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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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삼한담 | 나를 희생해 내가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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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02-05 13:00 조회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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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희생해 내가 살다

 

“저 종도 다시 복원한 거네.”
“저 쇳덩어리가 불에 녹는다고요? 설마요.”
강원도 낙산사 ‘화재의 흔적’에 재현해놓은 범종을 보고 선배 시인이 말했지만, 난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아무리 불길이 세다 해도 청동으로 만든 종이 녹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화재로 소실된 낙산사 범종각 모습을 그 당시의 형태로 이전 재현하여 문화재 소실의 안타까움과 소중함을 깨닫는 공간”이라는 안내의 글을 읽고도 난 반신반의했다.
연초에 가까운 시인들과 속초 낙산사를 찾았을 때, 둘만 뒤에 떨어져 화재의 흔적을 더듬고 있었다. 일행은 벌써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서둘러 일행을 따라잡아 홍예문에 이르렀다. 문을 통과하자마자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난 휴대폰을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 사실이었다. 2005년 화재 때 낙산사의 동종이 불탔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아무리 불길이 세도 범종을 녹일 수 없다는 내 상식과 의심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보통 범종은 구리(동)와 주석을 합금한 청동으로 만든다. 녹는점은 구리 1,085℃, 주석 232℃, 청동 875~994℃임을 감안하면 범종각의 화재 당시 온도는 약 1,000℃였다는 것이다. 주춧돌을 제외한 모든 것을 녹일 수 있는 화마(火魔). 지옥의 온도가 그쯤 될까. 살아 있는 것들에게는 지옥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때 당시 불탔던 건물들은 다 복원됐다.  
내친김에 범종에 대한 자료도 찾아보았다. 동종(銅鐘)이라고도 하는 범종은 사찰에서 대중을 모으거나 때를 알리기 위해 사용한다. 순간 종뉴(鐘紐)라는 낯선 용어가 눈에 들어왔다. 용(龍)의 모양을 취한 범종의 가장 윗부분으로, 여기에 쇠줄을 연결해 종을 매단단다. 종뉴의 용은 포뢰(蒲牢)라는 용왕의 셋째 아들. 포뢰는 고래를 가장 무서워해 그를 만나면 놀라 크게 비명을 지른다고 한다. 하여 고래 모양의 당목(撞木)이나 고래뼈로 당을 만들어 종을 친다고 한다. 그래야 종소리가 더 크게 울린다고.
“뎅 뎅 뎅….” 그때 종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봐도 어디서 울리는지 알 수 없었다. 선문에 어울리지 않는 유명 인사들의 기념식수가 나란히 팔 벌린 길을 지나자 사천왕문이 나타났다. 비파를 든 동쪽의 지국천왕, 용을 허리띠로 삼은 서쪽의 광목천왕, 장검을 든 남쪽의 증장천왕, 보탑과 삼지창을 든 북쪽의 다문천왕 등 사천왕상을 모신 전각이다. 2005년 대화재를 견뎠으며, 사천왕문 좌우 거목에 불이 붙었을 때, 사천왕문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와 그 불을 껐다는 신비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천왕 앞에 서면 몸이 움츠러드는 건 나뿐일까.
원통보전 법당에 들어 절을 하는 마음과 칠층석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화마에 살아난 거목을 쓰다듬는 마음이 모여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해수관음상으로 향했다. 다시 종소리가 들렸다. 한결 가까이 청명한 울림이다. 길옆 이름 모를 작은 나무에 붉은 잎이 돋았다. 그 곁에는 죽은 나뭇가지가 널려 있다. 삶과 죽음이 한 공간에 공존하고 있다. 양지의 겨울에 싹을 틔운 저 나무가 서 있는 곳도 다 불에 탔을 것이다. 땅속에 미약한 생명을 남겨놓고 화마가 지나가자 다시 생명을 틔웠을 것이다. 만해 한용운의 시 〈알 수 없어요〉,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처럼 생명을 유지했을 것이다. 자신의 일부를 자양분 삼아 그렇게 생존했을 것이다. 나를 희생해 내가 산다고 할까. 자절(自切). 아니 어쩌면 “모든 것은 멈추어 있지 않고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부지런히 움직여 해수관음상 앞에 서자 난 한없이 작아진다. 해수관음상의 시선을 쫓는다. 하늘과 바다가 하나가 되는 수평선. 하늘과 바다의 경계인 저 선은 과연 실존하는 것일까 의심한다. 문득 파란 비명 하나 귀에 와 부서진다.


시인 김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