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향기] 정정진 - 올바른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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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7-15 09:13 조회6,117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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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의 모든 항목이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정진이 없이는 어느 것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팔정도 뿐만 아니라 세간의 어떤 일이든지 마음먹은 대로 성취하고자 한다면 꾸준한 정진이 있어야 합니다. 학문을 하거나 예술을 하거나 아니면 돈을 버는 일에도 꾸준한 정진이 없으면 자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팔정도에서도 정진을 들고 있습니다. 팔정도의 정진은 특히 정정진(正精進)이라고 합니다. 그냥 정진이 아니라 바른 정진이라는 것입니다. 바른 정진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팔정도에서 말하는 정정진은 정진을 하되 끊임없이 선을 지향하면서 바르게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올바른 노력과 선을 지향하는 용기는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념, 정정 등의 팔정도의 실천을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른 노력이라는 것은 팔정도의 실천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하든지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노력과 용기가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경전에서는 정정진에 대해서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사정근(四正勤)’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의 ‘근’이란 노력이라는 뜻입니다. ‘사정근’을 ‘사정단(四正斷)’ 혹은 ‘사의단(四意斷)’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바른 노력을 네 가지로 나누어 고찰한 것입니다. 즉 선과 악에 대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노력인가를 나타낸 것입니다.
우리의 이상이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을 선이라고 하고 반대로 장애가 되는 것을 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상과 목적은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괴로움을 벗어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선이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서 비구들에게 사정단에 대해 설명하신 것이 《잡아함경》에 실려 있습니다.
사정단은 어떤 것인가? 하나는 단단(斷斷)이요, 둘은 율의단(律儀斷)이요, 셋은 수호단(隨護斷)이요, 넷은 수단(修斷)이다.
단단이란 어떤 것인가? 이미 생긴 악한 것은 끊어지도록 욕심을 내고 방편을 쓰며 부지런히 힘쓰고 마음을 지키는 것이요, 아직 생기지 않은 악한 것은 생기지 않도록 욕심을 내고 방편을 쓰며 부지런히 힘쓰고 마음을 지키는 것이요, 아직 생기지 않은 착한 것은 생겨나도록 욕심을 내고 방편을 쓰며 부지런히 힘쓰고 마음을 지키는 것이요, 이미 생긴 착한 것은 더욱 불어나도록 욕심을 내고 방편을 쓰며 부지런히 힘쓰고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
율의단이란 어떤 것인가? 눈을 잘 보호하여 감추고 조복하며 좋은 데로 향하게 하는 것이요,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 마음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수호단이란 어떤 것인가? 갖가지 진실한 삼매의 모습, 즉 청어상(靑瘀相), 창상(脹相), 농상(膿相), 괴상(壞相), 식부정상(食不淨相)을 닦고 지키며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수단이란 어떤 것인가? 사념처를 닦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사정단은 출가자를 위주로 설하신 것입니다. 사정단 가운데에서 우선 단단에 대해 살펴보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미 일어난 악은 이것을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셋째,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은 일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넷째, 이미 일어난 선은 이것을 자라나게 하고 잘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불교를 통하여 우리의 이상과 목표인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이것 이외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악을 억제하고 선을 조장하는 것이 곧 단단의 내용인데, 바른 노력이라는 것은 곧 이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악업은 점점 적게 짓게 되고 선업은 쌓여서 마침내 열반에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눈, 귀, 코, 혀, 몸, 마음의 육근을 잘 제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수호단에 의하여 우리 몸의 더러움을 관하여 탐욕과 집착을 벗어나려는 것입니다.
수호단이라는 것은 시체를 관하여 몸에 대한 애착을 벗어나려는 수행법입니다. 시체가 썩어서 문드러지는 모습을 하나하나 관조함으로써 우리의 몸이 얼마나 허무하고 덧없는 것인가를 관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우리의 육신이 부정하다고 관하는 신념처(身念處), 우리가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사실은 괴로움이라고 관하는 수념처(受念處), 마음은 늘 생멸 변화하는 것이라고 관하는 의념처(意念處), 모든 존재와 현상은 실체가 없다고 관하는 법념처(法念處) 등의 사념처(四念處)를 닦음으로써 모든 집착과 탐욕을 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악을 방지하고 선을 조장하는 것은 종교적 실천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윤리도덕의 실천에 있어서도 이러한 태도는 반드시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정치나 경제 등 사회생활의 전반에 걸쳐서도 악을 소멸하고 선을 조장하는 것은 절대 필요합니다. 악을 제거하고 선을 조장하는 바른 노력이 있다면 개인의 향상이나 사회의 발전도 점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한 개인의 건강 문제에 대해서 말하더라도 이미 발생한 병은 고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병을 낫게 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 병이 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지 않도록 예방주사도 맞고 약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현재 몸이 약하다면 몸이 건강해 질 수 있도록 몸을 돌보고 규칙적인 운동을 해서 튼튼한 체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현재 건강한 상태에 있더라도 더욱 건강해질 수 있도록 과로를 피하고 나쁜 습관을 멀리하고 운동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바른 노력에 대해서도 경전에서는 세속적인 것과 세속을 떠난 지혜로운 자의 것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바른 노력인가? 바른 노력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속의 바른 노력으로 번뇌와 집착이 있으나 선취로 향하게 한다. 다른 하나는 세속을 벗어난 지혜로운 자의 바른 노력으로 번뇌와 집착이 없고 괴로움을 바르게 다하여 괴로움의 소멸로 향하게 한다.
그리고 이어서 세속의 바른 행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번뇌와 집착이 있으나 선취로 향하게 하는 세속의 바른 노력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의욕과 정진과 방편이 뛰어나고 흔들리지 않으며, 정진을 하되 심법으로 섭수하여 항상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을 일러 세속의 바른 정진이라고 한다.
세속을 벗어난 지혜로운 자의 정진은 우리가 상상도 못할 차원의 정진이겠지만 세속을 떠나지 못하는 일반 불자들의 정진이라는 것은 경전에서도 말씀해 놓으신 것처럼 비록 번뇌와 집착은 있으나 선취, 즉 좋은 곳으로 향하게 하는 노력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을 꾸준히 하다 보면 세속을 초월한 지혜로움도 갖추게 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에는 먼저 그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노력과 적절한 수단이 있어야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가 하는 노력에 대해 회의를 가지고 중도에 포기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고 견고하게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처음에는 용기를 내어 도전했다가 이내 지쳐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초지일관으로 노력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결과를 얻습니다. 그리고 노력 정진을 하되 항상 마음을 놓지 말고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력한다는 것은 처음에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몸에 붙게 되면 자연스럽게 노력이 이루어집니다. 공부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책 잡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또 지루한 일이지만 점차 하다보면 거기에 재미를 붙이고 빠져들게 됩니다. 나중에는 책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어디를 가든 책을 놓고 다니면 불안해 지기까지 합니다. 다른 모든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거기에 재미가 나고 노력하는 것이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이 됩니다.
그리고 정진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로 바야마(v?y?ma)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용기라는 뜻도 있습니다. 바르다고 믿는 것은 용기를 가지고 매진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달려간다는 뜻입니다. 정진한다는 것은 이러한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나쁜 것을 알면 그것을 단호하게 끊어버리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면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실행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용기가 없이 우물쭈물 하고 있으면 나쁜 일도 끊지 못하고 좋은 일도 착수할 수가 없습니다. 정진이라는 말에는 이러한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금연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끊고 싶어 합니다.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용기가 없어 과감하게 끊지를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바른 노력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력에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흔히 우리가 불퇴전의 정진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것이 바로 선을 향하여 물러서지 않는 용기를 가지고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른 정진에는 이러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의 옛날 이야기인데 우공이라는 사람이 자기 마을을 가로 막고 있는 산을 옮기려고 마음을 먹고 온 가족이 달라붙어 흙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사람 몇이 달라붙어 산을 옮긴다는 것은 무모한 짓으로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코웃음을 치던 지신(地神)이 우공에게 그렇게 해서 언제 산을 옮기겠느냐고 하니까 우공이 대답했습니다. 자기 당대에 못하면 자손 대대로라도 이 산을 옮기겠노라고. 그 기세에 감동한 지신이 마침내 산을 옮겨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불퇴전의 노력이라는 것도 이러한 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흔히 보면 나이가 늦었다고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지내는 분이 계십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노력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비록 늦게 공부를 시작했더라도 내가 이생에서 다 못 마치면 다음 생에라도 계속해서 공부하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백 미터 달리기를 할 때 결승 테이프를 끊는 곳에 가까이 왔다고 속도를 늦추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달려오던 속도를 늦추지 말고 계속해서 달려야 좋은 기록을 낼 수 있습니다.
사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나이 들었다고 곧 죽을 내가 이까짓 것은 해서 무엇해 하고 주저앉아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 태도야 말로 늙음을 재촉하는 것입니다. 어떤 목표를 세웠으면 죽는 그날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다음 생에서라도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기백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정진하는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세속에서의 노력도 이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진리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 특히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도 바른 정진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속을 떠난 성스러운 정진이란 어떤 것인지 경전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번뇌와 집착이 없고 괴로움을 바르게 다하여 괴로움의 소멸로 향하게 하는 세속을 벗어난 지혜로운 자의 바른 노력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불제자가 고성제를 있는 그대로 사유하고,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를 있는 그대로 사유하여 번뇌 없는 생각에 상응하는 심법으로 의욕을 내고 정진과 방편을 씀이 부지런하고 뛰어나며 흔들리지 않고, 정진을 하되 심법으로 섭수하여 항상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을 일러 지혜로운 자의 바른 노력이라 한다.
이와 같이 바른 노력에도 사성제에 대한 바른 사유가 전제조건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번뇌 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의욕을 가지고 정진하여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정정진에 대해서는 세속인의 정진이나 세속을 떠난 성스러운 자의 노력이나 다를 바가 별로 없습니다. 사정단에서의 단단의 설명에서 본 것처럼, 생겨난 악은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생기지 않은 악은 앞으로도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며, 일어나지 않은 선은 일어나도록 노력하며, 이미 생긴 선은 더욱 커지고 없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른 정진입니다. 이것은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반드시 지녀야 할 덕목입니다. 어떠한 일도 바른 노력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이 정정진의 가르침입니다.
말하자면, 악을 억누르고 선을 지향하는 것이 바른 정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만약 반대로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즉, 노력을 하되 바른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하는 노력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를 들면, 도박 기술을 익히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사기를 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은 바른 노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를 파멸로 이끌고 가정과 사회를 파멸로 이끄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을 하되 바른 노력이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른 노력은 반드시 악을 멸하고 선을 기른다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바른 노력에도 정견과 정사유가 바탕이 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바른 견해, 바른 생각이 없으면 노력을 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결국 자신을 망치는 노력이 될 수가 있습니다. 바른 견해와 바른 생각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공부를 많이 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는 자기가 공부한 것을 나쁜 일에 써먹는 것과 같습니다. 바른 견해와 바른 생각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잘못되기 마련입니다. 나라를 팔아먹고 나라를 망친 사람들도 노력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갔지만, 바른 견해와 바른 지혜를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들의 노력이 결국은 나라를 망치는 꼴이 되었던 것입니다. 노력정진을 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갔지만 부정부패를 일삼는 데 앞장 선 사람들도 바른 견해와 바른 생각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됩니다. 즉, 정견과 정사유가 바탕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들의 노력이 바른 노력이 아니라 잘못된 노력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진을 하되 바른 정진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팔정도의 여덟 가지 덕목은 언제나 바른 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른 것은 곧 중도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중도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거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중도라고 하면 중간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물리적인 중간이 중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른 말을 해야 할 때도 하지 않고 이쪽저쪽 눈치를 보면서 중도를 지킨답시고 입을 다무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은 나아가는 것도 아니고 물러서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중도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도라는 것은 가장 바르고 가장 잘 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중도를 정도(正道)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정진도 중도의 실천방법입니다. 따라서 정정진은 바른 견해와 바른 생각을 바탕에 두고서 행해지는 가장 바른 노력을 말합니다. 정정진은 팔정도의 모든 덕목에 연결되어 있지만 다음에 설명하게 될 정념 및 정정과 특히 관계가 깊습니다.
- 이 글은 중앙교육원 교육원장 화령 정사 (정심사 주교)의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