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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준교수의 후기밀교 | 밀교도량과 신변: 생기차제 중 수유가 Anu-yog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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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8-10-04 16:14 조회2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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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도량과 신변: 생기차제 중 수유가 Anu-yoga(1)

         

한국불교의 근황을 살펴보면 수륙재를 중심으로 영산재, 팔관재 등 불교행사가 자주 열리고, 밀교도량의 개설이 종단과 지자체의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한국사를 살펴보면 국가의 재난을 마주할 때마다 밀교도량의 개설을 통해 국난극복의 의지를 모으고, 왕실과 백성이 소통과 결집의 기회를 가졌었다. 조선시대 불교가 억압 받을 때도 수륙재, 영산재 등의 도량은 여전히 개설되었고 초기 왕실을 주축으로 개설되었던 도량은 점차 민간주도로 확대 되었다. 중국의 경우 청조에도 수륙재 도량은 규모가 커서 운영자금을 국가가 관리한 기록도 있다. 밀교도량의 규모 확대는 밀교도량이 지닌 사회문화적 영향 때문이다.

수륙재나 영산재 등의 밀교도량은 붓다와 중생계가 만나 화평한 인간세상을 기대하고, 망자와 생자가 만나 해원과 내세의 안녕을 축원하며,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만나 불만과 바램을 전하는 소통의 장소였다. 밀교도량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은 일제시대에도 여전하여 민중의 결집을 두려워 한 일제는 밀교도량을 폐지하였으며 도량을 이끄는 범패승들을 탄압하였다. 한국의 탈춤에서 보이는 것으로 민중이 권력자를 향해 퍼붓는 욕찌거리는 과거 밀교도량의 흔적이며 닷집 태우기는 도량을 마친 후 바램을 태워 부처께 올리는 호마의식이었다. 이와 동일한 호마의식은 티벳에 여전히 전해진다.

밀교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밀교도량에 대한 높아진 관심이 밀교의 위상제고에 기대를 갖게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다른 것 같다. 현재 수륙재나 영산재을 훌륭히 보존하고 발굴해 온 스님들이 많지만 그것을 밀교도량이라고 명확히 정의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이들 도량에 보이는 진언과 수인, 밀교의 상징적 복색과 장엄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