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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법장 | 참회가 가져다 줄 기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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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8-12-04 13:09 조회1,95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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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가 가져다 줄 기적 2

 

남이 저지른 잘못의 허물을 뜯는데 힘쓰지 말고, 늘 자신을 반성하고 되돌아 봐야 합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결국은 다 이유가 있어서 내게 온 것임을 잊지 않고, 언제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이렇게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업을 짓고 마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러는 것일까?’ 하고 분통을 터뜨리게 될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멈추어 서서 시야를 넓혀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화를 내고 있는 그 사람 역시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을 보고 있지는 않은가요? 모두들 남의 허물에만 집중하는 형상입니다.

자신의 허물은 자기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법이므로, 남의 흉은 잘 보는 반면 자신의 과오는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이는 필시 잘못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행을 통해서 이러한 생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타인의 흉을 볼 게 아니라, 항상 내 허물이 어디에 얼마만큼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바깥의 좋고 나쁜 것에 치중할 게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본인의 허물을 먼저 참회하고 수행한 다음 선()을 행합니다. 그 참회를 통해서 자신의 업이 소멸되고 자기 자신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참회를 하면 지은 업이 소멸됩니다.

 

제가 대구에 있을 때 보살님 한 분이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각자님이 평소에는 괜찮은 데 잠을 잘 때마다 좀 이상해요.”

이상하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제가 옆에 누우면 겁을 내는 사람처럼 몸을 잔뜩 옴츠러뜨리고, 살이라도 조금 닿을라치면 꿈틀꿈틀 멀어져가요.”

보살님에게는 다 큰 자식이 둘이나 있었기에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각자님이 그런 반응을 보일 때마다 보살님은 여간 불편하고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보살님, 참회를 한 번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보름 정도가 지난 후 그 보살님이 제게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을 겪었어요. 제가 스승님 말을 듣고 매일 아침 침대에서 불공을 하면서 참회를 했는데, 엊그제인가 자고 있는 각자님 옆에서 누가 나가버렸어요.”

누가 나가다니요? 방에는 각자님이랑 보살님만 있던 게 아니었어요?”

저랑 각자님만 있었죠. 그런데 염주를 돌리면서 참회를 하는데 각자님 옆에서 어떤 여자 그림자 같은 게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방밖으로 나갔어요. 하도 어리둥절해서 놀라지도 않았어요. 무섭지도 않았고요.”

보살님이 침을 꼴깍 삼키더니 말을 이었습니다.

진짜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그게 아녜요. 그 날 이후로, 각자님이 백팔십도 달라졌어요. 집안일도 곧잘 나서서 도와주고, 상냥하게 말도 잘 들어주고, 제가 사달라는 것도 흔쾌히 사주고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니까요!”

환하게 웃는 보살님을 보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참회라는 것은 어떠한 업을 소멸하는 일입니다. 업을 소멸함으로 변화가 일어났고 그로 인해 각자님이 바뀐 것입니다. 자세한 내막은 보살님의 사생활에 속하므로 생략하겠으나, 참회를 하고 나면 자신이 먼저 달라지고, 또 그로 인해 상대도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참회를 할 때는 조상님들이 지어놓은 업의 영향을 대단히 많이 받습니다. 우리만 잘해서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잘못 살면 다른 대에도 그 영향이 필시 끼치게 됩니다.

만일 조상이 도박을 하였다면 자손도 그런 경우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참회하고, 또 개선하려고 노력하면서 조상참회도 함께 한다면 전생에 지은 것과 지금 지은 것들이 다 함께 어우러져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번 참회불공 기간에는 본인의 참회불공 뿐 아니라 조상참회도 꼭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참회불공을 마친 보살님들마다 입을 맞추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바뀌었고, 내가 바뀌니까 우리 각자님이 달라졌어요.’

내가 바뀌었고, 내가 바뀌니까 우리 아들이 달라졌어요.’

내가 바뀌었고, 내가 바뀌니까 우리 시어머니가 달라졌어요.’

모든 변화의 원인은 다 자신의 내면에서 시작됩니다. 바깥만 바라보면서 잘하니 못하니 평가하기 보다는 나의 내면을 유심히 바라보는 슬기를 길러야 합니다.

타인의 흉에만 집중을 하는 것은 끊임없이 죄를 짓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남의 허물에만 집중하다보면 서로의 기분이 상하는 게 당연합니다. 상대의 자존심도 상처받고, 원망을 하고 받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런 업을 짓지 않으려면, 본인의 생각과 마음을 다잡는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일이라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서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짓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신보다 형편이 훨씬 낫고 잘 사는 시동생에게 무엇인가를 계속 요구하는 상황을 살펴봅시다.

넉넉한 상황의 시동생은 도움을 줄 때도 있겠지만 주지 못할 때도 있을 겁니다. 주야장천 요구만 받는 시동생의 입장에서는 곤란할 때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간혹 거절을 당했다고, 시동생에 대한 원망만 늘어놓고 다니면 어떻게 될까요? 제 삼자 입장에서는 시동생을 잘 알지 못하므로 함께 욕을 하고 원망을 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시동생의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원망과 욕밖에 할 줄 모르는 당사자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을까요? 이처럼 하나의 상황이라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 이해하는 정도와 생각하는 방향이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업을 짓지 않으려면 선하고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 자신을 먼저 단속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바이지만, 나 자신을 살펴보는 게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가족들이 속을 썩여 스트레스를 받지만, 나 자신이 달라지면 가족 전체가 바뀌는 걸 체감할 수 있는 사례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니 믿고 참회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필시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참회를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돌아보면, 저도 살아오며 해왔던 많은 생각들 하나하나가 죄다 업을 짓는 모양새였습니다. 여러 가지 쌓인 업들이 무엇인지 우리는 자세히 모르지만, 하나씩 차근차근 업을 소멸하다 보면 모든 것이 나아지게 될 것입니다.

업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야 합니다. 짓기는 수월할지언정 받기는 정말 고통스러운 게 업입니다.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업을 간과하고 예사로 여기면 절대로 안 됩니다. 진심을 다해서 참회에 힘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