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 인간성의 상실과 자아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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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7-02 16:00 조회6,979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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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나 지금이나 우리 인간들은 언제나 불만투성이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무엇인가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변화했어도 그러한 불만과 괴로움들은 그칠 날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 날과 지금의 사회를 비교해 봅시다. 얼마나 세상이 달라졌습니까? 그리고 편리해졌습니까? 밥 한 끼 지어 먹으려 해도 물 길어 와서 쌀 씻어 매운 연기 마셔가며 불을 때야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 세대에만 해도 시골에서는 한 겨울에 얼음 깨고 그 물에 빨래한다고 손을 호호 불던 것이 불과 몇 십 년 전의 일입니다. 이제는 스위치만 누르면 밥도 되고 빨래도 되며 식기까지 씻어줍니다. 김치냉장고가 있어 남정네들이 땀 흘리며 땅 파고 김칫독 묻을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입는 것도 이제는 풍족해 졌습니다. 옛날처럼 옷을 기워 입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제는 옷도 유행이 지나고 입기 싫어 버리지 낡고 헤어져서 못 입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천리타향 서울 길도 고속철이 생겨 어지간한 곳도 두어 시간이면 편안하게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웬만한 가정에서는 자가용이 다 한 대씩 있습니다. 물론 이제는 자동차가 너무 많아져서 도리어 시간이 지체되기도 하지만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라고도 합니다. 이제는 방안에 앉아서도 텔레비전을 보거나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온 세계 소식을 다 알 수 있습니다.
옛날에 비하면 구석구석 모든 면에서 편리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제는 더 이상 편리한 기구들이 없어도 되겠다 싶은데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새 기술이 개발되고 새로운 기계가 발명됩니다. 정보화시대라고 하면서 인터넷에 온갖 정보가 다 올라옵니다. 기술이나 제도가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이라 이제는 따라가기에도 급급합니다.
의식주 전반에 걸친 것 뿐 아니라 여가 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이제는 컴퓨터도 웬만한 가정이라면 다 한 대씩은 갖추고 있으며 휴대폰도 없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활이 과연 과거보다 윤택해졌느냐하면 그렇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그 반대입니다. 그러한 편리한 재화를 얻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 거기에 따라 스트레스는 더욱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 인간을 편하게 만들려고 고안된 여러 가지 문명의 이기들이 도리어 우리를 번거롭게 하고 있습니다.
자동차만 하더라도 편리함이 있는 반면에 교통사고로 수많은 사람들이 불구가 되거나 죽습니다. 어느 집안 치고 한 사람 정도는 교통사고로 다치거나 죽지 않은 집이 없습니다. 또 자동차에서 나오는 매연도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플라스틱이나 고무와 같은 석유화학 제품도 극심한 환경오염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컴퓨터가 편리하다고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컴퓨터가 생기고 나서부터 사람들이 더 바빠지고 고립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예를 들자면 끝이 없습니다. 주위를 한 번 관찰해 보십시오. 온갖 편리한 기기들로 편해져야 할 세상이 더 바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 때문에 인간성은 메마르고 세상은 점점 더 삭막해져 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뭔가 이상한 것 같지 않습니까?
이러한 물질문명의 발전, 과학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더 편리해져야 할 생활이 더 바쁘고 더 삭막해져 간다는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과학과 기술을 운용하는 주체가 되어야 할 우리 인간들이 도리어 과학문명의 종속물이 되어 허덕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 새로운 시스템이 개발될 때마다 사람들은 더 바빠집니다. 거기에 따라 인간의 값어치도 과거에 비해 형편없이 되어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때로는 기계보다도 대접을 못 받는 것이 현대의 우리 인간들입니다.
또한 현대사회는 물질적인 것에만 매달리다 보니 인격은 제쳐두고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격 도야라든가 인간성의 확립 같은 것은 하찮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물질에 눈이 먼 인간들은 현대사회에서 스스로를 고립시켜 ‘인간소외’라는 말을 낳고 있습니다. 소외된 인간은 자살을 감행하거나 온갖 퇴폐적인 증세를 보이며 스스로의 인격을 포기함으로써 생명경시라고 하는 심각한 사태를 가져왔습니다. 모두가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현상들이 복합되어 지금 인류는 파멸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구를 수 백 번 깨뜨리고도 남을 핵폭탄과 온갖 재앙을 몰고 오는 환경오염, 빈부간의 격차 등은 앞으로 인류를 더 큰 고통으로 몰고 갈 것입니다.
이제 우리 인류가 더욱 필요로 하고 시급한 것은 과학발전, 물질문명의 발전이 아닙니다. 과학과 기술문명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지금껏 잘 보아왔습니다. 제도나 시스템도 그렇습니다. 좀 더 잘 살아보자고 봉건주의를 타파하고 자본주의라는 것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도 빈부 격차라는 폐단이 생기니까 거기에 따른 반동으로서 공산주의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또 한쪽에서는 공산주의에 대항하고자 민주주의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세기 동안 민주, 공산 양대 진영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 속에서 애꿎은 민중들만 희생되어 왔습니다.
이제 공산주의가 거의 소멸해버린 지금에 와서도 인류의 진정한 행복은 찾아온 것 같지 않습니다. 풍족한 곳은 풍족한 대로, 못 사는 곳은 못 사는 대로 갈등과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지구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민주주의를 하던 공산주의를 하던 우리의 마음이 탐욕과 분노로 차 있는 한은 어떠한 제도도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불교에서는 우리의 마음 가운데에서 욕심과 성냄, 어리석음, 즉 탐(貪)?진(瞋)?치(癡)를 우리에게 괴로움을 가져다주는 가장 나쁜 세 가지라고 하여 삼독(三毒)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욕심과 성냄, 어리석음의 탐?진?치에 오염된 우리의 마음이 먼저 정화되지 않고는 어떠한 세간적인 노력도 결국은 우리를 더 불행하게 만들 것입니다. 내 마음이 만족을 모르고 미움으로 가득 차 있다면 과학과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금전과 재화가 쌓여 있더라도 그러한 것들이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런 것들은 그저 일시적인 만족감 밖에는 가져다주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를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욕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욕심을 내는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만족을 모르는데 아무리 바깥에서 행복을 추구한다고 해도 그것이 찾아지겠습니까?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더해지는 소금물처럼 욕심만 더하게 할 뿐입니다.
사회복지가 가장 잘되어 있다는 북유럽 국가들의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겁니까? 그들이 물질적인 것이 부족해서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풍족한 생활 가운데에서도 만족을 모르기 때문에 마음이 공허한 것입니다.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허전한 것입니다.
물질 위주, 과학 위주로만 치닫는 지금의 시대야말로 우리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밖으로만 행복을 추구하던 시선을 돌려 나 자신 안에서 행복의 근원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하루 속히 상실된 생명의 존엄을 회복하고 인간의 주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모든 중생이 함께 번영하며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그 길을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백만 대군을 물리치는 것보다 자기 마음 하나 다스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이 만족을 모르면 아무리 많은 것을 쌓아 놓고 있어도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중요하다고 해서 불교에서는 결코 마음만을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물질적인 요소도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의식주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잘 갖추어지지 않으면 큰 고통이 따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불교에서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최소한의 생활여건을 갖추는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에 대한 우리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변혁의 소용돌이 가운데에서 진정한 자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삶의 의의는 무엇인지, 목적도 보람도 없이 표류하면서 하루하루를 본능적인 물질추구에 몰두하고 있는 현대인들을 위하여 불교는 궁극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부처님께서는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잃어버린 자아를 찾음으로써 바르게 잘 살 수 있는 길을 부처님께서는 일러주고 계십니다.
- 이 글은 중앙교육원 교육원장 화령 정사 (정심사 주교)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