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로움도 버리고 행복도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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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리수 작성일14-05-04 19:57 조회7,69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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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로움도 버리고 행복도 버리고

 

[범망경]에서 '아트만[참나]이 있네 없네를 다 초월하라' 한 거예요.

이것 때문에 윤회하기 때문에 이걸 초월하면 궁극이 있다라고 경에

이야기 하셨어요. 그러니까 궁극을 아트만이라 하든 않든 궁극이 있는데

그 궁극이 될려면 아트만이 있다와 아트만이 없다를

둘 다 불어서 꺼야 된다.

 

아트만이 있다거나 없다라는 견해는 왜 생기냐면

'개체, 오온, 색수상행식, 나'라고 하는 것에 집착하니까,

나라는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내가 펼치는 경의 대표인 [범망경]의

내용이 뭐냐 첫번째가 나온 게 내가 온 이유는

기존의 종교랑 다르다 이런 얘기예요.

기존의 종교는 '있네, 없네'에서 끝나고 '행복'에서 끝나지만,

기존의 종교는 이 세상과 천상 중에 천상만 가는,

행복과 괴로움 중에 행복만 추구하는 것이거든요.

 

부처님의 종교는 행복인데 부처님의 행복은

이 세계의 행복과 괴로움을 소멸한 행복입니다.

이 세계의 행복은 괴로움과 오락가락하는

행복이기 때문에 천상도 초월한 것이다.

그러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궁극이 있다..

그러면 천상도 있다면서요? 있죠! 과정에.

뭐, 그러면 천상도 좋은데 굳이 부처님께서 여기(초월, 해탈)까지

얘기하셨나 싶으면 단순히 천상 안쪽이 있어서 그쪽으로 되자

이 말씀만이 아니라 이게 전제가 되면 아까 여러 얘기가 나왔잖아요.

행복이 최고인줄 알았는데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그게 뭔지 모르지만 끝내주겠구나! 엄청나구나! 이런 생각 안 드십니까?

아까 이 세계를 초월하여서 파생되는 얘기들이 많아요.

단순히 우리들은 행복이 전부인 줄 알거든요.

부처님께서 그건 불가능하다는 얘기예요.

이 세계에서 행복의 퍼센트가 더 커질 수는 있어요.

그러나 느낌으로 갖는 행복은 괴로운 느낌이 반드시 있기 때문에

(100% 완전한 행복은) 불가능하다.

(행복과 괴로움) 둘 다를 초월하면 끝내주지 않겠냐!

이런 모든 파생되는 말씀들이 궁극만이 아니라

과정에서 우리가 빨리 넘어갈 수 있는 (말씀인 겁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들으면 단순히 결론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 중에서도 변형을 시켜버려요.

아까 괴로움을 버리고 행복쪽으로만 가는 건 마치

직선적인 사고관이예요. 그런데 둘 다를 초월해라

이 사고관은 직선이니, 면이니 이렇게 얘기할 수가 없어요.

차원을 초월해 버리는 거거든요.

물론 여전히 과정은 악에서 선으로 가고 선도 초월해라.

여전히 과정은 괴로움에서 행복으로 가고 사선쯤 되니까

행복도 버리고.. 과정은 물론 그렇습니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행복을 버린다는 건 있을 수 없죠!

- 금강경20 - 연기의 이해와 존재의 변형(2014.04.27) 중에서

 

[BTN법문 순일스님 법문 '초기경전으로 바라본 금강경']

http://www.btn.co.kr/pro/Program_contents.asp?ls_StSbCode=CATPR_01&PID=P789

 

[BTN법문 순일스님 법문 '행복으로 가는 여정' 다시보기]

http://www.btn.co.kr/pro/Program_contents.asp?ls_StSbCode=CATPR_01&PID=P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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