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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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법장 | 법신·보신·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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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8-09-04 10:58 조회3,9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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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살던 시대에는 전쟁이 빈번했습니다. 서로 땅을 뺏고 빼앗기는 게 일상이라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 고통을 받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대기 위해서 서민들은 갖은 핍박과 압박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불안하고 부족한 환경이 지속되다 보니, 사회는 혼란스러워지고 분열이 생겼습니다. 특히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의 갈등이 심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더 괴로운 것은 피지배층이었습니다. 살아서도 이렇게 괴로운데, 죽으면 더 괴롭지 않겠느냐며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시대를 바꾸어 주고 환경을 개선해 줄 무언가를,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바라고 있었습니다. 바야흐로 사회의 화합을 위해 종교가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나타났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덜 고생하게끔, 해탈을 시켜주는 구원자가 바로 부처님이었습니다. 참으로 시의적절한 등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부처님을 따르고 경배했습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내가 지금 이렇게 힘이 드는 걸까?’

어떤 힘든 일이 닥칠 때면, 우리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때로는 입 밖으로 이런 말을 내뱉기도 합니다. 그만큼 현재는 전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전생을 살펴보면, 일반적인 삶과는 달리 전설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신화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전설 속 인물도 아니고 신화에 나타나는 신도 아닙니다. 부처님은 우리처럼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런데 왜 부처님은 전설이나 신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그려지는 걸까요? 학자들은, 당시의 사람들이 자신의 고난을 해결해주고 구원해 줄 누군가를 간곡한 마음으로 바랐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고통에서 구제해 줄 초인적인 존재를 기다렸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부처님을 신화나 전설처럼 받아들인 겁니다. 신격화된 부처님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믿음을 지닐 수 있게끔 도와주는 설득의 증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신앙은 당시 사람들의 의식세계를 이해하는 데 굉장히 유용한 측면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정말 부처님이 신처럼 여겨졌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 당시에는 그렇게 받아들인 사람도 있었구나, 하고 가볍게 이해하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는, 다양한 수행 이야기라고 받아들여도 무방합니다. 부처님에게는 수만 번의 수행이 있었고 그로 인해 깨달음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개의 전생 이야기는 수만 번의 수행 끝에 진리를 찾는 여정과 비슷한 형상입니다.

부처님은 완벽한 해탈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람은 거저 완벽해질 수 없습니다. 부처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생에 이미 수많은 고난을 겪고 극복했기 때문에 비로소 완벽해질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자카타라고도 불리는데 인도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설화와 민화 등을 모두 아우르는 집결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 경전에도 등장하는 우화 하나를 간략히 살펴봅시다. 가난한 행인 하나가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숲길에 쓰러졌습니다. 동물들은 그 행인을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여우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먹잇감의 일부를 행인 곁에 두었습니다. 새들은 힘들게 구한 열매를 모아 행인에게 주었습니다. 토끼도 행인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 고민에 빠졌습니다. 자신은 풀을 좋아하지만 쓰러진 이에게 풀을 먹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토끼는 작은 나뭇가지들을 열심히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불을 지폈습니다. 빨간 불꽃이 타오르자 자신의 몸을 그슬리었습니다. ‘제 몸을 드세요.’ 자신을 희생해서 타인을 생각하는 토끼의 마음을 잘 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일화는 이솝우화의 원전이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의 부처님 전생 이야기 중 어떤 것이 진짜 부처님의 전생인지 궁금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보다는, 그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는 게 더 유익할 것 같습니다.

 

화신에 대해 알아봅시다. 수많은 공덕을 지은 부처님은 수행을 함으로, 이 땅에 화신으로 왔습니다. 화신불 이라는 것을 우리가 많이 외우기도 하는데 이는 인간으로 변해서 이 땅에 왔음을 의미합니다. 원래는 다른 형상이었다가 인간의 모습이 되어 왔음을 뜻합니다. 화신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불교가 가지고 있던 부처님의 본성에 대한 사유가 필요합니다. 부처님의 본성은 크게 셋으로 나뉩니다. 법신과 보신, 화신입니다.

 

법신이란, 진리를 표현합니다. 진리로만 있는 것을 법신이라고 말합니다. 진리는 몸의 어느 한 부분이나 세상의 어느 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 전체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있는 곳에 부처님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삼라만상 그대로가 부처님이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진리 그 자체로 계셨던 부처님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우리 곁으로 오신 것을 화신이라고 합니다. 화신불이란 인간의 몸으로 다가와준 부처님을 지칭합니다.

법신은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에 영원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모양이 없고, 손으로도 잡히지 않기 때문에 추상성만 있습니다. 반면 화신불은 인간의 몸으로 형상을 가지고 등장하기 때문에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지만 유한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실제로 부처님은 80세의 나이에 열반을 합니다. ()이 다했기 때문에 떠나는 것입니다.

 

법신과 화신 사이에 있는 것이 보신불입니다. 서원을 세우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수행하고 공부하고 공덕을 쌓아야겠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부처가 된 사람들을 보신불이라고 일컫습니다. 예를 들자면 극락세계를 만든 아미타 부처님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중생들 모두가 고통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일념으로 극락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의 주인이 된 부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나무아비타불, 은 아미타 부처님이 그 기원입니다. 또 다른 예로는 세상의 질병을 소멸시켜준다는 약사불이 있습니다. 보신불의 의미를 생각하면, 세상에는 많은 부처님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입니다. 노력하고 실천한다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부처님은 단연 화신불로서의 석가모니이지만, 법신과 보신과 같은 다른 부처의 유형에 대해서도 알아두면 좋습니다. 화신불로의 석가모니는 한 분인데, 왜 이렇게 많은 형태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을까요? 여기에는 오로지 하나의 목적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고통과 괴로움에서 건져내기 위해서입니다. 구원을 목표로 하는 다양한 공덕이 있었기 때문에,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금전적인 도움을 주고, 병이 난 사람에게는 건강을 주고, 결핍이 있는 사람에게는 충족을 줄 수 있습니다. 때와 상황에 맞게 다른 해결책이 되어 중생들의 고통과 괴로움을 덜어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