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의식 도구들, 법구(法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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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2-03 14:20 조회13,993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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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템플스테이>를 읽다가
불자들에게 유익한 내용이라 옮겨와봤습니다.
사찰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의식 도구들, 법구(法具)
글.김유신 일러스트.김다정
사찰에서는 시기와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독특한 의식(儀式)들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의식을행할 때 사용하는 다양한 법구들이 존재합니다. 이 법구들은 불교인이 아니어도 TV나 책 등을 통해 쉽게 만나 볼 수 있어서 일반인들에게도 매우 친숙한 존재들입니다. 불교하면 바로 이 법구가 연상될 정도로 대표적인 것으로는 목탁과 염주를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참선하는 스님들의 어깨를 내려치는 죽비도 방송프로그램이나 광고를 통해서 심심치않게 만날 수 있는 법구입니다. 이외에도 방울소리가 낭랑한 요령이나 불교 고유의 범패의식때 사용하는 우렁찬 소리의 바라도 널리 알려진 법구들입니다. 사찰에서 매일매일, 그리고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이 법구들이 지닌 고유한 의미와 쓰임새를 알면 사찰의 일상과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번 호에서는 불교문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법구들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Q 염주는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무엇을 의미하고 있나요?
A 염주(念珠)는 염불을 하거나 절을 할 때 그 숫자를 헤아리는 데 사용하는 법구입니다.
염불이나 절을 하지 않을 때에도 목에 걸거나 손목에 차고 다니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데 사용합니다. 염주는 말 그대로 생각하는 구슬입니다. 무엇을 생각하는 구슬일까요? 염주를 달리 수주(數珠) 또는 주수(珠數)라고도 하는데 뜻은 숫자를 헤아리는 구슬이란 의미이니 염주는 곧 ‘염불하는 숫자를 헤아리면서 진리를 생각하는 구슬’이라고 하겠습니다.
염주알의 숫자는 108번뇌를 상징하는 의미로 108개가 기본입니다. 세상의 번뇌가 108개만은 아닐 것입니다만 108이라고 숫자로 표현한 것은 ‘많다’, 혹은 ‘모든 것’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주 많다는 의미로 ‘천번 만번’ 이라는 말을 쓰는 것처럼 말입니다. 염주는 만드는 재료와 쓰임에 따라 종류가 다양합니다만 108염주를 기본으로 쓰임에 따라 많게는 1080염주가 있고, 적게는 108개의 절반인 54염주, 그리고 또 그 절반인 27염주의 4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손목에 차고 다니는 작은 염주를 ‘단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불교뿐만 아니라 힌두교, 이슬람, 가톨릭도 염주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록 부르는 이름과 의미는 달라도 매우 닮은 물건을 각 종교마다 성스러운 기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염불이나 절을 하지 않을 때에도 목에 걸거나 손목에 차고 다니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데 사용합니다. 염주는 말 그대로 생각하는 구슬입니다. 무엇을 생각하는 구슬일까요? 염주를 달리 수주(數珠) 또는 주수(珠數)라고도 하는데 뜻은 숫자를 헤아리는 구슬이란 의미이니 염주는 곧 ‘염불하는 숫자를 헤아리면서 진리를 생각하는 구슬’이라고 하겠습니다.
염주알의 숫자는 108번뇌를 상징하는 의미로 108개가 기본입니다. 세상의 번뇌가 108개만은 아닐 것입니다만 108이라고 숫자로 표현한 것은 ‘많다’, 혹은 ‘모든 것’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주 많다는 의미로 ‘천번 만번’ 이라는 말을 쓰는 것처럼 말입니다. 염주는 만드는 재료와 쓰임에 따라 종류가 다양합니다만 108염주를 기본으로 쓰임에 따라 많게는 1080염주가 있고, 적게는 108개의 절반인 54염주, 그리고 또 그 절반인 27염주의 4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손목에 차고 다니는 작은 염주를 ‘단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불교뿐만 아니라 힌두교, 이슬람, 가톨릭도 염주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록 부르는 이름과 의미는 달라도 매우 닮은 물건을 각 종교마다 성스러운 기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설에는 그 이유가 인도에서 아랍을 거쳐 유럽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만 그 연원의 사실여부를 떠나 종교는 달라도 그 지향하는 바는 같은 곳이어야 함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아 그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Q 목탁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치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A 목탁(木鐸)은 불교의 모든 의식에 사용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불교를 대표하는 법구입니다. 산사의 새벽을 여는 첫 소리가 목탁에서 울려 퍼지고 산사의 하루를 마감하는 소리 또한 목탁에서 나옵니다. 또한 의식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찰에서 회의를 하거나 일을 함께 하기 위하여 사람이 모이는 경우에도 사용되고 심지어 식사시간을 알릴 때도 목탁이 사용됩니다.
이처럼 사찰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목탁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의식용 법구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불교가 전해지기 이전에 중국에는 이미 목탁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지금과 같은 형태의 목탁이 아니라 쇠로 만든 방울에 나무로 된 추가 달린 형태였는데 불교 전래와 더불어 불교적 사상과 교훈을 담으면서 현재와 같이 물고기 모양을 갖추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A 목탁(木鐸)은 불교의 모든 의식에 사용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불교를 대표하는 법구입니다. 산사의 새벽을 여는 첫 소리가 목탁에서 울려 퍼지고 산사의 하루를 마감하는 소리 또한 목탁에서 나옵니다. 또한 의식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찰에서 회의를 하거나 일을 함께 하기 위하여 사람이 모이는 경우에도 사용되고 심지어 식사시간을 알릴 때도 목탁이 사용됩니다.
이처럼 사찰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목탁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의식용 법구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불교가 전해지기 이전에 중국에는 이미 목탁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지금과 같은 형태의 목탁이 아니라 쇠로 만든 방울에 나무로 된 추가 달린 형태였는데 불교 전래와 더불어 불교적 사상과 교훈을 담으면서 현재와 같이 물고기 모양을 갖추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Q 금고는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치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A 금고(金鼓)는 말 그대로 쇠로 만든 북을 뜻합니다. 징이나 얇은 북과 같은 형태로 한쪽은 막히고 한쪽은 터져 비게 만들고 막힌 쪽을 방망이로 쳐서 소리를 내는데 보통 고리가 두 개 또는 세 개 정도 있어서 달아맬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표면에는 양각으로 동심원을 새기고 중앙 당좌에는 연화문을 나타내거나 그 주위로 당초문, 구름문양 등이 잘 배치되어 있습니다. 북의 옆면이나 뒷면에는 북의 제작연대와 걸려 있던 사찰 이름,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 그리고 북을 만들며 빌었던 소망이 새겨져 있는 것이 많습니다.
사찰에서 주로 대중을 불러 모으거나 행사나 의식을 알릴 때 공양시간이나 급한 일을 알리기 위한 일종의 신호도구로 사용됩니다.
표면에는 양각으로 동심원을 새기고 중앙 당좌에는 연화문을 나타내거나 그 주위로 당초문, 구름문양 등이 잘 배치되어 있습니다. 북의 옆면이나 뒷면에는 북의 제작연대와 걸려 있던 사찰 이름,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 그리고 북을 만들며 빌었던 소망이 새겨져 있는 것이 많습니다.
사찰에서 주로 대중을 불러 모으거나 행사나 의식을 알릴 때 공양시간이나 급한 일을 알리기 위한 일종의 신호도구로 사용됩니다.
Q 죽비는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치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죽비는 사찰에서 주로 참선의 시작과 끝을 알리고, 참선수행 중에 졸음을 못이기는 사람을 경책하기 위해 사용하는 법구입니다. 참선수행을 주로 하는 선원(禪院)에서는 목탁을 치는 것이 수행에 방해된다고 하여 죽비로 의식을 집전할 정도로 죽비는 참선수행을 상징하는 기물입니다.
우리가 발우공양을 할 때 죽비를 사용하는 것도 이러한 참선수행의 전통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죽비를 달리 죽비자라고도 하는데 모양은 약 40~60㎝ 정도의 길이로 대나무나 다른 나무를 잘라서 만듭니다. 3분의 2정도는 가운데를 갈라서 두 쪽으로 나누고 3분의 1은 가르지 않고 그대로 두어 자루가 되게 하는데 자루를 오른손에 쥐고 갈라진 부분을 왼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냅니다. 죽비도 언제부터 사용됐는지는 불분명합니다만 중국에서 선종(禪宗)이 발흥하면서 널리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짐작되어 집니다.
일반적인 죽비와 달리 선방에서 참선 수행 도중 조는 사람을 깨우는 용도로 사용하는 1.5m~2m 정도 되는 큰 죽비도 있는데, 이를 장군죽비라고 부릅니다. 죽비 또한 목탁과 같이 우리의 게으름을 경계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이니 비록 대나무 토막일지언정 그 행하는 바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베푸는 스승과 다름없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발우공양을 할 때 죽비를 사용하는 것도 이러한 참선수행의 전통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죽비를 달리 죽비자라고도 하는데 모양은 약 40~60㎝ 정도의 길이로 대나무나 다른 나무를 잘라서 만듭니다. 3분의 2정도는 가운데를 갈라서 두 쪽으로 나누고 3분의 1은 가르지 않고 그대로 두어 자루가 되게 하는데 자루를 오른손에 쥐고 갈라진 부분을 왼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냅니다. 죽비도 언제부터 사용됐는지는 불분명합니다만 중국에서 선종(禪宗)이 발흥하면서 널리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짐작되어 집니다.
일반적인 죽비와 달리 선방에서 참선 수행 도중 조는 사람을 깨우는 용도로 사용하는 1.5m~2m 정도 되는 큰 죽비도 있는데, 이를 장군죽비라고 부릅니다. 죽비 또한 목탁과 같이 우리의 게으름을 경계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이니 비록 대나무 토막일지언정 그 행하는 바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베푸는 스승과 다름없다고 하겠습니다.
Q 요령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흔드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A 요령(搖鈴)은 사찰에서 주요한 의식을 진행할 때 사용하는 법구로 이름을 그대로 풀면 흔드는 방울이란 뜻인데 사용할 때 흔들어서 방울소리를 내므로 그와 같은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주로 목탁과 같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의식진행에 있어 목탁이 보조적인 역할을 하고 요령이 중심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령을 잡고 집전하는 스님을 의식을 주도하는 스님이라는 의미로 ‘법주(法主)’라고 부르고, 목탁을 치는 스님을 돕는 스님이라는 의미로 ‘바라지’라고 합니다. 요령은 목탁이나 죽비가 나무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쇠로 만들어지는 데 손잡이가 달린 작은 종 모양으로 만듭니다. 일설에 의하면 거지가 구걸을 ‘동냥한다’는 말이 이 요령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옛날 스님들이 요령을 흔들며 걸어가면서 탁발을 구하던 것을 ‘동령’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이 변해서 동냥이 되었다고 하니 요령이 우리 생활과 그리 멀리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 의식진행에 있어 목탁이 보조적인 역할을 하고 요령이 중심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령을 잡고 집전하는 스님을 의식을 주도하는 스님이라는 의미로 ‘법주(法主)’라고 부르고, 목탁을 치는 스님을 돕는 스님이라는 의미로 ‘바라지’라고 합니다. 요령은 목탁이나 죽비가 나무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쇠로 만들어지는 데 손잡이가 달린 작은 종 모양으로 만듭니다. 일설에 의하면 거지가 구걸을 ‘동냥한다’는 말이 이 요령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옛날 스님들이 요령을 흔들며 걸어가면서 탁발을 구하던 것을 ‘동령’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이 변해서 동냥이 되었다고 하니 요령이 우리 생활과 그리 멀리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Q 바라는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치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A 바라는 인도에서 유래한 악기로 고대 이집트나 바빌로니아 등 중동지방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던 악기로 우리나라에는 불교와 함께 전해졌다고 합니다. 바라를 치는 이유는 악귀를 물리치고 도량을 청정하게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라는 두개의 얇고 둥근 놋쇠 판으로 만드는데 판 중앙의 불룩하게 솟은 부분에 구멍을 뚫고 끈을 꿰어 그것을 양손에 하나씩 잡고 서로 부딪쳐서 소리를 냅니다. 다른 법구와 달리 바라는 우리나라의 전통악기로도 사용되고 있는데 궁중음악에도 사용되었고, 군대 음악인 ‘대취타’에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악기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불교 고유의식인 ‘범패의식’이 행해질 때 바라를 들고 춤을 추기도 하는데 이를 바라춤이라고 합니다. 바라춤을 비롯해 나비춤, 승무, 법고춤 등이 모두 범패의식에서 연희되는 작법무(作法舞)입니다.
이 춤을 보고 감동한 조지훈선생의 시 ‘승무’가 유명하지요.
이 춤을 보고 감동한 조지훈선생의 시 ‘승무’가 유명하지요.
* Templestay vol.20 p98~p99 에서 발췌한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