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향기] 정명-바른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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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7-09 13:57 조회5,587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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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불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바르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우선 바르다는 정의부터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자기는 바르게 생활한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그것이 이상하게 비칠 수도 있습니다. 불교에서도 출가자로서의 바른 생활과 재가자로서의 바른 생활은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바른 생활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할까요?
여기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는 팔정도의 正命(정명)으로써 바른 생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의 명(命)이라는 말은 생활을 가리킵니다. 일상생활에서 바른 말과 바른 행위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더하여 바른 생활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잡아함경》에서는 바른 생활에 대해서 세속의 바른 생활과 세속을 벗어난 지혜로운 자의 바른 생활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바른 생활인가? 바른 생활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속의 바른 생활로 번뇌와 집착이 있으나 선취로 향하게 한다. 다른 하나는 세속을 벗어난 지혜로운 자의 바른 생활로 번뇌와 집착이 없고 괴로움을 바르게 다하여 괴로움의 소멸로 향하게 한다.
그리고 이어서 세속의 바른 생활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번뇌와 집착이 있으나 선취로 향하게 하는 세속의 바른 생활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정당하게 음식, 의복, 침구, 탕약을 구하는 것을 일러 세속의 바른 생활이라고 한다.
세속에서의 생활에서 번뇌와 집착을 완전히 버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른 생활을 함으로써 완전한 깨달음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선취에 태어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선취는 인간계와 천계를 말하는데, 이것은 꼭 죽어야만 가는 세계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우리의 삶이 결정되기 때문에, 우리가 바른 행위에 의하여 선업을 쌓으면 당연히 좋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을 선취에 태어난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음식, 의복, 침구, 탕약을 정당하게 구하는 것이 세속의 바른 생활이라고 했습니다. 음식, 의복, 침구, 탕약 등은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쉽게 말하면 의식주와 건강을 지키기 위한 약인데, 인간이 생활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나쁜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당하게 구하는 것이 바른 생활이라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자급자족도 하고 물물교환에 의하여 이러한 것을 구했습니다만 요즘은 이러한 것을 모두 돈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을 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도 정당한 방법에 의해서 벌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기를 친다거나, 도박이나 매춘을 업으로 삼는다거나, 살생을 하는 것으로 생활의 방편을 삼는다면, 이것은 바른 생활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불량식품을 만든다거나 주류나 환각제 등을 파는 것도 잘못된 생활방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끊임없이 거짓말을 해야 하는 직업을 택한다거나, 아니면 한경오염과 자연훼손을 함으로써 돈을 버는 것 등도 모두 올바른 생활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바른 생활은 생계수단으로서의 직업을 택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지만 정어와 정업을 제외하고 이루어지는 일상생활에서의 모든 바른 행위를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입으로 짓는 죄인 망어, 기어, 양설, 악구와 몸으로 짓는 죄인 살생, 투도, 사음을 하지 않는 것 이외에도 일상생활에서 바르게 해야 할 행위는 많습니다. 꼭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 침해를 가하는 공공연한 나쁜 행위가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서의 나쁜 습관을 버리는 것도 바른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규칙적이고 예의에 어긋나지 않으며 절도 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 다 바른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유흥가와 환락가를 기웃거리지 않고, 술과 담배 등 중독성 물질을 입에 대지 않으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자신의 건강을 위하여 노력하며, 청결을 유지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 등이 다 정명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예의 바르고 친절하며, 공공의 이익을 생각하여 공공 기물을 아끼고, 자연을 사랑하며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행위 등이 모두 세속인으로서의 바른 생활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정명은 한 마디로 정당한 생활방편을 가지고 살아가되 잘못된 생활습관을 버리고 합리적이고 건전하게 사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면 번뇌와 집착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더라도 선취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천상 세계의 즐거움도 누릴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은 탐욕과 집착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얻어질 수 있습니다. 바른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바른 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릇된 길이 자기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집착합니다. 술 좋아하는 사람을 예로 들어 봅시다. 다른 면에서는 다 괜찮은데 나쁜 술버릇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주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도박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자기가 가진 돈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즐겁게 살 수 있고 좋은 일도 많이 할 수 있을 텐데 도박에 빠져 패가망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조금만 더 주의를 하고 규칙적이고 절도 있는 생활을 하면 장래가 보장되는 데도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술을 즐기고 오락에 빠져 자신의 앞날을 망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바른 생활을 하지 않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명의 반대는 사명(邪命)입니다. 바르지 못한 생활이라는 뜻입니다. 경전에서는 출가자의 사명에 대해 네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이것을 사사명(四邪命) 혹은 사사식(四邪食)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는 하구식(下口食)이 있습니다. 이것은 밭을 갈거나 탕약을 만드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활 하는 것을 말합니다. 출가자들이 이러한 것으로 생활하는 것은 출가의 본의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사명으로서 금했던 것입니다.
다음은 앙구식(仰口食)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별을 보고 점을 치거나 하늘의 변화를 보고 점을 치는 것 등을 말합니다.
세 번째로 방구식(方口食)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방으로 심부름을 해 주면서 생활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출가한 사람들은 나라의 사신으로 가는 것도 금했습니다.
다음으로 잡구식(雜口食)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길흉화복을 점쳐 주는 것으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즉, 운명을 점쳐 주는 것으로 생활하는 것을 말합니다. 스님들 중에는 사주나 운세를 점쳐주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것은 모두 잡구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출가자로서는 바른 생활태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출가자로서의 바른 생활태도가 아니기 때문에 사명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생활의 수단이 아니라 어리석은 중생들을 바른 길로 이끌기 위한 방편으로서 이러한 기술들을 이용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경전에서는 또 세속을 벗어난 지혜로운 자의 바른 생활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번뇌와 집착이 없고 괴로움을 바르게 다하여 괴로움의 소멸로 향하게 하는 세속을 벗어난 지혜로운 자의 바른 생활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불제자가 고성제를 있는 그대로 사유하고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를 있는 그대로 사유하여, 모든 바르지 않는 생활에 대해 번뇌를 버리고 즐기거나 집착하지 않으며, 그러한 태도를 지니고 범하지 않으며, 때를 어기지 않고 한계를 넘지 않는 것을 지혜로운 자의 바른 행위라 한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세속을 떠난 지혜로운 자는 먼저 사성제에 대해 바르게 사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불교의 실천에는 항상 사성제가 기본이 됩니다. 우리의 삶이 괴로움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을 알며 괴로움을 벗어난 열반을 생각하고 열반에 이르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사성제인데, 이것에 대해 바르게 사유하는 것이 없다면 어떠한 행위를 하던 거기에서 맴돌 뿐입니다.
괴로움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못하면 그것을 벗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삶이 좋다고 생각되어 그냥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똥을 싫어하지만 똥파리나 구더기는 똥이 좋아서 그것을 떠나지 못하고 마냥 그것을 파먹고 살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고에 대한 자각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지금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집착하고 그것에 대해 탐욕을 부리고 자기의 것을 침해한다 싶으면 화를 내고 합니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벗어날 생각조차도 하지 않습니다. 바로 옆에 좋은 길이 나 있는데도 그리로 갈 생각은 않고 가시 덤불길을 헤치면서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깨달은 사람, 지혜 있는 사람이 보면 얼마나 한심하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자비의 마음으로 우리에게 열반이라는 세계가 있다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의 세속을 떠난 바른 생활은 이 사성제에 대해 바르게 사유하고 실천하는 것이 가장 으뜸이 됩니다. 그리고 바르지 못한 생활에 대해 번뇌를 버립니다. 거기에 연연하고 집착을 해서는 그 세계를 떠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른 생활은 시절을 어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항상 이 순간이 중요한 것이며 지금 당장이 중요한 것이지 나중에 잘하겠다고 하는 것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어 이렇게 하지만 나중에 잘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기기만에 불과합니다. 그 때 가면 또 그 때대로 핑계가 생깁니다. 잘못된 것은 지금 당장 고치고 바른 것은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도입니다. 그래서 때를 어기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또 바른 생활에 있어서 한계를 넘지 말라고 한 것은 항상 중도의 입장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은 해야 한다든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도 또 하나의 집착입니다. 지혜 있는 자의 바른 생활은 이러한 것도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명은 계?정?혜의 삼학에서 볼 때 정어, 정업과 함께 계에 속하는 부분입니다. 정명 또한 정견과 정사유의 바탕 위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바른 견해와 바른 생각이 없는 한 바른 생활을 한다는 것은 사상누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중앙교육원 교육원장 화령 정사 (정심사 주교)의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