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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법장 | 법상인 전수 (고행과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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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8-07-20 10:47 조회1,07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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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종보 224

 

총지법장 - 법상인 전수.

 


 

오늘은 부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부처님은 과연 어떤 분일까요? 우리가 보통 사원에 가고, 법당에 가면 여러 형상의 부처님들이 다양하게 모셔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제각각에는 저마다의 이름도 있습니다. 과연 부처님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요? 먼저 역사적 부처님이신 석가모니 부처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석가모니의 삶은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석가모니가 태어난 곳은 지금의 네팔에 속하는 카필라국이라는 도시국가였습니다. 도시국가라는 말처럼, 도시의 개념과 국가의 개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당시 인도에는 대략 16개 정도의 도시국가가 공존하고 있었는데 카필라국도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부처님이 지낸 시대의 도시국가에는 계급제도도 있고 세습제도도 있었습니다.

최상의 가문에서 태어난 부처님은 왕위를 세습 받을 수 있는 지위에 속했고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있었습니다. 실제로도 인도고전철학이라는 종교사상뿐 아니라 의학, 인류학, 논리학, 수학, 무예 등 각양각색의 분야를 심도 있게 습득하고 공부하였습니다. 출가 전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던 부처님은 결혼을 하여 아들도 있었는데 나후라라는 이름을 가진 아들은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남부럽지 않은 왕위와 가정을 포기하고 29살에 종교의 길을 걷게 되는 부처님을 보면 그게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만도 합니다. 가정을 가진 청년이 출가를 한다는 게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인도의 전반적인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면, 사기 생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네 가지의 시기를 일컫는데, 첫번째는 학습기라고 하여 부모와 함께 살면서 교육을 받는데 집중하는 시기입니다.

두번째는 가주기라고 하여 결혼을 한 다음 부모를 모시는 한편 자녀를 낳아 기르며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시기입니다.

세번째는 임서기로서 자식이 어느 정도 크면, 가정을 떠나 출가하는 시기입니다.

마지막 네번째는 유랑기로 출가를 한 후 스승을 찾아다니며 수행을 하는 시기입니다. 출가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부부가 함께 출가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실질적으로도 많은 출가생들이 부처님처럼 가정이 있고 자식이 있었습니다. 출가 후에는 다시 사회에 나갈 수도 있었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습니다. 한번 출가한다고 해서 영원한 출가생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언제든지 자유롭게 출가를 했다가 다시 자신이 속했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당시의 흔한 생활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출가를 하며 여러 유명한 라마승들을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다양한 종교의 수행을 이미 경험한 바가 있는 라마승들로부터 받은 배움을 토대로 실천을 하며 지냈습니다. 이처럼 부처님이 처음부터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낸 건 아닙니다.

여러 종교의 스승들을 겪으며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을 해보고 또 수행을 하다가 이건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면 또 다른 스승을 찾아가는 식으로 실천수행을 6년 정도 지속했습니다.

종국에는 고행과 수행이 같은 것만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강에서 목욕을 하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우유죽을 얻어먹고 힘을 차려 명상을 한 후 깨달음을 얻은 당시 부처님의 나이는 35세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보살님들이, 고행이 바로 수행이고, 수행이 바로 고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부처님이 고행을 겪은 것은 맞지만, 그것으로 인해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후 말씀하신 것 중 하나가 불고불락입니다. 너무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것도 옳지 않고, 너무 향락에 젖어 몸을 안일하게 하는 것도 멀리하라는 의미입니다. 고행을 하면, 그게 바로 수행이고 고행을 해야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깨달음을 얻은 후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었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출가 후의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된 것입니다.

 

어느 날, 한 보살님이 불공하다가 힘이 너무 들어서 더 이상 하지 못하겠다며 경전과 염주를 반납하고 집으로 가버린 일이 있었는데 바로 그 다음날 그 보살님이 경전과 염주를 돌려달라고 하여 불공을 다시 시작했답니다. 마음이 왜 그렇게 또 바뀌었냐고 묻자, 수행이 너무 힘이 들고 고통스러워서 그만두고 싶어서 그만두었지만, 그날 밤 꿈을 꾸었다고 했습니다.

꿈속에서 꽁꽁 언 얼음벽을 만났는데, 아무리 얼음을 깨려고 용을 써도 잘 깨지지 않았답니다. 잠에서 깨어난 후, 만약 업이 얇았다면, 손으로만 살짝 쳐도 살얼음이 갈라지듯 깨졌을 텐데, 업이 너무나 두꺼우니 이렇게 꽁꽁 언 얼음벽처럼 아무리 깨려고 노력해도 잘 되지 않았구나, 하는 깨달음이 들었더랍니다. 정말이지 아주 적절한 비유의 꿈이었습니다.

 

업이라는 것은 교묘하고 두꺼운 성질이 있어서, 업에 가려 있으면 바른 길로 가지 못하고 엉뚱한 길로 빠지면서도 잘못된 그 길이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주변사람들이 만류를 하고 조언을 해주어도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잔소리가 심하고 말도 심하게 하고 말썽을 하도 많이 피우는 각자님을 둔 한 보살님은 자신이 마음을 비우고 열심히 불공을 하는데도 각자님의 믿음이 없어서인지 어떤 변화도 없었다며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한쪽이 아무리 예쁘다, 예쁘다 한들 상대에게 그럴 마음이 하나도 없다면 이걸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지에 대해 질문이 생깁니다. 무작정 참아야 하는 게 능사인가, 하는 딜레마에 맞닥뜨린 것입니다.

업이 두텁다면, 어쨌든 그 사람이 스스로 자각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짐승이 새끼를 낳은 직후의 광경을 떠올려봅시다. 세상에 갓 나온 새끼는 처음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어미는 억지로 눈을 뜨게 하는가요? 기다리면 됩니다.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눈을 뜰 때가 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업이 소멸되는 것 역시 기다림의 미학도 필요한 법입니다.

 

남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은, 내가 갚을 빚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식도, 남편도,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은 내가 그들에게 갚을 빚이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빚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상대에게 무한정 잘해줄 수만 있겠습니까? 서로의 속을 썩어가면서 그런 와중에 빚의 존재를 인지하고 또 갚아나가는 게 아닐까요?

 

물론 수행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업을 소멸하는 것도 사실은 여러 고통이 왔다가 사라지고, 또 왔다가 사라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고통이 왔을 때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처를 하는 게 좋을까요? 고통을 받으면서 흉을 보고, 화를 내고, 성질을 내기보다는 그 고통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시간을 들여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는 빚을 갚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입니다. 불공을 하고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고행이 해결법은 아닙니다. 얼음을 녹이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나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비우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이는 업을 짓는 것은 쉽지만, 소멸시키는 것은 힘든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부처님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고행과 수행이 무엇인지에 대해 짚어보았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보살님들이 지혜로운 수행의 길을 걷기를 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