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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준교수의 후기밀교 | 전행(前行)과 4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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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동화교무 작성일18-08-07 15:01 조회2,42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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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행(前行)4가행

 

 

상좌부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는 대승불교의 경우 열반법신을 얻은 후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수용신과 화신을 보이는 점이다. 대승불교는 반야사상의 발전으로 인해 생사번뇌의 속제도 열반과 다르지 않다고 해석한다. 대승불교의 궁극적 열반은 차토와 피토를 가리지 않는다. 마명의 <대승기신론>에서는 유식사상에 근거해 삶의 현상과 본성을 심생멸문과 심진여문으로 구분하였다. 밀교에서는 나아가 삶의 현상 그대로를 진리의 세계로 본다. 무분별지의 실현에 대해 <대승기신론>은 대승에 대한 발심을 목적으로 삼기 때문에 마음을 중심으로 범부에게 법을 이해할 잣대를 준 것이다.

밀교는 대승의 교학을 계승한다. 그러나 밀교의 교학은 대승교학의 궁극으로 미세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범부의 육신과 삶을 짊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무분별지를 체득한 아사리의 내면은 붓다의 몸이자 열반보토의 현실에 있다. 밀교 최후의 수행인 무상유가딴뜨라는 생기차제와 구경차제로 이루어져 있으며, 생소하지만 그것은 정각자의 삶과 본성을 다루는 것을 지나치지 않는다.

후기밀교의 수행은 관정을 통해 본존불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사바세계의 수행자와 본존의 수용신이 만나는 인연은 매우 지중한 것이기에 후기밀교의 수행은 제자로 하여금 양차제의 본궤에 들기 전 전행으로 알려진 특별한 다짐의 수행을 요구한다.

인도원전에 기술된 전행의 내용은 현재 티벳불교에서 전승되는 4가행과 큰 차이가 없다. 금강살타진언 독송 10만회, 만다라공양의궤 10만회, 구루공양 10만회, 오체투지 10만회는 대부분의 후기밀교 수행에서 요구하는 전행의 내용이다. 금강살타진언은 수행자 자신이 금강살타본존임을 자각하는 것으로 유가딴뜨라의 범주에서 마음으로 오선정불의 오지(五智)를 현증하는 오상성신관에 입각한 수행이다. 만다라공양의궤는 삼천대천세계를 열반법계로 인식하는 것이다. 우주 만다라를 상징하는 법구를 이용해 삼계와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이 열반락을 수용하도록 기원하는 것이다. 동시에 삶의 현상계를 진리로 인식해 생사열반의 분별을 벗어나는 자각이기도 하다. 금강살타진언과 만다라공양은 자아와 외경을 다루되 마음으로부터 현상의 실상으로 나아가는 훈련이기도 하다.

다음 양차제로 나아가기 위해 스승인 아사리에게 다짐과 헌신하는 구루공양의 진언을 10만회 독송한다. 스승에 대한 의심을 벗고 몸과 마음을 다하는 다짐은 밀교수행에 있어 특히 중요하다. 과거 나로빠가 틸로빠를 처음 만났을 때 틸로빠는 나로빠를 벼랑끝으로 데리고 가다짜고짜 뛰어내리라고 하였다. 진리를 구하는 헌신과 각오가 없으면 누구나 도중하차하게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오체투지 10만회는 육체를 조복하고 수행을 하기 위한 체력의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이상의 4가행은 하나하나가 깊은 의미를 담은 것이어서 중요하며 진언 하나마다 정성을 다해야 한다. 때문에 4가행을 모두 마치려면 일상생활을 소화하면서 하다보면 최소 일 년 반에서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인도에서 까규의 아사리를 모시고 후기밀교 본존수행에 들기 위해 필자도 4가행을 한 적이 있었다. 티벳 본토에서 까규의 전승을 계승한 아사리 독덴 암틴은 유명하지만 소탈한 스승이셨다. 4가행 가운데 오체투지의 경우 전신을 던지기 쉽도록 착쩰판(착쩰은 티벳어로 귀의라는 뜻이다)에 의지한다. 당시 수행에 참여한 한국 불자들의 신심과 구도열은 상당한 것이어서 일 년 이상 걸리는 전행을 석달만에 모두 끝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국불자라면 누구나 다르지 않았으며 티벳인들조차도 한국불자의 구도열에 혀를 내둘렀다. 출가와 재가를 가리지 않고 밤새도록 철썩철썩 오체투지에 전념하는 한국불자들을 보며 진가의 평가를 떠나 한국인들이 지닌 범상치 않은 종교열에 전율을 느낀 경험이 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한국인을 종교적 영성이 높은 민족으로 지목한 이유가 이런 이유에서 증명되는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