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 바른 말이란 무엇인가?--정어(正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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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6-25 10:02 조회6,64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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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우리 인간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입니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기준도 말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으며 인류가 문화를 발전시켜 온 것도 말의 덕분입니다. 인간들은 동물들과 달리 말을 통하여 사랑을 확인하고 사랑을 더 키워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때로는 엄청난 비극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나쁜 독재자의 명령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경우와 같은 것입니다. 이런 거창한 예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말에 의하여 웃고 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항상 말을 적게 하고 말을 조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팔정도에서도 우리가 열반에 이르는 수행 덕목 중의 하나로서 바른 말을 꼽고 있습니다. 그것이 정어입니다. 정어(正語)는 팔정도의 세 번째 덕목으로서 정견과 정사유를 바탕으로 바른 언어적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잡아함경》에서는 바른 말에 대해서 세속적 바른 말과 세속을 떠난 지혜로운 자의 바른 말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바른 말인가? 바른 말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속의 바른 말로 번뇌와 집착이 있으나 선취로 향하게 한다. 다른 하나는 세속을 벗어난 지혜로운 자의 바른 말로 번뇌와 집착이 없고 괴로움을 바르게 다하여 괴로움의 소멸로 향하게 한다.


그리고 이어서 세속의 바른 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번뇌와 집착이 있으나 선취로 향하게 하는 세속의 바른 말이란 어떤 것인가? 거짓말, 이간질하는 말, 나쁜 말, 꾸며서 하는 말을 떠난 말을 일러 세속의 바른 말이라 한다.


경전에서는 이처럼 망어(妄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기어(綺語)의 네 가지의 말을 떠난 것을 세속의 바른 말, 즉, 정어라고 하고 있습니다. 세속인들의 말은 대부분이 거짓말인 망어, 이간질하는 양설, 욕설 등과 같은 악구, 꾸며서 말하는 기어 등입니다.


이처럼 중생 세계의 언어행위라는 것은 대부분 이 네 가지에 걸쳐져 있기 때문에 이것을 떠난 말을 정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정어가 아닌 것은 다 망어이거나 기어, 아니면 양설, 악구 그 어느 하나에 속한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절에서 ‘망어중죄 금일참회, 기어중죄 금일참회....’ 하면서 살생, 투도, 사음, 망어, 기어, 양설, 악구, 진심, 치심, 탐심 등의 열 가지 죄악을 참회하는 십악참회(十惡懺悔)를 할 때에는 망어, 기어, 양설, 악구의 순서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이 순서에 따라서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먼저 망어라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때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온통 거짓말만 나돌아 다니는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진실만 말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그렇지를 못해서 온갖 불신이 쌓입니다.


거짓말에는 일상생활의 자질구레한 것에서부터 온 국민의 안전과 행복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거짓말도 있습니다. 육이오 때 어느 장관이 전쟁이 일어날 위험은 조금치도 없으며 전쟁이 나도 끄떡없을 것이라고 수많은 사람들을 속여 놓고는 막상 전쟁이 터지자 한강 다리를 끊어버리고 자기네들만 살겠다고 도망 가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러다가 나중에는 피난 못간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많은 사람이 애꿎게 죽기도 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그동안 하두 속아봐서 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발표해도 반대로 해석하는 경향까지 생겼습니다. 외국에는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하면 정치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어떻게 된 일인지 거짓말을 잘해야 성공한 정치인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듭니다. 신문에 나오는 만화를 보니까 어떤 어린애가 거짓말을 잘하니까 너 정치가가 되면 성공하겠다고 하면서 풍자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남의 지도자가 되는 사람들부터 거짓말을 밥 먹듯 해대니 힘없는 백성들은 누구의 말을 듣고 발 제대로 뻗고 자야할 지를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온통 거짓말투성이다 보니 진실을 말하는 사람조차도 애꿎게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워낙 거짓말에 자주 당해봐서 누가 친절하게 말을 걸거나 안내를 해주면 도리어 의심을 합니다. ‘이 사람 이거 나한테 사기 치려고 이렇게 친절하게 구는 것 아니야’, 혹은 ‘나한테 뭔가 뜯어먹으려고 이러는 것 같은데’ 하면서 쓸데없는 의심을 하기도 합니다. 거짓말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렇게 불신이 팽배한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제는 누가 말해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의 거짓말이 우리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거짓말이 이젠 우리 스스로를 이렇게 묶어버린 것입니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는 게 거짓말의 속성입니다. 그냥 있는 대로 툭 털어 내어 놓고 말하면 될 것을 거짓말로 둘러대다 보면 나중에는 자꾸 거짓말이 늘어나 자신도 수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의 마음은 늘 불안하고 편치 않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거짓말로 자신을 숨기다가 자백을 하고 나니 오히려 속이 더 후련해졌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정법염처경》에서는 거짓말에 대해 이렇게 설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은 불 중에 가장 큰 불이요,
독 중에 가장 독한 독이요,
악도에 이르는 계단이며, 나와 남을 불태우고 독에 죽으니
불과 독을 버리듯 거짓말을 버려라.
감로수와 독약은 입안에 있으니 진실한 말은 감로수요, 거짓말은 독약이라.
감로수는 버려두고 독약을 가져다 자기도 멸망하고 남마저 해치네.


이와 같이 거짓말은 남에게도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우선 자기 자신부터 괴롭게 만듭니다. 그러니 거짓말을 왜 합니까? 그냥 있는 대로 솔직히 말하면 될 것을 거짓말을 함으로써 오랫동안을 괴롭게 살아야 합니다. 도성제는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이고 팔정도는 괴로움을 소멸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덕목입니다. 정어 또한 괴로움을 소멸하기 위한 실천 덕목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기 이전에 먼저 스스로를 괴롭히는 거짓말을 버리고 바른 말을 하게 되면 괴로움이 없게 됩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모르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괴로움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고 거짓말을 떠나 바른 말을 하는 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기어라는 것은 꾸며서 하는 말입니다. 이것 또한 진실대로 말하지 않는 다는 의미에서는 거짓말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아첨하는 말 등과 같은 것이 기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삶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헛된 논의라든가 대중을 현혹하는 요설(饒舌) 등이 다 기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점쟁이들의 꾸며서 하는 말이나 사기꾼들의 바람 잡는 말 등이 다 기어에 속합니다.


기어도 온갖 분란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남에게 아부하고 아첨하는 말로써 그 사람의 바른 판단을 가리고 자기의 이익을 취하려고 하기 때문에 남의 미움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요설로써 대중을 선동하여 분란을 일으킴으로서 구업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기어의 반대는 진실만을 말하는 실어(實語)입니다.


그리고 이간질하고 남을 모략, 중상하는 것을 양설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인간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혹은 질투심에서 서로를 이간시키거나 없는 말을 만들어 내어 비방해서 파멸로 이끄는 것이 양설입니다. 항상 대중의 화합을 생각하고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도록 해야지 이간질로써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불신과 반목으로 몰아가는 것은 큰 죄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쪽저쪽 다른 말을 해서 공연히 분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서로 싸우는 것을 보면서 즐기기도 합니다.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 늘 이 양설이라는 것이 발단이 됩니다. ‘누가 너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을 하더라.’ ‘누가 이런 저런 말을 하던데 너가 그랬다더라.’ 어쩌고 하면서 싸움이 붙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내가 언제 그랬느냐, 너가 그랬지 않느냐 하면서 싸움이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가장 좋기로는 본인이 직접 들은 말이 아니면 믿지 않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서로 만나서 대화를 해보면 금방 오해가 풀릴 것을 중간에 엉뚱한 사람이 들어서서 말을 잘못 전달하는 바람에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남의 흉을 하는 말은 아예 안 듣는 것이 좋습니다. 들어도 귀를 씻어버리는 것이 좋고요. 사람들은 대체로 남의 흉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말을 할 때도 혹시나 본의 아니게 양설을 하는 것은 아닌가 조심을 해야겠습니다.


악구는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욕설 등의 천한 말, 거친 말을 쓰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 사회에서는 이 악구 때문에도 많은 싸움이 일어납니다. 부드러운 말로 해도 될 것을 언성을 높여서 욕하고 천한 말을 써서 싸우기도 하는데, 사람들이 싸움을 할 때 처음에는 주로 말로 싸우게 됩니다. 그러다가 감정이 격해지면 큰 소리도 지르고 욕도 하다가 나중에는 주먹다짐으로까지 발전합니다. 얼마나 추한 모습입니까?


요즘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된 셈인지 욕하는 것을 아주 보통으로 생각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문학이나 영화 등에서도 거침없이 욕을 쏟아 붓습니다. 욕이 필요하지 않은 부분에서도 욕을 집어넣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정신수준이 황폐하게 되었다는 말도 됩니다. 어른들 사회가 그렇다보니 어린이들까지도 또래끼리 놀면서 그게 욕인지도 모르고 거침없이 천한 말을 씁니다. 가끔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면 정치지도자들까지도 몸싸움을 하면서 욕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한테 나라 살림을 맡겨 놨으니 뭐가 되겠습니까? 하기는 우리 사회 전체가 이런 분위기이니 그런 사람을 뽑은 우리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악구의 반대는 애어(愛語)입니다.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말씨를 쓰는 것이 애어입니다. 애어를 씀으로써 사회가 좀 더 순화되고 인간관계가 더 부드러워질 것입니다.


이처럼 망어, 기어, 양설, 악구의 네 가지 말을 떠난 말을 정어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속에서 이 네 가지 말만 피하더라도 많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선취로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잡아함경》에 보면 구업에 대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나면 입안에 도끼가 생겨 도리어 자기 몸을 베니 이는 나쁜 말을 하는 탓이라. 비방해야 할 것을 도리어 칭찬하고 칭찬해야 할 것을 도리어 비방하니 구업으로 인하여 죽으면 악도에 떨어지리라.


이처럼 말이라는 것은 입안의 도끼와 같아 늘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도자나 남을 이끄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특히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입안의 도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견과 정사유가 바탕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비방할 것은 칭찬하고 칭찬할 것은 비방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바르게 보고 바르게 말하는 사람들이 적어지면 사회는 그만큼 혼란스럽고 불신으로 팽배하게 됩니다.


인간의 행위를 보면 속에서 먹은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입과 몸을 통해서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먹고 있어도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언어와 행동에 의해서 뿐이라는 의미입니다. 나쁜 행동은 금방 표가 나기 때문에 심하면 세간의 법률의 저촉을 받습니다. 폭행이나 도둑질 등이 그런 예입니다. 그러나 언어는 남을 비난하는 경우 너무 심하면 명예훼손죄 같은 것에 저촉되기는 하지만 세간의 법으로 일일이 구속하기에는 무리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고 해서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일일이 입증할 수도 없는 일이고 누가 이간질을 한다고 해서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해 볼 수도 없습니다. 욕을 하는 것도 상대방의 기분만 상하게 할 뿐 그것을 가지고 적절히 제재를 가하기가 어렵습니다. 무척 화가 나면 같이 욕을 해주거나 욕하는 입을 한 대 때려주는 정도 밖에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언어라는 것은 중요하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활을 좋게 할 수도 나쁘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과 가장 큰 구별이 되는 것은 언어활동이 있다는 것이고 언어가 있음으로 해서 사회생활이 비로소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다. 언어라는 것은 인간의 생활을 매우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반면에, 언어 때문에 인간의 온갖 괴로움이 시작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 말을 써야 합니다. 정직하고 화합을 도모하며 진실을 전달하고 남을 기쁘게 하는 말을 쓴다는 것은 곧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언어가 어떤 방식으로 구사되고 어떻게 활용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성격이 규정될 수 있습니다.


하나 분명한 것은 인간사회가 각박하면 할수록 언어가 진실성을 잃고 거칠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습니다. 옛날에는 누가 욕 한마디만 해도 그런 사람을 못 배우고 교양 없고 천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서는 욕쯤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짓말하는 사람은 사기꾼이던지 아주 행실이 나쁜 사람으로 여겨 사회에서 완전히 신용을 잃고 발을 붙이지 못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풍토가 변해졌습니다. 너무 뻔뻔하게 전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도 큰 소리를 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언어의 위력이라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법관이 “사형”이라고 말을 하면 그대로 시행이 됩니다. 대장이 “공격”하고 명령을 내리면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고 죽기도 합니다. 때로는 훌륭한 사람의 말 한마디가 사람의 일생을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언어의 위력은 정말 대단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 어떻게 이 언어활동이라는 것을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밀교에서는 삼밀행(三密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과 언어활동과 행위를 컨트롤하기 위한 수행법입니다. 즉, 생각으로는 불보살이나 밀교의 특유한 상징을 관하고, 손으로는 결인을 맺어 나쁜 행위를 제어합니다. 그리고 입으로는 진언을 염송하거나 다라니를 외우는데 이것은 인간의 언어활동을 순화하여 구업을 소멸하고 정신적인 차원을 높이려는 의미가 있습니다. 거짓말하고 이간질하며 꾸민 말과 거친 말을 쓰는 입으로 신성한 진언과 다라니를 외우게 함으로써, 적어도 그 순간만은 구업을 짓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반복되면 입으로 짓게 되는 여러 가지 업장, 즉 구업이 소멸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속인으로서의 정어는 이러한 수행을 통하여서도 순화될 수 있지만 네 가지 바르지 못한 말을 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더욱 적극적인 언어활동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을 올바르게 지도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정보를 전해주며 조직과 단체를 화합시키고 다른 사람을 칭찬하여 용기를 북돋아 주거나 격려를 하는 것도 정어의 실천이 될 수 있을 것이고, 품위 있고 부드러우며 남을 기쁘게 하는 말을 씀으로써 인간관계를 더욱 따뜻하게 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도 정어를 통하여 좋은 업을 짓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법구경》에서도 정어에 대해 이렇게 설하고 있습니다.


고운 말에 힘쓰고 나쁜 말 말며 말하였거든 그 과보를 두려워하라.
나쁘게 말한 것은 화로써 오니 칼날이 자기 몸에 들어오리라.
언제나 착한 말을 하는 사람은 먼데서 들려오는 종소리처럼

칭송하는 명성이 널리 퍼져서 세상을 안락하게 보낼 것이다.
항상 입을 지키고 조심하여서 원한으로 악한 말하지 말라.
지자는 악한 말 않음으로써 두려움을 없애고 선을 지킨다.
한 것을 안 했다 망어 하는 자, 스스로 지옥으로 향하여 가네.
착한 말과 온화한 말을 하는 자, 열반을 알고 있는 성직자이다.



이와 같이 망어, 기어, 양설, 악구의 나쁜 말을 하게 되면 먼저 자기 자신부터 해치게 됩니다. 그리고 바르고 착한 말을 하는 사람은 항상 사람들이 칭송하고 그 사람을 신뢰하게 됨으로써 두려움 없는 삶을 살게 되고 결국에는 열반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대지도론》에서는 ‘진실한 말을 하는 사람은 보시와 지계와 학문과 다문에 의하지 않고도 오직 진실한 말만 닦아도 한량없는 복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진실하고 바른 말을 한다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망어, 기어, 양설, 악구의 나쁜 말을 떠난 것이 정어라고 했습니다. 정어는 곧 진실한 말입니다. 인간생활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인 언어에 대한 각성을 팔정도의 정어로써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정어는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가 바탕이 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정어에 대한 것은 선취로 향하게 하는 세속의 정어입니다. 그러면 세속을 벗어난 지혜로운 자의 바른 말이란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번뇌와 집착이 없고 괴로움을 바르게 다하여 괴로움의 소멸로 향하게 하는 세속을 벗어난 지혜로운 자의 바른 말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불제자가 고성제를 있는 그대로 사유하고,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를 있는 그대로 사유하여, 바르지 않는 생활을 버리고, 입의 네 가지 악행과 입의 나머지 악행들을 생각하여 그것들을 여의고, 번뇌를 없애 집착하지 않는 것으로, 그러한 태도를 지니고 범하지 않으며 때를 어기지 않고 한계를 넘지 않는 것을 지혜로운 자의 바른 말이라 한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바른 말의 전제조건으로서는 사성제의 도리를 바르게 생각하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성제를 생각하여 바르지 않은 생활을 버리고 입으로 짓는 네 가지의 악행과 나머지 구업을 여의어 번뇌를 떠나고 집착을 떠나라고 하고 있습니다.


속세를 떠난 지혜로운 자의 정어는 망어, 기어, 양설, 악구의 네 가지 바르지 못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일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바르지 못한 생활을 버리라는 것은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생활이 바르지 못하면서 바른 말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재가인의 경우에는 생활이 경제적인 것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정직하게만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장사를 한다면 물건의 장점을 부각시켜야 되니까 과장이 없을 수가 없을 것이고 그러면 기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다 팔리고 남은 게 하나밖에 없다든지, 밑지고 판다는 말도 해야 하니까 망어를 하는 것이 됩니다. 저쪽 가게는 이러이러한데 우리 가게는 이러이러하다고 하면서 비교를 해야 하니까 양설을 하는 것이 됩니다. 또 그러다가 손님이 물건을 헤집어 놓거나 시간만 빼앗고는 사지 않고 가면 때로는 화가 나서 거친 말도 하게 되니 악구를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재가인들은 아무래도 구업을 짓기가 쉽습니다. 출가인은 당연히 바르지 못한 재가인과 같은 생활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바른 말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속을 벗어난 지혜로운 자의 말이란 것은 늘 진실을 말하고 진리를 말하며 자비롭고 부드러운 말로 세속인을 교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경전에서 말하는 세속을 벗어난 지혜로운 자의 말이란 것은 이와 같은 출가자의 정어를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어는 세속인이든 출가인이든 항상 실천해야 할 열반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덕목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가장 빈번히 돌아봐야 할 덕목입니다.

- 이 글은 중앙교육원 교육원장 화령 정사 (정심사 주교)의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