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 스스로 다짐하는 육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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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6-05 16:11 조회5,76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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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는 재가신자들에게 육재일(六齋日)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재일이라는 것은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근신하는 것입니다. 그런 날을 한 달에 6번 가지기 때문에 육재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날은 재가신자들도 하루 종일 출가자에 가까운 생활을 했습니다.

 
  재가신자들에게는 출가승들처럼 단체의 규율인 율이라는 것이 없었으므로 오계(五戒)를 주었습니다. 불살생계(不殺生戒), 불투도계(不偸盜戒), 불망어계(不妄語戒), 불사음계(不邪淫戒), 불음주계(不飮酒戒)가 이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 계는 재가신자라며 누구나 지켜야 하는 계이지만, 물론 이것은 강제적인 것은 아닙니다. 계라는 것은 원래 자발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으로서 신자가 자발적으로 이것을 지킬 것을 맹세하면 됩니다. 육재일이 되면 재가신자는 오계에 삼계를 더한 팔계(八戒)를 지켰는데 불사음계는 불음계(不淫戒)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생활도 육재일에는 금했던 것입니다. 이 날에는 승단에 음식도 공양하고 비구들의 설법을 듣기도 하면서 평소보다 훨씬 경건하게 지냈던 것입니다.


  이 날에 출가자가 지켜야 할 계법을 팔재계(八齋戒)라고 하는데 여덟 가지의 계를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사미의 십계와 거의 같은 내용입니다. 사미는 나이가 차서 정식 비구가 되기 전의 어린 출가승을 말하는 것으로 ?불살생계 ?불투도계 ?불음계 ?불망어계 ?불음주계 ?불비시식계(不非時食戒;때가 아닌 때에 먹는 것을 금하는 것) ?불가무관청계(不歌舞觀聽戒;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금하는 것), ?불도식향만계(不塗飾香蔓戒;향을 바르거나 치장하는 것을 금하는 것), ?불와고광대상계(不臥高廣大牀戒;좋은 침상에 눕는 것을 금하는 것) ?불축금은보계(不畜金銀寶戒;금은이나 보배를 축적하지 않는 것) 등의 열 가지 계를 지켜야 합니다. 팔재계는 이 가운데에서 불축금은보계를 제외한 9가지에 불가무관청계와 불도식향만계를 합하여 한 가지로 하면 여덟 가지가 됩니다. 재가자로서 재화를 축적하는 불축금은보계는 근본적으로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제외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재가자로서 한 달에 6일은 출가자와 마찬가지의 계를 지켜 사치를 떠나고 금욕의 생활을 하는 것을 팔재계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제도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상당히 귀감이 되는 것으로서 오늘날에도 이런 것이 부활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절에 나가지 않는 분이라도 한 달에 며칠 동안은 스스로 계행을 지키면서 탐진치에 찌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마음을 추스리고 정돈한 다음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사회생활을 한다면 지혜로운 생각들이 훨씬 더 많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자기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을 내팽개쳐두고 이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직장 다니는 분은 직장을 다니면서 장사를 하는 분은 장사를 하면서 집에서 가사를 돌보는 주부는 주부대로 한 달 가운데 어느 기간 동안만이라도 육식을 하지 않고 사치를 금하며 금욕하는 기간을 가져 본다면 정신 건강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상당히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며칠 전에 제 주위에 젊은 분이 과로로 돌연사를 했습니다.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인데 이 불경기에 다행히 사업이 확장되어 돈도 잘 벌고 아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나날이 발전하는 회사를 보면서 무척 신이 났던가 봅니다. 좀 쉬었다 하라는 주위의 만류도 뿌리치고 밤늦게까지 너무 열심히 일하다가 그만 과로로 명을 달리 했습니다. 살려고 죽을 짓을 했던 것이지요. 옆에서 지켜보기에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아이들은 셋이나 되고 한창 돈이 들어 갈 중등학생들인데 부인은 별다른 재주도 없고 갑자기 살길이 막막해 진 것이지요. 사업체 벌여놓았다가 거두게 되면 빚만 남게 됩니다. 돌아가신 그 젊은 분은 가족을 위한다는 것이 도리어 가족을 힘들게 만드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젊은 분을 보면서 이 팔재계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한 달에 단 며칠이라도 조용히 명상하면서 한 숨 돌리고 자신을 추스리면서 일을 했다면 머리도 한결 맑았을 뿐 아니라 건강도 오히려 잘 유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바쁘게 바쁘게만 설치지만 그것이 서둘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바쁜 중에서도 간간히 자신을 둘러보는 것이 좋습니다.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득히 먼 곳에 있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늘 자기의 마음에 대해 살피면서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선정이나 계행을 통해서 돌아보고 추스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에서도 한결 능률을 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건강도 돌볼 수 있게 됩니다. 살려고 발버둥 치다가 도리어 건강을 해치고 목숨을 잃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남아있는 가족도 생각을 해주어야지요. 인명은 재천이라고는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관리여하에 따라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건강하게 살 수 있고 또 수명도 늘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탐진치로 부글부글 끓다 보면 머리가 뜨뜻해지고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가 하면 초조하고 안달을 합니다. 이런 것이 다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됩니다. 그러니 한 달에 며칠만이라도 기간을 정해 놓고 하루에 몇 십분이라도 선정을 하면서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이 삶을 더욱 알차게 보낼 수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에는 담배도 끊어보고 술도 마시지 않고 고기도 먹지 말고 오락장에도 가지 말고 그렇게 지내보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지혜도 일어나고 자신의 몸도 이상이 있는 곳이 점검이 됩니다. 한 달에 며칠이 어렵다면 단 하루라도 그렇게 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좀 익숙해지면 한 달에 이틀이나 사흘, 혹은 그 이상으로 날짜를 늘려가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스스로 육재일을 정해서 실천해 보는 것이지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선 이런 쉬운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십시오.  보시는 탐욕을 없애고 지계는 어리석음에서 멀어지게 한다고 했습니다. 타 종교의 사람들도 일정 기간 동안 기도를 하면서 자신을 살피는 기간을 가진다고 들었습니다. 안식일 같은 것도 그러한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불교도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기도나 염불 등을 통하여 자신을 살피도록 해야 하는데 바깥의 것을 구하는데 마음을 너무 빼앗기는 것 같습니다. 현실적인 온갖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절에 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가 절에 가는 것은 부처님 앞에서 내 소원을 비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자신의 탐진치에 찌들은 모습을 부처님을 거울삼아 비추어보고 오라고 한 것인데 그 앞에서 자신의 욕심만 수도 없이 늘어놓습니다. 그런 식의 불교라면 원시인들이 돌이나 나무, 혹은 달 보고 소원을 비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우리 불교도들은 이 점을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누가 뭐래도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우리의 마음을 잘 살펴서 괴로움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데 있습니다. 육재일과 같은 전통을 오늘날에도 되살려 스스로 실천해 보는 것도 불교를 실천하는 첫걸음이 되는 것입니다. 불교의 실천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당장 내일 부터라도 사치와 허영을 절제하고 검소한 생활을 해 보십시오. 남자라면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것부터 절제하면서 일상생활의 사소한 나쁜 버릇을 고치는 것부터라도 실천해 보십시오. 그만큼 성불하는 것입니다.


- 이 글은 중앙교육원 교육원장 화령 정사 (정심사 주교)의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