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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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인행 전수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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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8-07-10 16:18 조회82회

본문

세상을 멀리 보고 맑게 보는 지혜를 밝히자


자인행 전수 -

 

 

월초가 매달 기다려지시나요? 저는 월초를 참 많이 보냈지만 할 때마다 긴장도 되고 걱정도 됩니다. 유달리 이번 월초는 더 그랬습니다. 새벽에 두 번 정도는 새벽 두 시 정도에 서원당에 올랐습니다. 희사하고, 향 피우고, 보살님들 가정이 무탈하고 재난 없길 바라는 마음을 가집니다. 보살님들 염송 정진 덕에 다행히도 밀행사는 큰 탈 없이 지내는 것에 감사합니다.


모든 것엔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염송 정진한 것이 늘 본인이 원하는 때에 맞춰서 오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한 노력, 정진이 헛된 일이 아니지요. 그 덕은 더 큰 이자와 함께 같이 다른 방법으로 반드시 돌아옵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별하고 아들을 혼자 키우는 보살님이 계셨습니다.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서 작은 가게를 하나 차렸는데, 부처님의 공덕으로 가게가 아주 잘 되었습니다.

주위에서는 보살님의 새 출발을 바라는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보살님은 오직 아들만을 바라보며 삶을 이어 나갔습니다.

아들 역시 그런 보살님의 기대에 부응하여 반듯하게 자라났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들은 장가를 가게 되었고, 며느리 역시 보살님의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보살님은 정말 딸처럼 아껴줘야지,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결혼 후 분가하여 살 것을 권유했지만 아들과 며느리의 만류로 그들은 한 집에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마음에 들 수는 없었습니다. 며느리는 바쁜 직장 생활로 야근과 회식이 잦았습니다. 주말엔 오후까지 늦잠을 자다 오후엔 아들과 며느리 둘만 나가 외식을 하는 일도 부지기수였습니다.

하지만 아들을 생각하며 참고 지냈습니다. 어느 날, 며느리를 불러 앉혀 자식은 언제쯤 볼 요량이냐 물었는데 며느리는 5년 후 쯤으로 생각한다고 대답하였고, 그 대답은 보살님 마음에 미움을 일으켰습니다. 감정의 골은 더욱 더 깊어가고 아들과의 사이도 서먹하게 되었습니다. 미움은 분노를 일으키고 분노는 어리석은 마음을 갖게 합니다.


절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큰스님과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보살님의 얼굴을 보며 보살님 얼굴이 많이 상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하고 물었고, 보살님은 봇물 터지듯 그 간의 설움과 고통을 모두 토로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현재 보살님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보살님은 망설이지 않고 며느리와 함께 살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그렇다면 제가 보살님의 서원을 위한 100일 불공을 올리겠습니다.”하고 답하였습니다. 보살님은 기쁜 마음에 그럼 저는 무엇을 하면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며느리를 위해서 딱 100일만 참고 아침상을 차려주세요. 아주 정성껏 차려주세요. 그 정성만큼 보살님의 서원이 빨리 이루어 질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제 서원을 들어준다는데 그깟 아침상이 대수일까 생각하며 보살님은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보살님은 스님과의 약속대로 매일 아침 아주 정성껏 아침상을 차렸습니다. 처음엔 며느리는 보살님의 친절을 낯설게 여기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맛있게 먹기 시작했습니다. 보살님은 며느리가 좋아하는 해산물 위주로, 야근이 있는 날엔 보양음식 위주로, 회식이 있는 날엔 해장국을 끓여 아침상을 차렸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변화가 생겼습니다. 며느리가 일찍 퇴근하는 날엔 직접 장을 봐와서 보살님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저녁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말에 외출하는 날엔 세 가족이 함께 외식을 하는 날이 많아졌고, 크고 작은 선물을 교환하는 일도 생겼습니다. 두 달이 지나자, 며느리와의 관계가 아주 좋아졌습니다.

보살님은 부리나케 큰스님을 찾아갔습니다. 보살님이 스님, 아직 제 100 일 불공하고 계시나요하고 묻자, 스님께서 , 잘 하고 있습니다. 보살님께서도 잘 하고 계시지요? 설마 벌써 며느리가 나갔습니까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아니요. 스님 그 불공 그만 해 주세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제 며느리와 아들과 오래오래 살고 싶습니다.”하며 보살님은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살다보면 사람이 미워질 때가 있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도를 넘어서 분노를 일으키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만들기도 하며, 때로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은 왜 일어날까요? 상대와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관계에 따른 상황이 다른데 그것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람을 바라볼 때 미움이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틀린 것과 다른 것의 차이를 인지해야 합니다.


상대가 날 미워하는지 좋아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행동으로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날 좋아하는 사람은 미워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날 미워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일은 아주 어렵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내가 타인을 먼저 좋아한다면 날 미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전생에 내가 그 사람을 미워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끊어내는 방법은 내가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먼저 용서하는 것입니다. 미움을 놓는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 연등에 서원사항을 적을 때 내 가정, 남편, 아들, , 며느리, 손자의 행복, 건강 등 본인과 본인 주위만 잘 먹고 잘 사는 서원만 염원하지 말고 세상을 멀리 보시고 맑게 보는 지혜를 밝혀 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잘 먹고 잘 살기를 염원해 보십시오.


그 작은 서원이 큰 밑바탕이 되어서 더 큰 사랑으로,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성도합시다.

 

      

부처님께서 말씀 하셨다.

사람이 애욕에 얽매이면 마음이 흐리고 어지러워 도를 볼 수 없다. 맑은 물을 휘저어 놓으면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림자를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너희들 사문은 반드시 애욕을 버려야 하니 애욕의 때가 씻기면 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도를 보는 사람은 마치 횃불을 가지고 어두운 방안에 들어갔을 때 어둠이 사라지고 환히 밝아지는 것과 같다. 도를 배워 진지를 보면 무명은 없어지고 지혜만 남을 것이다.

내 법은 생각함이 없이 생각하고, 행함이 없이 행하며, 말함이 없이 말하며, 닦음이 없이 닦는다. 그런 까닭에 아는 사람에게는 가깝지만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갈수록 아득할 뿐이다. 무어라 말 할 길이 끊어졌으며 일체에 걸릴 것이 없으나, 털끝만치라도 어긋나면 잃어버리는 것도 잠깐이다.

천지를 볼 때 덧없음을 잠깐 생각하고, 세계를 볼 때도 덧없음을 생각하며, 마음을 볼 때는 그대로 보리라고 생각하라. 이와 같이 알면 도를 얻기가 빠를 것이다. 몸에 있는 사대의 어디에도 나는 없다고 생각하라. 내가 있지 않다면 그것은 허깨비와 무엇이 다르겠느냐?

사람이 감정가 욕망에 끌려서 명예를 구하지만 명예가 찾아들면 몸은 이미 죽고 만다. 보잘것없는 세상의 명예를 탐하느라 도를 배우지 않고 헛수로만 하는 것이, 마치 향을 피워 그 향기를 맡기는 했지만 향은 이미 재가 되고 만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몸을 해치는 불이 명예의 뒤에 숨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