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 부처님의 밭갈이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11-24 16:26 조회6,355회

본문

 부처님께서 마가다의 에카사라라는 마을에 계실 때였습니다. 그 마을은 어떤 바라문의 소유였는데 마침 곡식을 심을 때라 바라문은 마을 사람들을 지휘하면서 곡식 심을 준비를 하느라 바빴습니다. 그 날 아침에 부처님께서는 탁발을 하려고 그 집 앞에 멈추어 섰습니다. 마침 그 바라문은 마을의 일꾼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고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탁발을 위해 서 계시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문이여, 나는 스스로 밭을 갈고 씨를 뿌려 양식을 얻고 있소. 당신도 스스로 밭을 갈고 씨를 뿌려 양식을 얻는 것이 어떻겠소?”
  아마 이 바라문은 부처님께서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이 탁발하면서 놀고먹는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려 양식을 얻소.”
  그 말을 들은 바라문은 뜻밖의 말씀에 의아해 하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나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당신이 밭을 갈고 씨를 뿌려 양식을 얻는 것을 보지 못했소. 도대체 당신의 쟁기는 어디 있소? 소는 어디에 있으며 당신은 무슨 씨를 뿌린다는 것이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게송으로 대답하셨습니다.


  믿음은 나의 씨앗이오, 지혜는 나의 쟁기이며,
  신구의의 악업을 제어하는 것은 잡초를 제거하는 것이다.
  정진은 내가 부리는 소로서 나아가 물러서지 않으며,
  행한 일은 슬퍼하지 않으며 나를 편안한 마음으로 데려 간다.
  나는 이와 같이 밭을 갈고 이와 같이 씨를 뿌려
  감로의 열매를 거둔다.


  바라문은 그 뜻을 이해하고 부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뛰어난 농부이십니다. 부처님께서 밭을 갈고 씨를 뿌리시는 것은 불사(不死)의 열매를 거두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부처님, 이 음식을 받아주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그 바라문은 부처님께 음식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 음식을 물리치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게송을 설하고 음식을 얻지는 않는다. 바라문이여, 그와 같은 일은 지견(知見)이 있는 사람이 하는 짓이 아니다, 바라문이여, 깨달은 사람은 게송을 읊은 대가를 받아서는 안 된다, 바라문이여, 깨달은 사람은 오직 진리 가운데에 사는 것이며 그것이 각자(覺者)의 생활이다.
  바라문이여, 그러므로 온갖 번뇌에 얽혀 후회가 따르는 행동을 하지 말고 성자에 대해서 진정한 마음으로 음식을 공양하는 것이 좋으리라. 이와 같이 음식을 공양하면 공덕을 원하는 사람의 복전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말씀을 듣고 그 바라문은 부처님께 귀의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불교의 수행자로서의 자세에 대한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것은 밭을 갈고 씨를 뿌려 양식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불교는 인간의 황폐한 마음을 갈아 거기에 지혜의 씨를 뿌리고 정진으로서 번뇌의 잡초를 제거하여 마음의 양식을 마련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의 수행자는 놀고먹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자는 인간의 지혜를 계발하여 진정으로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수행자의 농사이며 양식을 얻는 방법입니다. 농부는 농부대로, 수행자는 수행자대로 각자의 역할이 틀리기 때문에 농사짓는 방법 또한 다른 것입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게송을 설한 대가로 음식을 받을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수행자는 대가를 바라고 법을 설해서는 안 됩니다. 탐·진·치에 가려 눈을 못 뜬 자를 위하여 오직 자비로써 지혜의 말씀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가로서 올리는 음식은 받지 않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결국은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사랑의 마음으로 가르침을 전하는 것과 돈을 벌기 위해 누구를 가르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대가성의 공양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성자를 공양하는 것은 공양하는 사람의 복전이 된다고 했습니다. 남방불교에서는 공양하는 사람이 도리어 공양을 받는 사람에게 감사하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공양을 받아주셔서 나로 하여금 복을 짓게 해 주시니 고맙다는 뜻이지요. 그렇습니다. 공양하는 사람도 이러한 마음으로 공양을 해야 그것이 참된 공양입니다. 보시를 통하여 나의 욕심을 버리고 삼보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마음으로 해야지 보시한 것에 이자가 붙어서 더 많이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고 보시를 해서는 공덕이 없습니다. 그런 보시를 해놓고는 애꿎은 부처님만 탓하다가 퇴전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도 진실한 마음으로 공양을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런 밭갈이의 비유를 통해서 수행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를 이루겠다는 믿음, 삼보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은 뿌릴 씨앗을 가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지혜가 없으면 밭을 갈 쟁기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넓은 들판을 호미 들고 갈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제풀에 지치기가 쉽습니다. 지혜를 가꾸지 못하고 우둔하고 미련하게 토굴 파고 들어앉아 있어봐야 시간만 낭비할 따름입니다. 그러다가 지치니까 막행막식을 하기도 합니다. 회의와 허무에 빠져서 그런 것이지요. 이런 것은 다 지혜의 쟁기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출가한 사람들이 처음에는 바짝 열을 내서 하다가도 얼마 못 가 퇴전하는 것이 그래서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신?구?의의 악업을 제어하지 않으면 마음의 밭에 잡초가 무성해집니다. 번뇌가 많아진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정진이라는 것도 빠뜨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정진은 소라고 비유했듯이 정진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이 모든 것을 갖추고 불교의 수행자는 마음의 밭을 가는 것입니다.


-이 글은 중앙교육원 교육원장 화령 정사 (정심사 주교)의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