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 그릇된 종교의 해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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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12-05 13:59 조회6,198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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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대부분이 자기가 무척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대부분이 고등교육을 받았고 또 일반적인 상식이나 지식이 과거와 달리 대중에게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든 사회 현상에 대해서 알만큼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입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대부분의 지식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은 누구든지 컴퓨터에 들어가 검색어만 치면 자기가 알고 싶은 것을 거의 다 알아낼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던 정보가 인터넷이나 매스컴의 발달로 순식간에 온 세계에 퍼집니다. 대중매체의 발달로 사회전반의 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안목도 넓어졌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치 문제에 대해서 한 마디씩 하는 것 들어보십시오. 누구나 다 한 소리들 합니다. 다 국회로 내보내도 손색없을 정도로 정치에 대해 일가견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정작 정치판을 들여다보면 그와는 정반대인 것 같습니다. 어떤 통계에서도 나왔듯이 우리의 정치 수준은 후진국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축구 경기 관전할 때도 보십시오. 다 감독이고 다 코치이고 해설가입니다. TV로 워낙 많이 보고 들은 소리가 있어 그렇게 아는 체를 하는 것입니다. 정보화 시대에는 그만큼 보편적인 지식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각자가 다 나름대로의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즘 사람들은 스스로 현대화되고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의 생각은 미개하고 터무니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합니다. 정신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옛 사람들보다 한참 뒤떨어져 있는데도 말입니다. 무엇이든 분석해 보고 통계를 내어 보고 과학적 실험을 거치면서 스스로 똑똑하다고 믿는 현대인들이 특히 정신적인 면이라든가 종교적인 면에서는 왜 그렇게 어리석은지 모르겠습니다. 이 넓은 우주를 두고도 지구 중심의 천지창조설을 믿지를 않나, 종말론에 빠져 황당한 짓을 하지 않나, 주위를 살펴보면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예전 죽은 모 신흥종교의 교주 아래 한 때에는 이렇다 하는 교수를 비롯한 여러 유명 인사들도 참여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구세주로서 그 사람을 떠받들었다고 합니다. 결국 감옥에서 생을 마친 그 사교 교주가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소리를 지껄이는데도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그런 사교에 홀리는 것을 보면, 이런 면에 있어서는 시대의 고금을 가리지 않고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찮은 물건 하나 사면서도 여기 저기 다니면서 비교해 본다든가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비교해 보면서 법석을 떨지만 정작 자기의 인생을 결정할 종교의 선택에 있어서는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조금만 논리적으로 생각을 더 해 보면 자기가 선택한 종교의 허구성을 간파할 수 있을 텐데도 그냥 무작정 ‘믿습니다’만 외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 인간에게는 애초부터 미신적인 본능이 있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뭐 이런 거창한 종교문제를 얘기하지 않더라도 주위를 둘러보면 크고 작은 어리석은 믿음들이 존재합니다. 흔히 말하는 징크스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운동 시합할 때 빨간 양말을 신고 가니 잘 되더라, 파란 양말 신으면 꼭 지더라, 아침에 고양이를 봤더니 뭐가 어쩌더라, 어느 호텔에서 선을 보면 성사가 잘 되고 어느 예식장에서 결혼하면 아들을 잘 낳더라, 어떤 숫자는 좋고 어떤 숫자는 재수가 없더라 등등, 전혀 터무니없고 불합리한 일임에도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첨단 기술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인데도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선거철이나 불경기가 되면 점집은 또 얼마나 호황입니까? 나라를 다스리고 사회를 이끌어갈 지도자들이 그 모양이니 일반 사람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온갖 미신이 난무합니다.
흔한 예로, 돼지머리 모셔 놓고 고사 지내는 것 보십시오. 얼마 전 TV에서 영화 제작하는 사람들이 출연진들과 함께 돼지 머리 놓고 고사지내는 걸 본적이 있습니다. 돼지 입이다 콧구멍에 만 원짜리 지폐며 수표를 꽂아놓고 절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표정이 얼마나 진지한지 정말 놀랐습니다. 글쎄요, 축생에 불과한 돼지가 절 받아먹고 얼마나 효험을 보여주었는지 모르겠군요. 따지고 보면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미신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과학적이다, 합리적이다 하면서도 이런 어리석은 믿음을 가지고 요행수를 바라는 것이 우리 인간들입니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는 현대인이 정작 자기들이 살아가는 기둥으로서의 종교나 철학에 대해서는 너무나 불합리하고 미신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신적 수준의 저하로 인간성이 고갈되고 인격이 형편없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확실한 주체 의식도 없이 물질의 노예가 되어 그저 벌레처럼 본능에 몸을 맡기고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인간소외다, 군중 속의 고독이다 어쩌고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런 것들은 모두 인간 스스로 초래한 것입니다. 물질적인 풍요는 누린다고 하나 정작 그것을 유용하게 누려야 할 정신이 황폐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인식도 뚜렷하지 않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목적도 없이 그저 순간순간의 쾌락에 몸을 내던집니다. 말초적인 자극에만 민감하게 반응할 뿐 인생 전체를 여유 있게 분명히 관조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가 필요하고 철학과 사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종교나 철학, 사상이 우리를 구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교와 같은 올바른 종교와 철학 사상이라야 인생의 원래의 의미를 되살필 수 있고 우리가 나아가는 목적이 무엇인지, 인생살이의 의의를 정확하게 일깨워주고 또 거기에 따른 실천방안을 제시해 줄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른 종교나 철학, 사상도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과 똑 같은 주장을 한 것이 많습니다. 모두가 겉으로는 자기들의 종교나 사상이 인간을 구제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 세계로 눈을 돌려보십시오. 종교가 원인이 되어 죽고 죽이는 살육을 되풀이하고 있는 곳이 얼마나 많습니까? 옛날 중세유럽의 암흑시대나 십자군 전쟁, 이슬람교도들의 불교 유적 파괴 등은 역사적으로도 남아 있는 종교 갈등의 증거이지만, 이러한 현상은 지금 이 시대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비극입니다. 종교의 이런 부정적 영향 때문에 종교를 아편이라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또 사상 면에서 보더라도 지난 세기 동안에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싸움이 얼마나 처절했습니까? 우리나라도 그 틈바구니에서 지금까지도 그러한 사상논쟁의 희생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나 사상, 철학을 선택하여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으려 할 때는 무엇보다도 신중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관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 철학이나 사상은 너무 거창하고 어려워 우리가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일면이 있지만 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타종교에서는 너무나 적극적으로 그리고 손쉽게 사람들을 포섭합니다. 자기들의 종교를 믿으면 온갖 현실적 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여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그러나 순진한 사람들이 이런 잘못된 종교를 접하여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결국은 가족을 해치고 이웃을 해치고 나라를 해치기도 합니다. 그릇된 종교에 빠져 다니던 직장도 버리고 가족, 친지까지 끌어들여 일가족이 몰살하거나 빨리 천국에 가려고 집단 자살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고 있지 않습니까? 종교를 통해서 행복을 추구하려던 것이 처참한 비극을 몰고 오는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릇된 종교의 가장 큰 해악은 자신을 망칠 뿐만 아니라 이웃에게도 그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르지 못한 종교와 신앙은 올바른 판단을 마비시키고 이웃에 해악을 범해도 그것이 자신의 믿음을 위하여 정당하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지금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갈등만 보더라도 이런 현상을 극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끝없이 일어나고 있는 테러와 거기에 대한 보복은 언제 끝이 날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른바 성전(聖戰)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을 무참히 살해하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한 일을 하고도 도리어 자기들이 믿는 신에게 충성한 것으로 자부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신앙은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기 때문에 그러한 종교를 믿는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에게까지도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해악을 끼치게 됩니다.
이렇게 본다면 종교라고 해서 어떻게 다 같은 종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정말 무식한 사람의 말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불교를 좀 안다는 사람들 중에도 종교는 궁극적으로 다 같은 것이라고 쉽사리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어느 단계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남의 물건 훔치지 마라. 그러면 벌 받는다.”, “거짓말하지 마라. 그러면 지옥 간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정도를 상대하는 것이라면 뭐 이 정도의 도덕률을 가지고 종교라고 내세울 수도 있겠지요. 꼭 종교라는 이름을 가지지 않더라도 이러한 정도의 도덕률은 우리나라에도 예로부터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을 성찰하고 우주의 생멸변화 하는 이치를 깊이 사유해 보면 단순한 도덕률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저 “믿습니다! 믿습니다!”만 외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란 것입니다. 막무가내 믿는다고 해서 인생의 고뇌가 쉽사리 해결될 것도 아니지만, 설혹 해결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일시적인 자기 최면에 지나지 않습니다. 종교를 아편에 비유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자기 문제도 진정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종교가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고 세상을 살릴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바른 종교를 통해서 바른 인생관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웃과 사회, 더 나아가서는 전 인류를 위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중앙교육원 교육원장 화령 정사 (정심사 주교)의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