로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배우 한혜숙이 최서희로 나왔던 1979년〈토 지〉, 그리고 최수지가 최서희역을 맡 았던 1987년〈토지〉, 그리고 김현주가 서희로 나왔던 2004년〈토지〉등.

30여 년 전에는 임이네를 악역으로 생각했습니다. 기생충 같은 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녀야말로 최선을 다 해 살아남은 우리 민중들의 모습이라 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임이네와 비교되는 인물이 함안댁입 니다. 둘 다 최참판댁 장남 최치수 살 해사건에 연루돼 사형된 남편을 둔 여 인들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딸린 불 쌍한 여자들입니다. 그런데 둘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남편이 살인죄로 죽 음을 당하자 함안댁은 최참판댁에 자 신의 처지가 부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 었습니다. 그녀는 아들 둘을 남겨두고 목을 매 어 죽었습니다.

반면 임이네는 남편 칠성이 살인에 가담했다가 사형당하면서 아이 셋과 함께 평사리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먹 고 살기 위해 몸을 팔았지만 그녀는 결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불쾌하고 절박한 상황에서도 절망하기 보다는 솟아날 구멍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마 침내 한 줄기 빛을 찾아냈습니다. 옆 집 남자 용이입니다. 남편 칠성이 있 을 때부터 잘생기고 점잖은 용이에게 늘 마음이 있었습니다. 용이가 자신에 게 마음이 없고, 엄마가 반대하는 여 자 월선에 대한 사랑으로 번민하는 것 을 알지만 그녀에겐 그런 거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녀가 관심 있는 건 용 이의 아내가 돼서 평사리서 쫓겨나지 않을 방법을 찾는 거뿐이었습니다. 결 국 그녀는 목적을 이뤘습니다. 이렇게 그녀는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결코 절 망 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 남을 방법을 찾았고, 결국 그녀는 살 아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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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네는 함안댁과도 달랐고, 월선 이나 용이와도 결이 완전히 다른 종류 의 사람이었습니다. 한때는 임이네를 악인으로 여겼는데 살만큼 살고 보니 까 그녀는 악인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이기적이기는 했지만 그녀는 제 나름 대로 최선을 다해서 산 것 뿐이었습니다. 평탄하고 기름진 땅에서 무난하게 살았다면 그녀는 굳이 그렇게 악다구 니를 부리며 살지 않아도 됐을 것입니 다. 그런데 그녀는 돌밭에서 살아남아 야 했습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살 아남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토지〉에는 무려 6백 여 명의 등장인 물이 나옵니다. 최서희나 김길상처럼 주인공급의 캐릭터도 있는데 내게는 토지에서 임이네가 가장 먼저 떠오릅 니다. 그만큼 임이네는 낯설면서 신선 한 캐릭터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니, 도덕이니, 죄의식이니 하는 틀을 깨고 원시적 인간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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