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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경정사가 전하는 밀교연재 | 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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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02-05 12:50 조회1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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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⑫


중생의 마음을 짐승에 곧잘 비유한다. <대일경>에서 이심(狸心), 구심(狗心), 서심(鼠心), 사자심(獅子心), 휴유심(鵂鶹心), 오심(烏心) 등으로 중생의 마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휴유심(鵂鶹心), 오심(烏心), 나찰심(羅刹心)에 대해 알아본다.


휴유심(鵂鶹心)
휴유심은 올빼미의 마음이다. 올빼미는 밤에 활동하는 맹수(猛獸)다. 어두운 밤을 좋하고 즐기는 올빼미의 마음을 중생의 마음에 비유하였다. 이러한 중생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한 밤 중에 사념하는 중생의 마음이라고 한다. 어떤 마음을 말하는가. <대일경>에서 올빼미의 마음을 이렇게 설하고 있다.
‘무엇을 올빼미의 마음이라 하는가? 항상 어두운 밤에 사념하는 것을 말한다.’ 어두운 것은 명상하기 좋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근기 얕은 중생이 선호 분별이 있어서 구분에 따른 것이지 실상은 그 구별이 없어야 한다. 어둡고 밝은 것이 수행에 도움이 된다거나 그렇지 않다거나 하는 것은 분별이다. 그러므로 바른 수행이란 낮과 밤의 선호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경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이 새는 아주 밝은 데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오로지 밤에만 육정(六情)이 밝고 날카롭다. 수행자가 낮에 들은 것이 있었을지라도 외워 익히는 데에 마음이 어둡고 어지러우면 그 선교를 얻지 못하지만, 어두운 밤이 되면 했던 일을 기억해서 거듭 다시 헤아리는 데에 명료하다고 하며, 내지 선관(禪觀) 등을 닦는 데에도 어두운 곳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어두운 밤이 수행이나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것은 온전히 깨달았다고 할 수 없다.
‘만약 깨닫고 나면 평등하게 명암에 대해 생각하여 낮과 밤의 다름이 없게 해야 한다. 이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수행에 있어서 낮과 밤의 차이가 없어야 한다.
무릇 진언행자는 불공 기간이라 하여서 각별히 조심하고 불공기간이 아니므로 막행막식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수행이란 코 끝에 있고 혀 끝에 있으며, 생각과 마음 한 자락에 있는 것이다. 수행이 어디 특별한 곳에 있으랴. 마음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생활 속에 있는 것이다.


오심(烏心)
오심(烏心)이란 까마귀의 마음이다. 무엇이 까마귀의 마음인가. 어느 곳이나 무서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을 말한다. <대일경>에서 오심을 이렇게 설하고 있다.
‘무엇을 까마귀의 마음이라 하는가. 어느 곳이나 무서워하는 생각이 있는 것을 말한다. 까마귀 새와 같이 만약 어떤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가까이 붙으면서 은혜를 베풀거나 어떤 때에는 그 편리를 찾아 구하여 원망하며 협박하는 마음을 함께 내는 것이니 모든 때에 성품이 언제나 이와 같다. 이 마음도 역시 그러하다.’
까마귀 마음이란 속이 시커먼 마음으로, 흑심이 가득한 마음이다. 자기 계산으로 사람을 사귀지만 잘못되면 돌아서는 마음이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마음이다. 이를 까마귀의 마음에 비유하였다.
‘좋은 친구로서 요익하게 하려고 할지라도 도리어 빠뜨리고 그릇되게 하는 자로서 한 번 누르니 원망하여 사이가 멀어지고 의심과 두려움을 품는다. 내지는 계를 지니고 선한 일을 닦을 때에도 역시 생사에 두려운 마음을 품는다.’
은혜를 오히려 원수로 갚으니 그것이 두렵고 싫은 소리 한 번 한 것이 평생 사이가 멀어지니 그것 또한 두려운 것이다. 인간관계가 고달프고 고통스러운 이유다.
이와 같이 수행하는 가운데 원망하고 두려워하고 겉으로 아닌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의심하고 욕하는 마음이 까마귀 마음, 오심(烏心)이다.
이러한 마음은 어떻게 다스리고 잠재울 수 있을까? 안정되고 두려움 없는 마음을 닦는 길은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이를 여심지자심(如實知自心)이라 한다. 여실하게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대일경』에서는 이를 일체지지(一切智智)라고 한다. 자신의 마음을 여실하게 알면 두려움과 의심, 증오심, 악심은 훨씬 줄어든다. 이것이 오심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나찰심(羅刹心)
짐승의 마음은 이로써 마친다. 다음은 나찰의 마음이다.
나찰의 마음이란 착한 것 가운데서 착하지 않은 것을 일으키는 마음을 말한다. 착한 듯하면서도 일면 악심(惡心)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선심 가운데 악심이 있고, 악심 가운데 선심이 있다. 사람의 포악성을 재단하기가 어렵다. 이를 나찰심에 비유하고 있다. 나찰은 사람을 잡아먹는 포악한 귀신이다.『대일경』에서 나찰심을 이렇게 설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보고서 모두 착하지 않은 뜻으로 이해한다. 부처님께서는 온갖 탑묘를 짓는 것은 한량없이 많은 복을 얻는다고 설하셨다. 그런데 이것을 그와 반대로 이렇게 말한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종횡으로 한량없이 많은 작은 벌레를 해치고, 시주를 번거롭게 하였다. 장차 어떤 이익이 있겠는가? 괴로움의 과보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마음은 착하지 않은 마음이다. 남이 잘되는 것을 칭찬하지 않고 오히려 비방하고 훼방하는 것이다.
이타(利他)의 공덕을 잘 관찰하여 나찰심을 다스려야 할 것이다. 그 방법이 밀교에서는 삼밀수행과 더불어 육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