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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뽀이야기 | 물질은 입자일까? 파동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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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01-03 11:00 조회10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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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은 입자일까? 파동일까? 

 

오늘은 우리가 매일보고 느끼고 인식되어지는 물질에 대해 알아보자. 과연 우리가 오감으로 인식되는 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인식되어진 물질은 입자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파동으로 존재하는가? 물질은 실제 존재하는가? 


물질의 최소단위, 원자
현대물리학인 양자물리학은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현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학문이다. “너무 작은 세상이라 우리 눈에 안 보인다.” 하여 미시세계(微視世界)라고 부른다. 모든 물질의 최소 단위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우주에 실재하는 원자는 100여 개이며 우리 주위에 보이는 이 모든 것들의 원자는 약 30여개 정도의 원자로 구성되었다.
원자의 모양은 단순하다. 가운데 원자핵 양전하를 띠고 그 주위에 아주 작은 전자 음전하가 원자핵을 둘러싸고 있다. 이게 우주의 본질이다. 원자의 크기는 너무 작아 볼 수 없다. 머리카락 단면에 원자를 십만 개에서 백만 개 정도 늘여 세울 수 있는 정도의 크기이다. 가장 작은 수소 원자핵의 크기를 농구공 크기로 키웠다 가정했을 때 전자는 수십km 밖에서 먼지처럼 작은 전자가 돌고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원자이다. 그리고 그 사이 99.999%는 빈 공간이다. 원자핵과 전자의 사이는 텅 빈 공간이다.
우리가 보는 모든 물질은 텅 빈 공간과 같다. 원자는 거대한 텅 빈 공간이다. 우리들의 몸도 사실은 원자로 구성되어있으며 텅 빈 공간이다. 세상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작은 단위는 세포이며 세포하나에 들어 있는 원자는 100조 개이고 사람 몸에 있는 세포 수는 100조 개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60억 사람들은 지구가 속한 태양계에 있으며, 우리 은하에는 태양과 같은 별들이 1천억 개 있다. 우리가 보는 것의 99.999%, 우리가 욕망하는 것의 99.999%, 그 모든 것의 99.999%는 빈 공간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최근 현대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의 이중슬릿 실험을 통해서 우리가 입자로 존재하는 물질이 꼭 입자로 존재하지 않고 파동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중슬릿 실험은 두 개의 구멍(슬릿)으로 입자를 통과시킨 뒤 통과한 입자의 분포를 확인해 어떤 분포 패턴을 보이는지 확인하는 실험이다. 두 개의 구멍을 놓고 빛을 알갱이(광자) 하나씩 통과시킨 뒤 스크린에 부딪히게 하면 ‘상식적으로는’ 구멍이 난 두 곳 뒤의 스크린에만 광자가 표시돼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실험해 보면 빛 입자가 몰린 구간과 몰리지 않은 구간이 반복돼 나타난다. 이것은 입자가 파동의 특성을 보인다는 뜻이다. 물결과 소리와 같은 파동은 여러 위치에 동시에 존재한다. 입자는 절대로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관측을 하면 입자의 무늬로 나타나게 된다. 원자나 전자는 마치 자신이 관측을 당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원자나 전자가 두 개의 구멍을 동시에 통한다는 이중슬릿 실험의 결과 관측이 실험 대상을 바꾼다.
최근 양자역학 실험은 원자, 전자의 미시세계가 아닌 수백 개 원자가 결합된 거대한 물질인 생체 분자를 이용해 입자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지니는 ‘파동-입자 이중성’을 처음 증명하였다. 


양자역학 현상, 연기의 이치
현대물리학의 양자역학에서는 물질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처럼 입자의 모양으로 정해져 있을 수도 있고 혹은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파동의 형태로 있을 수도 있다. 물질은 입자와 파동의 이중형태로 존재한다. 이중슬릿의 실험에서 나타났듯이 관측이 일어나지 않는 부분은 가능성의 존재, 파동의 존재로만 양자들이 존재하다가 관측이 개입되는 순간에 입자가 되면서 우리 눈에 보여 지는 어떤 존재들로 현현하게 되는 것이다. 원자가 독립적인 실체라면 그것은 하나의 위치와 정해진 운동량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원자가 어딘가에 위치해 있지 않거나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말할 수 없다면 그것을 실체를 가진 존재라고 말할 수 없다. 양자역학에서는 우리가 봤기 때문에 거기에 있는 것이며, 우리가 측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움직인다고 주장을 한다. 보지 않고 관찰하지 않았다면 그런 위치에 있지도 않고 그런 속도도 갖지 않는다. 입자가 어디에서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가 하는 물음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가 볼 때만 비로소 그게 의미를 갖는다.
물리학적 실험과 불교의 가르침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기법이 옳다면 양자역학은 물리학적 측면에서 연기의 이치를 말해주는 현상이며 불교의 가르침은 관찰자와 관찰대상이 둘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다.