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 부강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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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4-10 16:43 조회5,908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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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나라가 많이 어렵습니다. 그동안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이 나라를 진정으로 부강하게 하려고 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급급해서 정책을 펴다보니 나라의 체질이 허약해져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한 부작용들은 경제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와 우리 국민들은 원칙을 지키고 근본을 다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나라를 바르게 이끄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가르침을 남기셨습니다. 그 가운데에 하나가 밧지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인도에서 가장 세력이 큰 나라는 마가다와 코살라였습니다. 특히 부처님의 만년에 이들 두 나라는 서로 세력을 넓히기 위하여 주변의 부족 국가들을 정복하고 통합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언젠가 마가다의 아사세(阿?世;Aj?tasattu)왕이 밧지국을 쳐들어가려고 했을 때 먼저 우샤라는 신하를 부처님께 보내어 밧지국을 치기 위한 조언을 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밧지국에 머무시면서 그 나라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신 것을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밧지국 사람들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일곱 가지 법을 지킨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일곱 가지 법은 이러한 것입니다.
첫째, 밧지국 사람들은 자주 모임을 가지고 바른 일을 서로 의논하여 모두 실행한다.
둘째, 밧지국 사람들은 왕과 신하가,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화목하고 공경한다.
셋째, 밧지국 사람들은 법을 받들어 삼가야 할 것을 알고 예의를 어기지 않는다.
넷째, 밧지국 사람들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과 어른을 공경하여 순종한다.
다섯째, 그 나라의 부녀자들이 정숙하고 진실하며 웃고 농담할 때라도 그 말이 음란하지 않다.
여섯째, 밧지국 사람들은 수행하는 사람을 공경하고 계행이 청정한 이를 존경하여 보호하고 공양하기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일곱째, 그 나라의 백성들은 종묘에 제사지내고 조상을 섬긴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일곱 가지를 설명하시고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나라는 윗사람과 아랫사람, 어른과 젊은이가 서로 화목하고 갈수록 흥할 것이며 이러한 나라는 언제나 안온하여 누구의 침략도 받지 않을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이 일곱 가지 법을 실행하면 어떤 적이라도 그 나라를 위태롭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우샤는 부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밧지국 사람들이 이 일곱 가지 중에서 하나만 행할지라도 치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일곱 가지를 다 지킨다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샤가 아사세왕에게 돌아가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자 아사세왕은 밧지국을 침략하는 일을 그만 두었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밧지국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도 많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나라가 부강해지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 나라 국민들이 바른 생각을 가지고 화합하면 어떠한 적도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화합하지 못하면 스스로 붕괴되고 맙니다. 그래서 저는 걱정이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밧지국 사람들의 경우와는 정 반대인 것 같습니다. 우선 밧지국 사람들은 자주 모임을 가지고 정의에 대해 의논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국회는 당파 싸움만 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고집 때문에 아예 모이는 것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 일에 대해 의논할 기회도 가지지 못합니다. 수억 원의 세비를 꼬박꼬박 챙겨가면서도 서로 싸움질이나 하고 있으니 저 사람들이 정말 국민을 위하는 사람들인가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어렵게 살아가는 서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세력 싸움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 괜찮겠지 하고 뽑아 놓은 사람들이 저 모양이니 이 나라의 장래가 참으로 걱정됩니다.
밧지국 사람들은 윗사람과 아랫사람들이 서로 화목하고 공경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위아래도 없습니다. 나쁜 일 하는 데나 아래 위가 패거리를 지어서 화목할까 그 이외에는 서로가 서로를 헐뜯기 바쁩니다. 개혁이다 수구다 하면서 화목은커녕 서로 의견이 다르면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립니다. 좌다 우다 하면서 서로에게 삿대질을 합니다. 때로는 세대차를 내세우면서 늙은 퇴물과 철없는 어린 것들로 서로를 매도합니다.
밧지국 사람들은 법을 잘 지키고 예의가 바르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법은 약한 사람들에게만 호되게 적용되고 권력 있고 돈 있는 사람들에게는 솜방망이 같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법 무서운 줄을 모릅니다. 법을 적용하여 벌하려면 재수 없어 법에 걸렸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분명한 범법행위를 저질렀는데도 자기는 희생양이라느니 자기가 대신해서 십자가를 짊어졌다느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법을 어겨 벌을 받았던 사람도 어느 날 권력을 잡고는 큰 소리를 칩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법을 우습게 아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법이 이렇게 물렁물렁하고 법 알기를 우습게 아는 사회가 어떻게 바르게 성장하겠습니까? 이러한 풍조는 어느 특정한 부류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법을 어기는 것을 보고도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또 그런 사람을 나라의 일꾼으로 뽑아주기도 합니다. 그래놓고는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우리 국민 한 사람 한사람이 법을 존중하고 또 법을 어기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그에 걸 맞는 응징이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용서는 용서 받는 사람이나 용서 하는 사람에게 다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승단의 계율을 어기는 사람을 무조건 용서하고 눈감아 주었다면 승단이 유지되었겠습니까? 사회와 국가가 바로 서려면 우선 법 적용이 올발라야 하며 공평해야 합니다. 권력 있고 돈 있다고 법이 제대로 적용되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썩은 사회입니다. 지금의 우리 나라가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온 세계를 바르게 다스리는 전륜성왕의 길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법에 의하여 법답게 백성을 다스리라. 그리고 임금이라도 그 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
또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바른 법으로 다스리되 편견과 독단에 빠지지 말고 나라 안에 법답지 못한 행동이 없게 하라.”
그렇습니다. 법에 의하여 나라가 다스려져야 하며 어느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도록 법이 만들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법은 무엇보다도 공평하게 적용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법이 아무래도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법에 관련되어 법을 적용하는 사람들은 법조문에 의거하여 제대로 적용하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권력이 있거나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법이 너무 무르게 적용되는 것 같아 서운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법이 제대로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국민들 각자가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또 밧지국 사람들은 예의가 바르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을 공경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예의가 상실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예의의 차원을 벗어나서 거의 패륜적인 행위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버림받고 스승이 제자에게 두들겨 맞는 일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재산 상속을 노리고 존속살해라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이게 인간의 할 짓입니까? 짐승도 제 어미를 죽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인데 인간이 그러고 있습니다. 그런 것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예의의 부재로 인하여 매일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본 예의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사회는 점점 각박해져 가고 있습니다. 국민 소득 몇 만 불, 경제 성장 몇 프로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인간의 삶이 양적인 것으로만 해결된다면야 그래도 간단하겠지만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꼭 돈과 경제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의가 실종된 각박한 사회에서 소득이 더 늘어봐야 그만큼 더 고달프게 되어 있습니다. 비록 가난하게 살아도 예의와 인정이 넘치는 사회가 잘 사는 사회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면에 눈 돌리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참 이상한 일입니다. 참된 국력을 기르는 것은 예의와 충효가 바로 선 사회라고 생각됩니다. 예의와 인정이 사라진 각박한 사회에서 그까짓 국민소득 몇 만 불 되어봐야 삶의 질이 더 나아질게 뭐가 있겠습니까?
나라가 바로 서려면 가정에서의 기본적인 예절 교육부터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부녀자들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가정에서 자녀들과 접촉할 시간이 많은 사람은 아버지보다도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의 마음가짐과 정신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 아이들은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어머니가 정숙하고 부모를 잘 모시고 예의바르며 검소하고 부지런하면 아이들은 자연히 어머니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밧지국의 부녀들은 아마 그랬나 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밧지국의 여인의 태도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던 것입니다. 그 나라의 여성들이 어떠한가는 바로 국력과 직결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을 바르고 튼튼하게 키우는 것은 대부분이 어머니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상을 섬기고 받들지 않는 민족은 미래가 없습니다. 자기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고 지금의 자기를 있게 해준 조상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자기가 몸담고 있는 나라에 대한 애정이 없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아마 부처님께서는 밧지국 사람들이 종묘에 제사지내고 조상을 받들기 때문에 그 나라가 부강하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조상을 섬기고 전통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너무나 미약합니다. 우선 서구에서 온 종교의 영향으로 부모 제사를 받들지 않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부모에게 제사 지내는 것은 돌아가신 조상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살아있는 자손들에게도 조상의 은혜를 일깨워 주며 서로가 화목하게 지냄으로써 지금의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의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하여 내 팽개치는 것은 참으로 부모와 조상의 은혜를 모르는 일입니다. 조상의 은혜를 모르다 보니 나라와 국토에 대한 애정도 없어집니다. 오죽하면 젊은이들의 대다수가 기회만 된다면 다른 나라에 가서 살고 싶으며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는 태어나지 않겠다고 하겠습니까? 나라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국토를 무분별하게 훼손하기도 합니다. 자기 살을 깎아 먹는 줄도 모르고 우선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에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놓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가 어떻게 제대로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밧지국 사람들의 경우를 들어 말씀하신 것에 비추어 보면 우리나라는 참 걱정됩니다. 지금 시대에는 침략이라는 것이 꼭 총칼 들고 쳐들어와야 침략이 아닙니다. 외국의 투기 자본이 무분별하게 들어와서 우리 경제를 잠식하는 것도 침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국의 저속한 문화가 우리의 정신을 황폐화시키는 것도 일종의 침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위의 여러 나라들에게 계속 시달리면서도 큰 소리 한번 못치고 눈치만 보아야 하는 것도 침략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런 상황입니다.
나라가 이렇게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 불자들의 역할이 큽니다. 부처님의 이런 말씀들을 잘 새겨듣고 나 자신부터 달라져야 할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바른 정신을 심어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어려운 교리가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교훈으로 삼아야 할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말씀 하나하나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 곧 불교입니다. 꼭 선방에 앉아서 가부좌만 하고 있다고 해서 도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삶 가운데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는 것이 곧 도를 이루는 길입니다. 자기의 깨달음이 사회와 연관되지 못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 아무리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도 사회와 관련을 짓지 못하고 자기 혼자만의 법열(法悅)에 도취해 있다면 나무나 돌보다도 못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도 성도를 하시고 입멸에 들려고 하시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어 대중들을 상대로 설법을 하기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 불자들이라도 앞장서 원칙을 지키고 근본을 다져가는 참된 국민으로 거듭나도록 서원하고 정진합시다.
- 이 글은 중앙교육원 교육원장 화령 정사 (정심사 주교)의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