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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준교수의 후기밀교 | 싯다들의 삶, 시와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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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02-05 12:51 조회1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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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들의 삶, 시와 문학


84성취자전은 8~11세기 벵갈의 승려 아바야닷따(Abhayadatta)에 의해 쓰인 책으로 인도에 존재했던 밀교의 성취자에 대한 간략한 행적과 시, 언행을 기록하고 있다. 성취자들의 전설에는 신통, 신이가 교차되어 현실의 책이라고 인정하기 어렵지만 따라난타(Tāranātha, Jonang 1575~1634)의 불교사나 청사(靑史, 종이가 없던 옛날에 중국에서는 대나무를 여러 쪽으로 가른 조각에 글을 기록했다.
그 대나무가 푸른빛을 띠고 있었기에 거기에 역사를 쓴 것을 ‘청사에 기록한다.’고 했다.)에 성취자의 이름이 언급되고, 티벳대장경에 성취자들의 저술도 적지 않게 남겨져 있는 것을 고려하면 <삼국유사>처럼 현실과 신비가 교차되어 있는 미완성의 전기라 말할 수 있다.
인도에서 84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전체’, 또는 ‘완성’, ‘완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성취자는 나란다 승원대학의 승려와 재가자, 여성들도 다수 포함되고 있어 출가주의, 남성중심의 기록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승속(僧俗)과 성속(聖俗), 신분과 계급, 성징을 벗어나 생명과 진리만을 현실적 입장에서 직관하려는 변혁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말세(末世)라는 시대적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출가, 재가를 구분하지 않고 밀교에 대해서는 진언의 방편으로써 즉신성불(卽身成佛)을 가능케 하는 지고의 가르침으로 평가하여 밀교에 의지하는 수행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말세의식은 삼장과 율의의 온전치 않은 시대적 배경에 대해 밀교를 중심으로 재가자의 성취를 적지 않게 부각시킨다.
8, 9세기 인도불교의 상황은 끊임없는 무슬림과의 접촉으로 인해 불교교단이 위협받는 상황이었지만 출가교단으로서 계율과 삼장, 현밀겸수의 온전한 전통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나란다 승원대학과 같은 전통교단의 붕괴는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고 있다. 84명의 성취자들의 신분은 다양한 사회계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왕과 귀족, 성직자와 요기, 시인과 음악가, 장인과 농부, 주부와 창녀 들이 성취자로 언급되어 있다. 성취자들은 승원이나 가정을 이루지 않고, 사회 최하층에서 설법이나 의식보다 만뜨라, 무드라, 딴뜨라에 의지해 인간사회와 의식의 고정관념과 맹목의 전통가치를 비판하는 구조주의의 해체를 옹호한다.
틸로빠로부터 시작하여 나로빠, 사라하, 루이빠, 한타빠, 돔비빠 등의 성취자, 즉 싯다(siddha, 자이나교에서 완전을 성취한 사람을 일컫는 말) 들은 강 옆에서 생선을 먹으며 살고, 발우 하나, 지팡이 하나로 연명한다. 승원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율의와 의궤, 형식과 권위를 버렸으며 머리는 흐트러뜨리고 남루하지만 입으로는 깨달음의 세계를 시와 글로 남겼다. 이들의 삶은 인간이 발을 딛고 사는 현실과 생명이야 말로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이자, 진리이며, 열반은 인간의 무지와 무명의 해체를 통해 실현된다는 가장 현실적인 열반의 실현임을 온몸과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티벳불교의 까규빠(티벳불교 4대 종파의 하나)는 이들 성취자들의 흔적을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다. 독뗀이라 불리는 싯다들은 긴 머리를 감아 정수리에 얹고 있으며 가사는 흰색이다. 겔룩빠(달라이 라마가 속한 티벳의 최대 종파)의 경우 금강살타의 보관을 쓰지만 복장 가운데 장발의 장식이 있으며, 요기니 수행이나 쬐수행과 같은 관행에도 장발의 보관을 쓰고 있다. 밀교의식의 장식에서 보이는 장발의 흔적은 미륵보살이 오는 세계처럼 승속을 떠나 인류사회 전체가 고의 극복을 위해 진리를 추구하는 수행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식적 표현이다.   
인도 후기밀교에 대해 간략한 역사와 경전성립과정을 살펴보고 깔라챠끄라딴뜨라를 끝으로 일련의 작업을 마쳤지만, 다음 주제를 두고는 한참 망설였다.
선지식들의 말씀을 듣고 밀교의 성취자나 인물들의 삶과 행적들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분간 ‘밀교 인물사’라는 주제로 밀교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에 대해 그 배경이 서로 다른 것을 감안하면 여러 전공자의 도움이 앞으로 필요하게 될 것 같다.
시대․지역․종학별로 구분하여 좋은 글들을 마주할 기회를 갖게 되어 벌써 마음이 설레고 있다. 밀교인물사로 문제를 좁혀 인도와 중앙 및 동아시아를 관통하는 계보를 만들어 보려했지만 훗날을 기약하는 방대한 일이다. 아무래도 인도 쪽에서 먼저 문을 열어야 하기 때문에 당분간 필자가 먼저 펜을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